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엄마 죽음 후 소망잃은 내게 다가오신 주님
주님 부인하던 삶에서 변화받고 결혼 통해 훈련받아
정은미 사모(감사한인교회 정우영 부목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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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6 [01:5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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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미 사모(감사한인교회 정우영 부목사 부인)     © 크리스찬투데이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많은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을 휩쓸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때부터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꾸기 시작했고 유학도 생각하고 있었다. 미대 진학을 준비하였지만 엄마는 신학교를 가라고 권유하셨다. 특선으로 붙을 줄 알았던 미대 입시에 보기좋게 낙방하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신학교에 가야 한다며 나를 아이들 전문 사역자가 되는 수업을 받게 하셨다.

엄마는 집안에서 예수믿는 사람 1호였다. 모든 친지들을 전도하셨고 뒤늦게 공부하셔서 전도사이면서 기도원 원장으로 시무하셨다. 엄마는 신유의 은사가 있으셨고 특히 청소년 사역과 선교지 후원으로 방글라데시와 필리핀에 많은 신학교와 교회를 건축하셨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 등 수 많은 일들을 하셨다. 나에겐 너무도 멋진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가 하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아직 미술에 미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학장님께 말씀했었는지, 어느날 학장님이 나를 불러“영국 왕실에서 미술 대회가 있는데 한번 나가보지 않겠냐”고 추천해 주셨다. 나도 나의 실력을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었서 그림을 그려 영국 왕실로 보냈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그림대회 '3등'이란 상
을 받았다. 난 그 순간 내가 꿈꿔왔던 미대는 못갔지만 왕실에 내 그림이 전시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이 행복했고 미대에 가지 못한 미련을 접었다. 그리고 신학교에 수업 중에 아동미술 심리가 있었다. 아동들의 심리를 미술이란 도구를 통해 분석하고 배우고 하는 과정인데, 미술이라서 인지 너무도 재미있고 흥미로와 그 수업 덕분에 점점 신학교에 적응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볼일이 있다고 운전을 해달라고 해서 함께 가다가, 길에 차가 많이 밀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내 차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옆에 앉아있던 엄마는 의자와 앞유리에 머리를 심하게 부딛쳤다. 나 역시 심하게 몸이 흔들리며 박혔다. 뒤에 오던 덤프트럭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하여 우리 차를 세게 박아버린 것이었다.

나는 젊어서인지 타박상 정도였지만 옆에 있었던 엄마는 그 날부터 조금씩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니다 1년이 넘어서 마지막 병원에서 이유를 찾게되었는데 “희귀병인데 목에 있는 신경을 하나 건드려서 몸안의 모든 신경이 죽어갈 겁입니다”라는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엄마는 정말 몸에 모든 신경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리의 신경이 죽어서 걷지 못하더니 그 다음엔 손에 신경이 죽어가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다음엔 언어 신경이 죽어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엔 온 몸의 모든 신경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후 4년 동안 “하나님!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정말 열심히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병간호를 했다.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고 살리는 일을 하던 엄마를 왜 이렇게 원인모를 희귀병에 아프게 하시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결국 엄마는 4년 반 동안 아파서 누워계시다 온 몸에 신경이 마비되어 결국 44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을 겪으며 이제껏 엄마가 믿었던 하나님은 없다며 존재를 부인했다. “모두가 거짓말이었어,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한 엄마를 살려 주셨겠지…” 하면서 하나님을 죽도록 원망했다. 내가 운전하던 차에서 돌아가셨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깊은 우울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먹을 수도 없었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이 세상에 살고 싶은 미련은 더더구나 없었다. 엄마의 장례 후로 매일 “너도 엄마 따라서 가야지” “엄마는 내가 죽인거야”라는 소리가 하루종일 내 귀에 맴돌았다.

결국 난 자살을 결심했다. 엄마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살아서 뭘하나 생각했다. 하루 하루를 어떻게 죽을까 고심한 끝에 수면제를 먹고 죽기로 결정했다. 내일이면 죽겠다고 날을 정했다. 그리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추억이 있던 이곳 저곳을 돌아보다가 전에 다녔던 미술학원에 갔다.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이 간곡히 부탁을 하는데 “죽은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한번만 내소원을 들어달라”면서 어디를 같이 가달라고 했다. ‘죽은사람 소원도’라는 말에 내가 내일이면 죽을 사람인데 이사람 소원이나 들어 주어야 겠다고 했다. 그래서 따라간 곳이 ‘뜨레스 디아스’라는 수양회였다.

한 사람의 소원대로 그곳에 같이 가주고 다음날 죽기로 결심을 했던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셨다. 죽도록 하나님을 부인했던 내가,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시몬 베드로의 고백이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장 16절)”계속 그 말씀이 반복되고 고백되었다. 어느덧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온 몸으로 흐느끼며 그리스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정확히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네 엄마는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데려 갔노라, 네 엄마의 사명은 거기까지 였다” “하나님 잘못했어요. 제가 주님 없다고 부인하고 원망하고 죽으려 했어요. 잘못했어요. 사랑합니다. 주님! 이제껏 내 입으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했던 모든 잘못들을 용서해 주세요. 주님 사랑합니다”며 고백했다.

