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나치로부터 로마 해방시킨 한국인 영웅 김영옥 대령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한평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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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2/30 [03:1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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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로마는 걸출한 영웅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주변의 길 이름들은 모두 기원전 영웅들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영웅이란 특히 남자들에게 닮고 싶어지는 멋있는 남성상이 아닌가 싶다. 영웅의 사전적 의미는 지력과 재능, 또는 담력과 무용 등에 탁월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영웅이라는 지각적 의미는 전쟁에서 놀라운 승리를 이룬 사람으로 각인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시자(Julius Caesar 100BC-44BC)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영웅으로 손색없는 나폴레옹도 시저를 모델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나폴레옹은 콜시카 섬을 불란서에 팔아버린 후 그 섬에서 태어났으니 실제로는 이태리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이니 더더욱 시저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마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킨 한국인 영웅이 있다. 로마 남쪽 50Km 지점에 바닷가 도시 안지오(Anzio)가 있다. 안지오는 작은 도시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기원전부터 시작된 마을이다.

▲ 베네딕트 수도원     © 뉴스파워 한평우

특이 이곳에서 갈리굴라(Caligula 12AD-41)와 네로(Nero 37AD-68) 황제가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별장 터가 지금도 바닷가에 남아있어 역사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를 핍박한 것으로 잘 알려진 네로는 이 장소에서 37년 12, 13일 새벽녘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차대전의 전쟁 때문이다. 연합군은 나치가 점령한 로마를 해방하기 위해 나폴리를 통해 로마로 진격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최강 나치군은 전차 군단을 앞세워 철통같이 로마를 방어망하고 있었다.

특히 독일군의 방어진은 구스타프 라인의 중심에 몬테 카지노(Monte Casino)가 있었다. 해발 800미터에 터를 잡고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은 중요한 독일인의 기지가 되었다. 거기에 올라 보면 로마로 가는 길은 하나의 협곡에 불과하다. 양편으로 높은 산자락이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평평한 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협곡을 연합군이 통과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저 유명한 5세기에 설립된 베네딕토 수도원을 1944,2,15일 연합군 비행기 편대의 엄청난 폭격으로 깡그리 날려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 유서 깊은 5세기의 수도원을 폭격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연합군의 고뇌는 굉장했겠다 싶다. 베네딕토 수도원을 올라가보면 지금도 나치들이 사용했던 무기들, 그리고 그 누가 썼을지모를 구멍 난 독일군의 철모와 기관총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특히 이곳 공격을 전담했던 폴란드 군인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했고 그들의 전몰묘지가 가까운 위치에 하얀 십자가들로 채색되어 있다. 조국을 떠나 이 산자락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연합군은 결국 이 협곡을 우회하여 카지노와 나폴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지오(Anzio)에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우리나라의 인천 상륙작전처럼, 1943,9월 안지오 상륙작전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연합군은 나치와의 대치 상태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무모한 진격은 엄청난 병력의 손실을 볼 것이 뻔한일이었기 때문이다.
 
적의 막강한 탱크 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 장소를 파악하지 않고는 섣불리 진격할 수 없는 정황이었다. 그래서 적의 동태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마크 클라크 사령관은 이에 대한 명령을 내렸으나 수색대조차 몇 번이나 적을 생포하는 일을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정황에서 한국의 김영옥 중위는 자신이 이 일에 나서겠다고 지원했다. 모든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그의 작전 계획은 철조망과 지뢰밭을 낮은 포복으로 통과하는 것이었기에 사령부의 모든 사람들이 절대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리고 있었다.
 
상황이 너무 힘들게 되자 본인이 원하면 해도 된다고 마지못해 허락했는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작전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는 두 명의 나치 군을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기까지 했다.
 
그 생포한 두 나치 병사를 통해 적의 탱크 배치 상황을 자세하게 알게 된 연합군은 드디어 돌격의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결국 로마를 나치로부터 탈환하게 되었다.

▲ 베네딕트 탈환 전쟁에서 죽은 폴란드 군인묘지     © 뉴스파워 한평우 

그 공로로 김영옥 중위는 은성무공훈장과 일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었다. 클라크 당시 유엔군 사령관은 "내 휘하 50만의 군인 중에 최고의 군인"이라고 그를 극찬했다. 그는 미국과 이태리, 그리고 불란서 정부로터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그는 세계제2차대전이 끝난 후 중령으로 예편했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위 계급장을 달고 또 다시 고국의 전장을 누볐고, 가는 곳 마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후 대령으로 예편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나치군의 압제에서 로마를 해방시켰다는 사실이야 말로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는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이민한 가정에서 태어난 2세였다. 당시 인종차별이 많았던 상황에서 일궈낸 승리의 편린들이기에 더욱 귀하기만 하다.
 
김영옥 당신이야 말로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뉴스파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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