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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 갖고는 싶은데…
대다수가 그림의 떡…구약의 개념보다 사역의 효율성에 초점 맞춰야
송금관 · 그레이스 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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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8/25 [02:0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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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에게 안식년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안식년은 로망이다.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의 고된 사역 현장에서 넉넉지 않은 사례비로 가정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목화자로서는 잠깐의 쉼과 재충전의 기회라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안식년을 소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안식년을 가져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일부 중대형교회의 담임 목회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안식년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겐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소수 특권 계층이 누리는 안식년은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으며 큰 교회의 목사들과 교수들이 전유물로 사용하기 위한 엄격한 의미에서 성경 왜곡이며, 종교인 비과세, 목회 활동비 등과 같이 부당한 특혜가 교회를 타락시킨다고 까지 말한다.
 

안식년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해를 기점으로 매 칠년이 되는 해를 말한다. 원어 ‘샵바트(Sabbath)’는 본래 ‘안식일’의 뜻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안식년(레위기 25장)’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 말의 동사형인 ‘샤바트’는 ‘그치다’ ‘쉬다’ ‘일을 멈추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크리스천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는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안식년에 대해 성경에서는 토지의 안식년은 분명한 기록이 있지만 목사나 선교사에 대한 안식년 제도의 언급이 없기 때문에 기득권에서 만들어낸 전통내지 관습이라고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의 저자 강만원 씨는 안식년에 대해 “만약 사람을 위한 안식년이 있다면 목사나 교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고루 안식년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에 따른 ‘공의’가 아닌가”라며, “담임목사에게는 있고 부목사에게는 없으며, 교수에게는 있되 교사에게는 없는 안식년이, 사람을 차별하며 특권을 독점하는 안식년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라고 묻는다. 일반 성도들이나 부교역자 입장에서 볼 때 다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반대로 대학 교수와 건실한 기업체의 임원들이 많이 출석한다는 한국의 영동교회는 안식년이 제도로써 잘 정착된 교회 중 하나라고 영동교회 출신 J 목사가 귀띔해 준다. 교수 자신들이 안식년을 경험했거나 기업체에 다니는 교인들 중에도 상당부분 해외연수와 같은 제도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교인들이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안식년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부교역자들에게도 일 년은 아니어도 5-6개월 정도의 휴식기간을 주고, 여전도사의 경우 성지순례를 보내는 방식 등을 택한다고 한다.
 
고신총회교육원 대표간사와 원장 시절에 두 번의 안식년 경험이 있는 나삼진 목사(오렌지카운티 샬롬교회)는 교회를 기준으로 볼 때 목회라는 것이 24시간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24시간 일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목회자는 정신적 압박, 설교의 부담, 교인들과의 관계 등에서 잠시 내려놓고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의 내적인 필요도 충족시키고 새로운 정보나 새로운 계획도 세울 수 있다는 면에서 안식의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사역 자체를 객관적으로 놓고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하시면서 여섯째 날까지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고 일곱째 날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하나님께서 피곤해서 안식을 하신 것이 아니다. 안식의 개념으로 이 부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안식은 비단 목회자에게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쉼과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하루 동안의 사역을 마무리 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고, 칠일 째에 안식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과 사역도 두고 보면서, 감상하고, 평가하고,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어떤 목회자처럼 ‘내가 평생 하루도 안 빠지고 교회에 가서 산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의 충성과 헌신에 대해서는 인정이 되지만 그것이 우리 시대에 정말 지혜로운 목회 방법인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부에나팍에 사는 P 목사는 25년 목회하면서 단 한 번도 안식년을 가져보지 못했다고 한다.  시간적, 물질적 그리고 교회 상황이 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또 담임목사가 교회를 비웠을 때 교회가 와해되고, 어려워지는 일들이 걱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 여건만 허락된다면 안식년을 가져볼 의향을 가지고 있다.
 
풀러톤의 K 목사 역시 지금은 은퇴했지만 38년 목회를 하면서 일생에 한 번도 안식년을 가져보지 못한 경우다. 이유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개척교회를 시작한 상황에서 재정적인 면이 큰 요인이 됐다. 또한 한두 달이라도 안식월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됐을 때는 부목사가 없는 상황에서 막상 믿을만한 목회자를 구할 수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또한 교회에서 허락한 휴가 기간조차 힘들게 생활하는 교인들을 생각해서 주일날 강단을 비울 수 없었다고 한다. K 목사는 “은퇴 후 생각해보니 당시 안식년(월)을 가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다른 교회에서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만약 그랬으면 더 좋은 목회를 했을 텐데…”하며 아쉬움을 보였다.
 

