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기도로 불신자 남편이 목회자로 변신
기대치와 정반대의 결혼후회... "내눈의 꽁깍지"
김혜자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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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1/24 [08:1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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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 김혜자 전도사     © 크리스찬투데이
내 외갓집은 ‘똑딱선’이라 불리는 돛단배를 인천에서 타고 몇시간 항해하면 한 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섬 주문도에 있다. 장로와 권사 부부였던 외조부모 때부터 신앙을 지켜온 가정에서 자란 나의 어머니는 믿지 않는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아버지는 날마다 고주망태가 되어 먼동이 틀 때에야 집으로 귀가하시던 분이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를 사명자로 불러 주셨다. 아버지께서는 60세의 늦은 나이에 신학대학에 입학하셨으나 3학년이 되던 62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다. 어머니 권효순 권사는 늘 7남매의 자녀들 중에서 하나님의 종이 나오기를 기도하셨다. 그 중에 동생 권에스더 선교사가 먼저 주의 종의 사명을 받아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25년전 부터 아프리카에서 헌신하고 있다. 
 
학생시절 인천에서 살고 있던 나는 방학때면 언제나 외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게를 잡아 망태기에 가득담아 오던 일, 밀려드는 바닷물과 경주하며 느꼈던 스릴! 그리고 하얀 백사장과 빨간 해당화 등 그 섬마을에서 자연과 벗 삼았던 그 시절을 꿈에도 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그곳에서의 신앙생활은 조그만 마룻방 하나로 된 교회였지만 활발한 신앙생활을 했다. 성가대에서 특송을 했던 일, 성탄절에 성극과 새벽송을 돌았던 일들도 잊을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한국에서 간호사였던 나는 1969년에 미국에서 실시한 교환간호원 프로그램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유난히 새까만 피부색의 환자들을 목욕시키며 시작한 간호사의 일을 40년간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당시에는 한인들끼리 만날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을 때였기에 결혼상대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나님 향한 내 마음은 늦지도, 늙지도 않았다

어머니의 결혼생활을 보아서였는지, 내가 바라던 결혼조건 첫째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었다.. 둘째, 경제력 능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 학력은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왜냐하면 향학열이 뜨거웠지만 하고픈 공부를 다 못한 탓에 박사 남편이라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내 친구들의 남편들 중에 박사 유학생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세가지가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결혼조건이었다.그러던 중 한 친구의 소개로 뉴욕에 사는 남편과 첫 만남이 버지니아 주에서 이루어졌다. 정말 그는 나의 결혼조건에 잘 부합되는 사람이라 느껴졌다.
 
첫째로 그는 중학생 시절, 잔 언더우드(John Underwood) 선교사님과 한 동네에 살면서 몇 년이나 함께 공부하였다고 하니 분명 예수를 믿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또 7년 동안 유학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하니, 한국의 본가가 부자가 아니라면 학비와 생활비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두번째 조건 또한 OK였다. 그리고 유학생 7년만에 이제 졸업한다고 하니 당연히 박사학위를 받을 것이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결혼조건에 대한 확신 때문이였는지 우리의 첫만남은 시작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와 보였다. 

그가 나와 데이트를 하기위해 뉴욕에서 버지니아로 찾아왔다.  미국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생가를 구경하기로 했는데 당시에 구경하기도 힘든 무비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한복을 차려입은 나를 사진찍어 주었다. 그 다음엔 내가 뉴욕으로 그를 만나러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만남을 가지던 다음해 봄, 퀸즈한인교회 한진관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한 후, 첫 주일부터 남편이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깜짝놀라 물으니 자신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더욱 기가막힌 일은 언더우드 선교사님과 몇 년동안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어공부를 했다는 것이었다. 또 비싸게 보였던 무비카메라도 온데 간데 없어져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빌려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7년이나 유학생활 중이라며 곧 졸업을 한다는 말에 부자인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본가에서 생활비를 보내주기는 커녕, 내 월급으로 생활을 해 나가야 할 형편이였다.
 
