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예수님의 피눈물 접한 후 인생에 대한 신뢰 불같이 다시 일어
‘바쁨=성공’ 공식 믿고 살았으나 지치고 몸아프다가 영적위기 맡기도
김영숙목사(사이리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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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24 [07:1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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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도 유익…“말씀 외에는 길 없다”

▲ 김영숙목사(사이리니교회)
과거를 회상 해 보니 나의 고난은 너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의 힘든 삶을 살다 인생의 막바지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 동행하면서 얻은 놀라운 체험을 도무지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수 없어, 그 고난 가운데서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십자가 복음을 알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지금까지 걸어 오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만난 예수에 관하여 말하고 전하고 있지만, 이전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채 믿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문자로서만 그냥 읽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내 마음에 말씀이 새겨져 나를 고치게 되었다. 나는 그 예수에 관한 체험들을 겪은 그대로 말 하고자 한다.

내가 만난 예수는 기존의 기독교적 교리의 틀을 넘어서 계셨다. 인간의 고정관념으로 성경을 잘못 이해하여 만들어 낸 그릇된 예수가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진리의 하나님’이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하는 길을 갈 수가 없고 알지 못하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무작정 예수를 믿었기에 많이 힘들었다. 신뢰하는 것만이 믿음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성경이 믿어진다는 어색한 용어를 사용한다 해도 그것은 믿음이 아니었다. ‘예수’라는 길을 가는 것이 믿음이고 그 믿음의 크기는 길을 간 그 만큼 이었다.

과거에 한국에서 의류 사업을 하는 여성 사업가로 늘 바쁘게 살았다. 바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여겼고 더 바쁘게 사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바쁘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줄 알았다. 그렇게 살다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예수의 생애도 말할 수 없이 바쁘셨다. 공생애 기간동안 주님의 일상도 사람들과 만남으로 분주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예수를 만난게 그렇게 좋은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성격이 바쁘게 사는게
체질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고작 3년 일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말씀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아 교회를 개척하여 6년간 시무하다 첫 안식년이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성경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모든 것을 거기에다 초점을 두고 교회를 개척하고 열심이 특심되어 기도원, 뜨레스디아스, 선교 등 온 몸과 정성을 다하여 분주하게 사역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런 일들이 지치고 짐이 되기 시작했다. 마음의 병으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목사가 이래도 되는가?”라고 스스로 자문할때 쯤, 하나님께서 분주히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주셨고 실제로 그런 환경까지 만들어 주셨다. 왜 그러실까? 분명히 무슨 뜻이 계신 것 같다는 의문이 생겼다.

기도하며 기다리던 어느 날 그 비밀이 파노라마처럼 드러났다. 예수님이 인간에게 약속하신 생명 부활의 전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초대였다. 주님으로 부터 오는 기름 부음이 내 안에 잔잔히 흐르더니 소리 없이 예수님의 사랑의 눈물이 내 속에 며칠간 흘러 넘쳤다.

그제서 돌아보니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참 뜻에 관해서 내가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것을 알았다. 참 뜻에 소홀했다는 것은 그동안 성경을 율법적으로 해석하여 그 긴 세월 동안 지치고 쓰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감추어진 만나를 주겠다고 하셨다.(계2:17) 감추어진 만나는 말씀의 숨겨진 참 뜻이었다.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사역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는 큰 문제가 발생 했을 때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마치 흑암으로 쌓인 동굴을 지나는 심정이였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이 일은 나 자신의 옳다 함으로 수많은 세월을 쌓아온 내 믿음을 심판하여 허구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셨다. 율법 아래서 살았던 긴 연단의 세월을 거쳐 해묵은 신앙생활에 더 이상의 미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위기는 영적인 위기였고, 이 과정을 통하여 나의 시들은 영혼은 소성케 된 것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을 연결시키기 위함이고, 그 연결 방법은 십자가였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십자가를 통과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니 사랑 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흐르는 기쁨의 새 노래가 나왔다. 내가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은 시간을 경험하는 큰 사건이었다. 그 시간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의 시간에 메이지 않고 진리 안에서 풍성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냉정한 마음으로 뒤 돌아보니 “서로 사랑하라 용서하라” 전했지만 그런 능력이 내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이다. 사랑은 존재이고 사랑을 하려면 먼저 자신이 말씀에 의해 사랑의 존재로 거듭나야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시간을 초대 받고 부터는 더 이상 분주하지 않고 주위사람을 바쁘게 몰아부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 답시고 분주하게 허둥 댔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써 나의 인생 전체가 새롭게 해석되고 놀랍게도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사랑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이기에 사랑을 하려면 먼저 자신이 말씀에 의해 사랑의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이런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생명의 세계기에 여기에는 어떤 계산이나 의도, 목적이 있을 수 없다.

어느날 교회에서 새벽 기도시간에 갑자기 환상이 열리더니 예수님이 아주 가까이 내 눈 바로 앞에 서 계셨는데 두 눈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고 선홍색 피 눈물이 고였고, 그 모습을 보게 된 나는 그 진한 사랑에 아무 말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차마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엘리엘리라마사막다니’ 부르짖을 정도로 나를 그렇게 불타는 사랑으로 살리셨다는 감동이 되어 한 참 동안 말 문을 열지 못했다. 나의 내면에 널뛰는 자존심과 자아, 오만 이것들이 박살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냥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은 이론과 관념이 아닌 실제였다.

이제 나의 사역은 말씀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으로 확실히 방향이 잡혔다. 인생에 대한 신뢰와 동의가 내 안에서 다시 불 같이 일어난 것이다. 복음은 반드시 죽음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게 되었다 그 동안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 졌든 안 이루어 졌든 지나간 그 긴 시간은 분명 나에게 유익이었음을 깨달았다. 고통은 고통대로 나의 인격적 성숙에 기여를 했고, 기쁨과 슬픔은 그 나름대로 내 인생의 고유한 빛깔로 나타내 주었다.

다시 보는 복음으로 생명을 전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몇 년 동안 성경 공부 모임이 진행되었다. 말씀을 달게 먹던 성도들의 열성으로 사이리니 교회가 개척됐다. 긴 세월 율법에 지친 분들과 또 생명부활을 체험 하지 못한 분들에게 생명 부활이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하셨다.

사이리니 교회 전화 (714)809-7711. 홈페이지 www.cyrene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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