한국의 경우 안식년을 행하는 교회나 목회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없지만 1%의 수준은 고사하고 0.1% 정도가 될지도 의문이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그것은 한국 교회 전체를 놓고 볼 때 미자립 교회나 개척 교회들이 많고 오랜 기간 안식년을 가질 만한 경제적 여건이 따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안식년을 하게 되면 외부 강사가 와서 강단을 지켜야 하거나, 부교역자들이 일을 더 한다든지 해야 되는데, 안식년을 다녀오는 목회자에게 뿐만 아니라 뒤를 감당해야할 교역자들에게도 사례가 더 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또한 외국에 나가게 되면 항공료를 비롯한 체재비 등이 상당부분 지원이 되어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식년을 누리는 비율은 절대적으로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대형 교회의 경우는 사역 자체가 워낙 크고 방대해서 담임 목사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또한 가족을 남겨두고 목회자 혼자만 안식년을 다녀오는 경우는 두 집 살림이 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이민 목회의 경우는 안식년을 가질만한 교회의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 되더라도 담임 목회자가 안식년을 마음 편히 갖지 못하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바로 목회의 안정성 문제 때문이다. 담임 목사가 공석이 되었을 때 오는 교회의 혼란내지는 교회의 분열과 같은 해프닝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안식의 기간을 오래 갖지 못하는 것도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샌퍼난도 밸리 지역에서 목회하는 L 목사의 경우는 자신의 교회에 유학생인 목사가 출석하고 있었는데 강단을 맡기고 4개월 동안 안식을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 그 사이에 몇몇 장로들이 부추겨 유학생 목사와 함께 따로 개척하는 일이 벌어져 4개월도 못 채우고 돌아온 경우도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목회자의 결단과 용기도 필요하다.
 
팜데일 지역의 H교회 J 목사는 안식년은 아니지만 신병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사이 몇몇 성도들이 마치 신천지에서 쓰는 수법과 같이 다른 교인들을 포섭하고 다른 사람을 불러다 담임으로 앉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회는 완전히 뺏겼고 J 목사는 그 충격으로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목회 일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는 척박한 이민 목회의 현실을 드러내주는 수많은 케이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좋은 예도 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목회하는 B 목사의 경우 뉴질랜드에서 목회할 당시 한국의 같은 교단 목사와 한 달 동안 강단 교환만을 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에는 설교 이외의 목회부분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고 숙식도 양쪽 교회의 사택을 서로 이용함으로 경제적 부담도 없이 짧지만 안식년의 목적에 맞게 여유 있고 효과적인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선교사들의 경우는 국제선교기관이나 선교기관들 중에도 규모가 제법 있는 곳은 4년이나 5년에 한번 1년의 안식년을 준다고 한다. 또한 큰 교단의 총회기관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도 혜택을 입는다. 총회 산하의 교육원이나 의료원, 선교원에서는 중·장기적인 전문 사역을 위해서 7년마다 안식년을 허락하기도 한다. 물론 총회 차원에서 안식년 동안의 학비와 기본적인 사례를 공급해 준다. 이러한 경우는 단순한 휴식의 의미가 아니라 안식년을 보내주는 단체가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안식년을 다녀오는 개인에게는 공부를 짧은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고된 기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한층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나삼진 목사는 안식년을 논할 때 구약의 개념을 도입해 이해하는 것보다 사역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안식년을 갖기 이전에 먼저 잘 계획하고 철저히 준비하라고 당부한다. 목회자의 특성상 늘 설교하고 심방하고 상담하는 현장 중심의 사역을 하다가 완전히 몇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목회자에 고달픈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잘 준비해야 효과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위 과정을 한다든지, 집필 또는 특별한 연구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 꼭 필요할 때 안식년을 갖는 것이 좋다. 또 교회적으로 받아드려지고 교회의 인식이나 제정부담, 목회의 안정성 등 골고루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과정으로 여행, 공부, 집회또는 선교지를 돌아보거나 기독교 유적지 방문 혹은 성지순례 등의 형태로 보내는 것이 적절하다”
 
나 목사는 이민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안식년이라는 말을 꺼낼 정도가 되려면 제법 교회가 안정이 되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 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며, 학위 과정이 아니더라도 유수한 건강한 교회들을 둘러보고 짧게라도 목회연수의 기간을 갖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목회자가 성장하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 목사가 한자리에 앉아 파묻혀 있으면 교회는 후퇴한다. 목회자가 기도하고 읽고 보고 듣고 공부하고 눈이 열리고 깨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이민교회 목회자들은 한국 교회의 건강한 교회를 돌아보고 온다든지 같이 목회를 연구하고 또 목회자들과 만나 서로 깊은 사귐을 갖는 등 배움과 재충전 그리고 재창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혀 준비 없이 여기저기 설교만 하러 다닌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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