오피니언 / 칼럼
희망의 끈
나성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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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7 [07:3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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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성균 목사(샬롯장로교회)
요즘에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긴 매스컴 기사를 통해서 바라 본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작년 말에 발표된 ‘2016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중 4-5명은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신 그냥 함께 사는 동거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경제난 때문입니다. 하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과연 올바른 사회의 모습일까요? 그러다보니 체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체념’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너무나도 슬픈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체념을 통해 삶의 의지가 꺾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난자들을 죽음으로 모는 것은 식량 부족이나 체력 저하가 아니라고 하지요. 희망을 버리는 순간에 조난자는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즉 체념을 통해 삶에 대한 의지가 완전히 꺾이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척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실패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바로 너무 일찍 희망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 년만 참으면 성공이 온다는 것을 안다면 희망을 버릴까요. 평생의 삶 중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은 아주 적은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는 것은 희망이 없다고 단정 짓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고 장영희 교수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그분이 번역하신 영시도 좋아하고, 또한 그분이 쓰신 수필집 역시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이 분의 삶을 알게 된 후부터 더욱 더 글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장영희 교수님께서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척수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도 못해 누워 있어야만 했지요.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가 초등학교 때까지 딸을 업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평생 목발을 의지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부터 9년간 세 차례나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했지요. 2001년에 유방암에 걸렸으나 강인한 의지로 다시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 척추로 전이된 암은 다시 간으로 전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힘겨운 투병 생활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힘겨운 삶을 사시면서도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이 가장 힘든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힘든 길이라는 것은 스스로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나 스스로 만든 길이라는 것이지요.
 
어떠한 순간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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