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특집
이 가을에 생각나는 그 성도
"용서했어요" "고맙고 감사해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어요"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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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27 [07:1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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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오면 왠지 옛 추억이 떠오르게 된다. 그 옛추억에 잠겨 생각이 꼬리를 물때면 문득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를 해오면서 생각나는 그때 그 사람을 기억해본다.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던 이에게 용서한다라는 말을 미처 전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이 달에는 본지 지면을 통해 목회자가 기억나는 성도에게 전하지 못했던그말을 전하는 지면을 꾸며봤다. <편집자주>
 
“문 집사님 감사해요”
홍성화 목사(LA 감사한인교회)

조금 늦게 신학공부를 시작하여 사역해온지 6년이 지나고 있다. 전도사 시절을 거쳐 목사안수를 받고 3년 전에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개척교회라는게 쉽지 않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개척예배를 준비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는 분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정말 몇사람이 올까 염려도 되었다.

그랬던 그날 오히려 초청장도 받지않은 뜻밖의 한 사람이 첫예배에 나왔다. 미처 초청장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첫 예배에 나와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금까지 교회에 출석하여 열심히 사역하며 섬기고있다. “ 문집사님, 감사합니다!”

“과거 청산한 자매 자랑스러워”
나성균 목사(NC, 샬롯장로교회)

미공군이 약 3,000명 가까이 근무하는 군산의 미군 비행장 옆의 직업 여성들을 위한 선교를 위해 내가 급파된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스캔들이 쉽게 만들어지는 곳인지라 전임 목사님의 선교가 뜻하지 않는 일에 봉착되어 교회문을 닫은지 약 한달 후인 1982년 9월부터 한달 노회지원금 2만원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괴롭고 힘들었던 것은 어렵게 혹시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여 구원받았어도 다시나가 클럽에서 일하며 미군손님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정말이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 같았다.

어떻게하면 이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놀랍게도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의 손길이 함께하는 자매가 한분 나타나 자기의 과거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함께 기도하며 정식으로 결혼하도록 간구한 결과 좋은 미군을 만나 결혼하게되어 어렵게 모금하여 헌당한 그 교회당에서 헌당식 다음날 결혼식을 주례하고 그날로 유학차 다시 도미하였다.

그 자매는 누구보다 복음과 구원의 자유를 만끽하며, 가는 곳마다 전도하며 제자양성을하여 자기와 똑같은 예수님의 제자를 수없이 길러내고 있다. 그토록 복음이 필요한 곳에 하나님의 복음의 전권대사로 천국의 삶을 사는 그 자매와 나는 영적인 대화를 깊이해 오고 있다. 그의 성화의 몸부림이 나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주고, 지금까지도 35년간 서로의 교제가 천국의 교제임을 자랑스러워 하고있다. 순수하고 진실된 그녀의 예수님 사랑하는 삶이 천국에서 가장 큰 영적 열매라고 인정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착하고 충성된 종 박순례 집사”
이용한 목사(CA, 진리동산교회)

1978년도 경기도 이천에서 목회를 시작해 1981년 서울 개봉동에서 서울 서부교회를 개척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교회 조직을 구역 중심으로 하면서 구역의 모든 관리, 심방, 설교를 구역장이 맡아서 하도록 교육시켰다. 물론 구역 공과는 직접 만들고 구역장에게 교육을 시켰지만 구역에 관한 모든 일은 구역장이 맡아서 직접 관리 교육하였다. 많은 도전적인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 가지만 소개 하도록 하겠다.

