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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김성수의 기념비 세우지 마라
박기영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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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5/27 [07:4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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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보다 김성수 목사님을 더 사랑하시지 않았나요  예수님 죽으심에 애통해 본적이 있습니까  질투하신 하나님 …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요” (2013년3월7일 입관예배, 이장우목사)
살아생전에 고인이 지칭하던 ‘인터넷 서머나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서머나 인터넷 라이브’로 세계 주요 도시를 상대로 김성수 동영상이 마치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추종자들은 “사인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방법은 많다”라는 명분과 당위성을 앞세운다. ‘추모 차원’을 넘어 ‘망자 김성수의 숭배와 우상화’ 현상이 실로  점입가경이다. 기독교계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칼빈의 말처럼 “교회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진다면” 수백번의 동영상을 권하고 또 권해야 할 일이나 안타까운 것은 소위 ‘서머나’의 집단이 김성수를 거의 신격화 시켜 동영상으로 기념비를 세우고 있다.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필자가 본지 창간 제10주년 기념특집으로 '미주한인교회 이제는 새로워져야 한다'(2007년6월6일자) 에서 '부흥'이라는 주제로 2천년대 초에 주목 받고 있던 남가주교계의 채동선 전도사(2001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 이현수 목사(2002년, 뉴호프채플 )들을 언급한적이 있다. 또한 고 김성수 목사(2004년, 남가주서머나교회)도 뜨는 40대 목회자중에 하나로 계속 지켜 보았다. 3인의 젊은 40대 목회자들은 교계를 향해 신선한 도전과 기성교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병리현상과 인본주의적인 기복신앙의 병폐를 강도 높게 지적하고 비판하였다. 어쩌면 시기적절하고 당연한 그들의 외침이었는지 모른다.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향했던 목적만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필자가 그들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했던 부분이 있었다. 기성교회의 약점을 시정하려는 열심이 오히려 성경의 기준에서 이탈되어 교회사에 이단으로 정죄 받았던 '몬타누스'처럼 될 것을 염려하였다. 생전에 김성수가 경계선상에 있음을 필자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인이 이단이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김성수 현상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로 성경의 기준에서 이탈되어가고 있다.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이 성경의 기준이다. 모든 진리의 원천은 “성경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Christum ex fontibus Praedicare)”, “성경의 초점은 예수그리스도를 제시해야 한다.” (칼빈)
둘째는 예수복음의 보편성을 소위 김성수식으로 차별화 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곧 그가 전한 설교만이 “새로운 성령이 자기를 통해서만 말씀하신다”는 뉴앙스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차제에 고인의 유가족에게 정중히 요청 드리고 싶다. 고인의 ‘1천여편’의 설교에서 주옥 같은 내용 몇편을 엄선하여 추모 동영상 코너를 회원제로 만들어 운영하라. 나머지는 다 수거하여 가족들이 보관 혹은 신학교 도서관에 기증하여 연구용으로 활용토록 하라는 것이다.

고 김성수의 신학과 메시지 그의 삶을 고찰해 본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자는 수십편의 설교와 관련된 내용, “보고싶은 서머나 가족 여러분께 …”, “멀고도 먼 진리의 여정”, 큰아들이 아버지를 그리며 썼다는 편지(I miss Him), ‘입맞춤의 콘서트’현장 동영상, 남가주서머나교회 후임목사 청빙과 관련된 다양한 문서들을 많이 참조하였음을 밝혀둔다. 망자를 폭넓게 이해하게 되었다.
 ‘서머나 김성수’ 현상 에 대한 언급은 언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의  차원이다.
 첫째 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왜 고인을 그렇게도 힘든 삶으로 몰아 넣었던가 “멘토 하나없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적들의 공격”, “아버지는 너무도 악전 고투의 삶을 살았다. 침밷음과 친구들의 배신, 살해위협, 고의적인 독살의 위협”이 있었다( 아들의 편지내용). 하나님이 허락하신 주권적인 ‘육체의 가시’였을까 아니면 ‘자승자박’하여 자신이 만든 ‘육체의 가시’였을까 둘째 그의 메시지 중심에는 김성수의 생각과 외침과 울분이 예수의 가르침보다 많다. 오히려 예수의 모습은 변두리로 초라하게 밀렸다. “철저한 인본주의와 율법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을 수 없었다 … 저는 자꾸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삶에 대하여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염세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셋째 그의 메시지에는 기쁨과 즐거움 소망과 평안 대신에 세상을 향한 증오와 분노가 있었다. Panic(공항)상태에서 나타나는 극도의 불안(Extreme anxiety)과 병적인 공포감(Contagious fear)이 묻어 나오고 있다. “그렇게 숨어서 대적들과 세상을 향해 휘둘러야 했던 분노의 칼을 저에게 들이 되어 그게 병이 된다고 하더군요 …”
 