그리고 남편이 결혼을 그렇게 서둘렀던 것도 나중에 알고보니 더 이상 유학생으로 비자신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닉슨 대통령 재임기간이었는데 간호사들에게 영주권을 신청할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져서 나는 쉽게 영주권을 얻을수 있었다. 결국 내가 바라고 원했던 결혼조건은 단 한가지도 부합되지 않은, 내 발등을 찍은 결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삶의 허무함과 남편과의 갈등으로 힘든 일들만 첩첩산중 밀려왔다.  모든 것에 속은것 같은 결혼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갈등하며 친정 오빠네 집으로 가출하기도 했었다. 이 때 어머니께서는 믿지 않는 남편이 기독교 집안에 장가를 왔으니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며 먼저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끊임없는 기도가 계속되었지만, 나는 한국에서 온 불교신자인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고, 아이를 낳은 후 직장과 가사일등 시간에 쫒겨다니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더이상 돌이킬수 없는 이 상황이, 남편의 잘못이 아닌 ‘내 눈의 콩깍지’ 때문임을 깨닫고, 먼저 내 욕심을 내려놓고 어머니의 말씀대로 남편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작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병원일 때문에 근무가 있는날은 주일을 지키지 못했지만, 한달에 한번 정도 주일에 쉬게되면 남편은 마지못해 교회에 참석해주었다. 외로운 이민생활에 교회에 가서 친교라도 하려고 나가는 것이였지만 그것도 내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60에 신학생된 나는 70인 지금은 호스피스사역

그 후,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하여 살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큰 자동차 사고가 났다.  몸은 상한 곳이 없었지만 귀에 이상한 소리가 난다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게 되었다. 이때에 동생 에스더 전도사가 병을 고치자며 형부를 데리고 기도원에 올라가게되었다.  하나님은 17년 동안의 내 한숨과 기도를 들으셨고 친정어머니와 여동생의 중보기도로 남편은 그곳에서 성령체험과 동시에 주의종의 사명도 받게 되었다. 할렐루야!
 
비록 눈에 꽁깍지가 씌워서 한 결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결혼조건을 충족시켜 주셨다. 남편 또한 내 마음을 알아주고 사랑해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남편뿐만 아니라 불상을 섬기던 시어머님을 20년간 모시고 살면서 나의 젊음은 다 녹아졌지만,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목사안수를 받은 남편은 늦은나이지만 샌디에고에 교회를 개척하여 섬겼고, 일본인교회 자녀들을 맡아 E.M.(English Ministry)를 맡아 일하다가 얼마전 은퇴하였다.
 
친정아버지께서 신학교에 입학했던 나이가 60세였는데, 나도 60세에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친정아버지 그리고 여동생 선교사에 이어 내가 주의 종이 되었다.  나의 남편까지 합친다면 모두 4명의 주의종이 되기에는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 양로원을 직접 찾아 말씀을 전하고 있는 김혜자 전도사     © 크리스찬투데이

간호사로 일했던 경력이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사용되어 노인들과 환자를 돕는 사역들을 하고있다. 매달 3~4곳의 양로원을 방문, 윌체어에 앉아 교회에 갈수 없는 노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찬양도 가르쳐 드린다. 또한 VITAS 사역은 호스피스 사역인데 일주일에 한번씩 죽음에 이른 환자들을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며 주님을 향한 소망을 드리려고 하고있다.  몇달전 호스피스를 맡았던 할머니는 104세로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80세의 머세즈 할머니를 맡고 있다.
 
10년전 남편 김상기 목사와 함께 시작한 “두렙돈 장학재단”은 작게 시작했지만 귀한 헌금을 드린 분들이 좋은일에 쓰고자하여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있다. 지금은 오렌지카운티 한인교회를 주축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매주 찬양율동을 배우고 있는데 “에바다 찬양율동 선교회”에서 한달에 한번 여러 곳의 양로원을 돌아가며 방문하고 있다. 
 
이제 막 70에 접어든 나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은 결코 늦지도, 늙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를위해 고초 당하시고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다 쏟아 속죄해주시고 구원해주신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받아 지금까지 열심히 살수 있게 해주심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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