여러 구역장 중에 특히 박순례 집사라는 분이 눈에 띄게 주 앞에 충성하였다. 당시 목회한 서부교회 온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를 새벽기도회, 주일 낮, 저녁, 수요예배까지 전부 노트에 기록하여 그 받은 말씀을 집에서 자녀들에게 재교육시키고 말씀대로 살도록 훈련시켰다. 그 중에서도 박순례 구역장은 본인이 직접 이불공장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최소 일주일에 두번 이상은 구역 식구들을 심방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을 위해 전구역 식구들이 합심하여 금식하고 담임 목사에게 넌지시 말하면 나도 함께 금식했다. 년말이 되면 구역 식구들이 구역장 집에 모여 신년 하례식을 하는데 일년 동안 심방하고 기도하고 말씀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유이다. 그래서 당시 서부교회에서는 구역장 한번 하는 것이 소원인 성도들이 많았다. 더 많은 간증들이 있지만 내 목회 생활 중 이 박순례라는 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착하고 충성된종’ 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채인봉 장로님 보고 싶어요”
김정숙 목사(기도의 집 대표, 김영석 목사 부인)

1977년 남편의 전도사 시절 성북동에서 첫 개척을 시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채인봉 장로님(당시엔
집사님이셨다)은 불치의 병을 앓고 계시다가 예수믿고 치유가 되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셨다. 그러면서 수요예배와 주일 저녁예배는 집에서 가까운 우리교회에 나오셨다. 채장로님은 치유해주신 하나님께 보답하고자 자신의 고향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서원했다고 한다.

어느날 저녁에 예배를 드리던 중인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당황스러운 순간에 “여러분, 깜깜해서 앞이 안보여도 귀로 들으실수 있으니 설교를 계속하겠습니다”하고 남편은 끝까지 예배를 마쳤다. 그날 저녁 채장로님이 우리 부부를 잠간 보자고 하시더니 대구에 내려가 개척을 하자고 하셨다. 마침 임지 이전을 놓고 기도하던 중인 우리는 깜짝 놀랐다. 장로님은 그날 저녁 자신이 다니는 교회 구역장, 조장들과 함께 ‘개척교회 담임목사 후보’를 몰래 선 보러 왔던 것인데, 마침 정전이되었고 그 와중에도 침착하게 원고없이 설교를 끝까지 한 남편을 대구 개척교회에 같이 갈 내정자로 꼽았던 것이다.

함께 대구로 내려가 개척교회를 하는 동안 채장로님이 자신의 아들뻘 되는 담임목사를 ‘우리 목사님’이라 부르며 섬겨주었던 에피소드들은 말로 다 할수 없을 정도다. 버스를 타면 학생들을 일어나게 하여 젊은 담임목사를 먼저 앉힐 정도였다. 그 장로님은 와세다대학 법대를 나왔기에 성도들의 어려운 법적 문제들을 앞장서서 해결해주셨다. 우리가 미국에 가야한다고 했을때 가지말라고 붙들던 장로님이 “하나님이 가라”신다는 말에 겸손하게 순종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이 목사부부를 섬겨주셨던 것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자주 생각이 난다. “채인봉 장로님! 보고싶습니다!”

“최 집사님, 차 한잔하고 싶어요”
오충성 목사(하늘기쁨의교회)

가을에 생각난다는 말은 왠지 외롭다 느낄 때 생각나는 성도를 묻는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닌 편안하게 차 한잔 할 수 있는 성도가 생각난다. 바로 최 집사님이다.

자신의 어려움이 아닌 제 아내인 목사 사모와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신 최 집사님. 더 나아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 함께 해 주고픈 마음이 있는 그. 그를 알게 된 것은 목회의 길을 더 따뜻하게 갈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라 생각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회복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사용하고 계실 최 집사님이 생각난다.

“나에게 많은 도전 주었던 C집사님”
김수현 목사(더웨이처치)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늘 생각나는 C집사님이 있다. 미국에 이민 오셔서 어렵고 힘든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극복하셔서 참된 행복을 누리셨던 집사님. 항상 긍정적으로 저에게 대해 주셨고 기쁨이 넘쳤던 집사님에게 많은 도전을 받았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지금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위한 기도와 전화로 안부를 묻고 믿음 안에서 우정을 키워 나가고 있는 지금. 점점 쌀쌀해 지는 날씨에 C집사님과 함께 걸으며 세월의 흔적들을 하나 둘씩 엮어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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