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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의 의미들
대니얼 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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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4/05 [02:0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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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통해 죄에서 완전 구원받았다면, 빈 무덤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학교 졸업반 시절 어느날 나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되살아날 필요가 없었단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전에 배웠던 구원 스토리는 모두 십자가에 관한 것뿐이었다. 내가 딴 대학생들에게
가르친 것도 구원으로 가는‘로마서의 길’이었고, 로마서 6:23의 교량(브리지) 다이어그램이었다.
인간은 죄의 문제가 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극복/해결하셨다는 것이었다. 그것에 관계되는 프레즌테이션마다 모두 부활을 전적으로 생략해 놓았다. 그래서 안될 게 뭐람. 죄의 빚을 다 청산했다면 그밖에 뭐가 더 필요한가? 그런데 부활절이 뭐 그리 중요한가?

▲     © 크리스찬투데이
예수님이 쥐고 계신 인류의 운명

예수님은 부활로써 전에는 아니었던 무엇-메시아(기름부음받음)직의 일부-곧 즉위한 왕이 되셨다. 물론 복음서에서 우리가 만나는 그 예수 역시 메시아이시다.

복음서의 예수는 사무엘상서의 다윗같다. 선택된 왕으로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현재의 보좌엔 또 다른 왕(마귀)이 있었다. 복음서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를 개시했고 그분의 십자가 죽음으로써 협잡꾼 왕(마귀)의 일대 계략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만약 십자가가 옛왕의 패배라면, 부활은 새 왕의 즉위였다. 예수님은 현재 과거 구약 왕들이 그림자로 차지했던 공간에 실체로서 앉아계신다. 선재하셨던 성자는 언제나 세상 창조와 지배의 동참자였지만, 인간 예수는 지금 만유의 주와 왕으로서 그 역할에 동참하고 계신다.

이것은 대명에서 하신 주님의 선언 배후의 논리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마28:18-20) 부활 때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지상 통치자가 되셨다.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이시려면 그리스도는 최소한 부분적으로 다윗의 후손이셔야 했다.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 후, 오순절날에 행한 그의 첫 설교에서 세 가지를 강조했다. 1) 그의 지상 사역동안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적과 기사로써 증언하신 분이었고, 2) 다윗 왕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신 뒤 메시아가 즉위하시리라고 예언했고 3)하나님은 예수님을 일으키셔서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시고 그래서 그분을 즉위시키셨다는 것. 그리고 1,2,3을 증언하시는 분으로 성령이 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미래 부활을 보증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재 삶이 미래의 표징들을 지닌다는 뜻이다.

세상 왕국들 위에 권세를 남용해 온 원수를 정복하신 후 예수님은 인간의 본래 목적을 재청구하신다. 곧 하나님을 대리한 세상 지배권(창1:26-28)이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예수님을‘둘째 아담
‘, ‘마지막 아담‘이라고 한 이유이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서 예수님은 또한 인류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다.

현재로의 침투

인간 운명은 물론 미래를 가리킨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의 미래를 쥐고 계심을 말해준다. 예수님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가? 신약은 하나님의 백성의 소망과 기대가 그리스도안에 감춰져 있음을 이해하게 이끈다. 바꿔 말하면,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쟁취하는 유일한 길은 현재에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성령 안에서 갖는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하나님은 새 땅 위에서 구현될 미래의 삶을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거머쥐는 오직 한 길은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희망사항’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을 둔 그 미래는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될 그것을 주님이 이미 되어 계신다.

우리의 현재 삶 또한 예수님의 부활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순종의 자녀로 기르고 계시다고, 또 우리가 이미 의롭다 칭해졌다고 선언할 때, 우리가 말한 것이 부분적으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위해 놓여진 그 미래가 현재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자녀, 그분의 가족의 일원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 답은 우리가 아들됨의 영 곧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롬8:15). 그러나 좀 더 캐보면, 바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하나님의 아들로 완전히 따로 구별해 놓으신 바로 그 성령이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가족의 재창조를 시작한다. 우리가 아들됨의 영을 받을 때 우리는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을 모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개념은 창세기 1장으로 우리를 다시 이끌어 준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도록 창조하실 때,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들로서 그분 대신 다스리게 지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모양과 형상”이라는 언어의 의미다.
예수님이 세상 주권자의 망토를 재선언하실 때, 동시에 하나님의 가족으로의 문을 다시 여셨다. 우리는 부활하신 아들로서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형제자매들로 하나님의 가족 안에 진입하였다(롬8:29).

우리는 또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늘 아버지를 본받도록 부름받았다. 성경에서 발견하는 부활의 가장 풍부한 설명의 하나는 우리의 미래부활의 삶이 현재에 열매를 맺는다는 약속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울이“삶의 새로움 속에 걷기”,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되살아난 자들로 헌신하기”등의 문구를 사용하게 이끌었다.

하나님의 경륜의 신비 속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미래부활을 보증한다는 사실은 곧 우리의 현재의 삶이 이미 미래의 표징들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순종과 성
화로써 새롭게 하시는데 이 두가지는 모두 우리가 죽음에서 일어날 때 알 수 있는 생명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 미래는 순종 안에서 시작되어, 오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역사하신다.

의롭다 하심과 빈 무덤

복음의 핵심의 하나인 <의롭다하심>(=칭의/의인/justification)은 예수님의 부활의 기능의 하나이기도 하다. 의롭다함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서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한 방법이다.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은 심판의 옹호를 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부활은 자주 그분이 의롭다고 하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부활은 신실한 사람들, 특히 죽음의 시점까지 충성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보상이다.

그런 시나리오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궁정에서 의롭다함 기능으로 작동한다. 예수는 형식적인 왕으로 조롱받고 하나님의 우편의 존재로 주장한다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을 지극히 높여 그분의 오른편에 앉히심으로써 예수님의 선언을 옹호(정당화)하시고 충성되며 진실하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디모데전서 3:16대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정당화를 받으신 분이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선언할 때, 우리는 두 가지를 자신에게 말하는 셈이다. 1) 하나님의 미래 판단/심판의 말씀은 현재에 선포되었고, 2) 이 판단은 미래부활의 미리맛봄(foretaste)이며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므로 현재 받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할 때 우리는 단지 예수님의 현재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현재와 우리 미래의 사이에는 우리의 몸이 죽음에서 일어날 때에만 우리가 완전한 진리와 미로써 드라마를 연출하는 삶이 있다.

미래 창조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창조 이야기로 주의를 돌렸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활과 새 창조는 서로 뗄려야 뗄 수 없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바라는 그 미래
는 하나님이 세상을 재창조하시고 거듭나고 변화된 새 몸을 갖춘 사람들로 채우는 순간이다.

부활은 새 창조가 오고 있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새 창조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해준다. 우리는 로마서 8장에 밝혀진 예수님의 부활과 이 다가올 새 창조 사이의 관계를 직시해야 한
다. 고난에서 부활의 생명으로 옮겨지는 드라마의 능동적 참여자로서 창조된 질서를 말한다. 피조물은 탄식한다. 그러나 죽음의 송곳니가 아닌 새 생명의 송곳니이다. 피조물은 새 탄생과 하나님의 자녀들의 부활을 기다리며 탄식한다.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완전한 입양 곧 부활을 기다리며 탄식한다. 성령께서도 우리를 통하여 기도로써 탄식하신다. 따라서 이 기도는 부활하신 아들의 형상 및 하나님의 뜻과 일
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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