소망없던 나의 삶에 이론적으로만 알았던 주님을 만났다. 그리고 나에게 닥친 환경 때문에 주님이 없다고 부인했던 내가 엄마의 죽음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 속에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후론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을 전하게 되었다.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고 이제는 그 주님을 이 세상의 그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이전엔 내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해서 친구들도 동네 사람들도 말을 걸 수가 없었다는데 그 뒤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사람을 만나야만 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기쁨이 넘쳐났다. 나중에 기도 은사가 있으신 여러분들을 통해 엄마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기도가 엄청 많이 쌓여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엄마의 기도로 내가 자살하기 직전에 주님을 만날수 있었던 것이라 여겨졌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성경공부에서 남편을 만났고 6개월 짧은 기간 연애하고 결혼했다. 남편은 축구천재라는 말을 들으며 고려대학교에 스카웃 되고, 대학교 2학년때는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프로축구팀으로 최고인 차범근씨가 감독으로 있던 울산 현대 팀 베스트 11의 선수중에 한명으로 활약했다. 결혼하고 나서 구단에서 브라질 축구유학도 보내주어 브라질 축구도 배우고 왔다. 우리 부부는 남편은 축구로, 나는 그림으로 나중에 선교하러 가자고 이야기 하곤 했었다. 우리의 목표는 축구선수로 차 감독처럼 성공해서 세계를 전도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와는 달리 남편은 시간이 갈수록 시합에 나가면 계속 잦은 부상으로 결국 33살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운동하던 남편의 모든 삶이, 모든 꿈이 무너졌다. 그리고 은퇴 후에 그는 내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깊은 상실감과 좌절감에 휩싸여 예수님은 없다고,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살거라며 예수님을 떠났다. 남편은 그렇게 길게 8년 그리고 아주 깊게 5년 동안 방황하며 지냈다.

남편의 열심과 믿음을 보고 결혼했던 우리의 결혼생활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예수님은 남편을 포기하시지 않을 것을 믿었다.

그러던 중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감사한인교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버뱅크에서 오랜지카운티로 이사를 결정했다. 방황하는 남편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래도 교회엔 출석을 했다. 어느날 예배시간에 늦게되어 안내위원이 자리가 없으니 따라오라며 자리를 안내했다. 남편이 술이 덜 깬 상태에 얼덜결에 따라 갔던 자리는 강대상 맨앞자리 였다. 강대상 바로 앞자리,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앞자리에서 졸 수도 없이 앉아 있었다. 쑥스러워 목사님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왼쪽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그 십자가에서 빛이 나면서 자기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걸으셨던 그 예수님이 생각나면서 자기가 죄인 임이 한 순간에 깨달아졌다고 했다. 특별한 부흥집회에 간 것도 아니고 주일 예배시간에 하나님은 남편의 마음에 찾아와 주셨다. 남편 역시 지식적으로만 예수님을 알았고 자기 열심으로 봉사도 해보았지만, 그의 삶은 8년 동안 죄의 얽매여 죄의 종으로 살고 있었다.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남편이 예배시간을 통하여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매주일 강대상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린지 11년이 되어간다. 강대상 맨 앞자리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다. 내가 인격적으로 만난 예수님을,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기도했던 남편이 예배시간에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은 남편을 잠깐 시키셨던 축구선수로서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복음에 쓰임받는 사람으로 불러주셨다. 담임목사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남편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고 목사안수를 받고 감사한인교회에서 부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엄마가 나를 그토록 신학교에 가라고 했던 일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갈 길을 미리 아셨던 것이었다.

주님은 결혼 전에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미술을 통해 일할 수 있는 미술 심리치료사 공부를 하도록 해주셨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행복했고 그림을 분석하고 사람의 내면과 외면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모든 과정을 행복하게 마치게 하셨다. 2년간의 인턴 과정들 속에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치료하게 하시고, 특별히 우리처럼 깨져가는 가정의 부부들도 많이 만나게 하셨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치료받는 가정이 생겼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중학교 2학년 부터 그토록 오랬동안 기도했던 일이 바로 미술 심리치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내가 아무리 나의 갈 길을 계획하고 구상했어도 결국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엄마의 사고를 통해, 결혼 생활을 통해 교만했던 내 자신을 훈련시키셨다. 나를 다듬으시고 내 걸음을 인도하셨다. 지금 나에게 달란트로 주신 미술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을 위해 미술심리 치료의 도구를 들고 필요한 모든 곳에 달려갈 것이다. “사랑합니다. 나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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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하십니다 맛디아 16/07/27 [20:56] 수정 삭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영혼구원으로 인도해 주심이 감사 하네요 모든일은 주님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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