넷째 그의 성경해석은 지나치게 알레고리(풍유적 해석)에 치우쳐 있어서 성경본문(텍스트)을 ‘주관성과 임의성, 인위성’ 으로 원저자의 의도를 오도시키고, 곡해시켰다. 거침없는 발언들과 정제되지 않고 원색적인 어휘로 회중들은 열광적으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개혁자 루터와 칼빈도 이 해석을 배격한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의 삼중적 의미(문자, 도덕, 영적) 의   심오한 신비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다섯째 그가 말하고 주장한 개혁 신학과 신앙의 입장은 진정한 개혁신학과 신앙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멀고도 먼 진리의 여정’이라는 칼럼에 보면 “침례신학, 감리교신학, 장로신학을 각각 2년씩 공부할 수 있었다. 왜곡된 개혁주의 신학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라는 내용이 있다. 다양한 신학을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학문의 연구자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신학은 ‘모자이크 신학’이라고 해야 정직한 표현이다. 개혁주의 5대신앙의 슬로건, 칼빈의 강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으로 성경공부 한다고 해서 개혁신앙이 아니다. 개혁신앙은 Cum Verbo(말씀과 더불어), Per Verbum(말씀을 통해), In Verbo(말씀안에서)가 기준이다.
 
여섯째 원어성경연구를 비롯한 지식의 탐구는 탁월하였으나 고인이 추구하고자 했던 ‘진리의탐구’는 ‘지식으로 얻은 외침’이었고 결국은 여정으로 마쳤다. “목회자의 설교는 말과 함께 목회자의 삶이 동시에 전달되는 것임을 오래도록 잊었던 것입니다” 고인은 패기와 의욕과 용기는 충만하였으나 선포하는 대로 자신이 살지 못하는 자학의 흔적이 유달리 강했다.  필자는 그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혁명가’, 용기있는 ‘반항아’, 진리의 한계를 넘지 못한 ‘작은 개혁자’라고 불러 주고 싶다.
 
일곱째 그의 메시지에는 가장 큰 결정적인 ‘괴리’가 있다. 곧  자유함의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진리가 자유케 한다” 또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어야”한다(고후 3장17절). 이 문제가 논란의 중심이기도 하다.

주목 받았던 40대  목회자 김성수 목사와 채동선 전도사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그들의 신앙은 예수중심이었다. 채동선은 ‘예수의 본질’, 김성수는 ‘예수의 진리탐구’였다. 둘째 그들의 목회방식은 개방적이고, 개혁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이었다. 셋째 그들의 목회조직은 개인적이고, 모험적이고, 래디칼한 내용이었다. 50대를 훨씬 넘겨버린 그들, 많은 시행 착오와 연단을 통해 더욱 성숙한 목회자로 다듬어져 갔다. 아이러니칼하게 ‘서머나’교인들이 요즈음 마가교회에 많이 출석하고 있다는 취재 결과이다. 떠나는 교인, 정착하는 교인도 있다고 한다. 채동선 전도사는 14년의 목회현장을 이렇게 회고한다. “ ‘나의 흔적’이 아닌 ‘예수의 흔적’, 말씀선포자의 따뜻한 인격, 메시지에서 발산되는 은혜의 인력(引力)을 위해 애쓰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예수님과 가까운 설교자가 되고 싶다. 말씀을 묵상할 때, 정리하고, 증거할 때, 증거한 후에 Feed back이 있을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 합니다”라고 고백한다.

김성수목사는 이제 망자가 되었다. 마치 칼빈의 생애처럼 “완강한 고집, 성급함, 갑자기 폭발하는 분노 너그러움과 개방성이 없는 것”  칼빈이 55세를 일기로 일찍 생을 마감한 것까지 비슷하게 많이 닮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묘비를 세우지 말도록 유언하고 갔다.
 ‘서머나’ 김성수 현상의 동영상들이 기념비가 되어서는 결코 않된다. 우리 모두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구속한 주만” 보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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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별 일 없이 살아내는 그리스도인 원찬연 15/12/12 [08:18] 수정 삭제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그리스도의 그 복음만으로 안식을 즐거이 누리는 우리 모두이기를 빕니다.
너의 나됨 보다는 나의 너됨이, 너의 너됨이 나의 나됨으로 밝히 드러나는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 어느 누구에게나 그 마지막 날은 피할 수 없듯이, 그 날에 밝히 드러날 그 영광도 모두가 바라볼 겁니다.
그 그리스도를 경계로 서로 마주 보고 말이지요 ... 샬롬
다양한 의견 카톨릭 16/01/08 [18:05] 수정 삭제
  저는 카톨릭 신자입니다. 우연히 김성수 목사님 설교모음을 접하며 많은 충격과 가르침을 받았으며 오로지 예수님이 참 진리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기념비를 세우거나 우상화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토록 고 김성수 목사님이 갈망하시던 천국에서 저도 훗날에 뵙기를 희망합니다.
기념비 simon 16/09/20 [01:43] 수정 삭제
  신앙인이 아닌 비평가의 글 같아 보입니다. 닥터지바고를 쓴 사람은 한사람이지만 비평가는 수천만 입니다. 그래서 비평가의 글은 가치가 떨어지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탄의 궤계에 의해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 동영상이 사라질까 두려워 유튜브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고 있는데 제 우려가 이글에 나타나는 군요, 그렇다고 사탄으로 보인다는 말씀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 설교 영상은 누구나 볼 권리가 있다는 생각 입니다. 그후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는 생각 입니다. 김성수 목사가 이단이 아닌 다음에야 기독교 교단에서 정죄할 이유도 없습니다. 본인만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 하신 것으로 보이는 군요. 성경 에 출연한 어떠한 선지자 사도도 자신이 성경에 기록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기록 되었듯이 김성수 목사의 설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들여지고 배척 되리란 생각 이고 거기에 컬질을 하는 일은 반대 합니다. 그것이 비록 김성수 목사가 생전에 원했던 바라 해도 상황은 같습니다. 많은 이단이 말씀의 한구절 한단어를 잘라서 해석을 하듯이 수많은 김성수 목사를 반대 하는 분들이 목사님의 설교 전후 문맥을 거두 절미 하고 똑 같이 뚝 잘라서 폄하를 하고 있더군요. 제가 천번을 읽어도 이해 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 주시는 김성수 목사님이 저는 좋습니다. 제가 예수님꼐 나가는 다리로 족하지 김성수 목사를 찬양 하거나 경배 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자신의 의를 드러낸 바도 없다는 생각 입니다. 하나님이 한분이시니 우리가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듯이 김 목사님의 설교가 하나님을 옳게 전달을 하시니 옳다고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의 판단은 듣는 사람의 몫이고 영원의 세계 에서 각자에게 밝혀 지리란 생각 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방법 Sharp 16/12/29 [04:08] 수정 삭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복음이 전해지는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대표적 예: 사도들은 걸어서 칼빈과 루터는 책으로 김성수목사님은 동영상으로 사도들은 없지만 성경은 있습니다. 칼빈과 루터는 없지만 그분들의 책들은 있습니다. 김성수목사님은 없지만 그 분의 동영상은 있습니다. 모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에 거하고자 하는 것...
성령의 열매로 그들을 알라는 주님의 말씀 열매로 그들을 알라 17/10/04 [06:47] 수정 삭제
  의에 속한 소리를 멈추지 마시고, 칼럼을 통하여 계속해서 외쳐 주십시오. 진리가 계신 곳에는 어김없이 자유가 있습니다. 빛이 머무시는 곳은 어두움이 떠나갑니다. 하나님께 속한 교리 안에는 평강과 은혜가 넘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쁜 소식이 됩니다. 하나님께선 절대로 그분의 영광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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