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설날의 의미와 차례가 기독교에 끼친 영향?
서재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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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1/27 [05:3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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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풍속인 설날의 의미와 차례가 기독교에 끼친 영향?

음력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년 설날 아침이 되면 차례를 지냅니다. 온 가족이 깨끗한 옷을 입고 정성을 다해서 조상에게 예를 올립니다. 그런 다음에 차례 음식을 나눠 먹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합니다. 세시풍속인 설날의 의미와 차례의 의미를 일고 싶습니다.

1, 들어가는 말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그믐까지의 일 년 동안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맞추어 동일한 양식의 습관적(習慣的) 의례가 매년 되풀이되는 전통문화가 두루 포함된 복합적인 전통문화풍속의 현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전통적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한 민속놀이와 구비전승과 의식행사로 진행하는 풍속과 습관에 뿌리를 내린 의식주와 모든 무속신앙(巫俗信仰)의 생활이 두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民族) 최대의 명절(名節)입니다. 본래 설날의 차례는 조상숭배(祖上崇拜)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는데, 조상신(祖上神)과 자손(子孫)이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평소의 세속(世俗)생활을 떠나서 조상신(祖上神)과 함께 하며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설날의 차례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명절 때마다 조상숭배(祖上崇拜)인 차례문제로 가족 간에 갈등으로 고민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례 제사는 동참하지 안하지만 함께 모인 친척 분들과 오순도순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며 설 명절 연휴를 즐겁고 여유 있게 보내기 위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생각 했으면 합니다. 세시풍속의 형성 배경은 과 전통적(傳統的)인 종교를 비롯하여 사회적(社會的)인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습니다.

 
2,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 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입니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립니다.

3.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 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삼국지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曆術)을 익혀와 조력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太陽) 태음력(太陰曆)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수서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서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 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祭祀)편에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면 왕 사당(祠堂)에 배알하였다고 합니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關聯性)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祖上)에게 제사(祭祀)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類似性)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조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2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風俗)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名節)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名節)이라 하였습니다. 

 
계속 중국의 여러 가지 역법(曆法) 체계들을 사용해 오다가, 일단 공식적(公式的)으로 역법이 양력으로 바뀐 것은 고종31년(1895)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바뀌었다고는 하나 뿌리 깊은 음력(陰曆) 설날 풍속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후 일제하에서도 신정 과세를 강압적으로 추진했지만 “일본산‘이라 취급되어 민가(民家)에서는 구정을 해방 후에도 많은 논란을 겪어 오다가 1985년부터 ”민속(民俗)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陰曆)설이 부활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정과 구정의 논란은 계속되었고, 1989년에 이르러서 “설날”이라는 명칭을 갖고 3일간의 연휴 오늘날과 같이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설날 차례(茶禮)의 의미

한국의 세시풍속(歲時風俗)에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날을 설이라 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먼저 조상신에게 제사하는 것을 차례(茶禮)라 합니다. 차례는 언제 지내는가 하면 예전에는 매 월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명절(名節)에 지내는데 지금은 대개 설과 추석 명절에만 지냅니다.

형제와 가까운 친족이 전부 종가에 아침 일찍 모여 차례를 지내며, 차례(茶禮)의 대상은 돌아가신 조상(祖上) 가운데 자신으로부터 4대까지 해당됩니다. 고조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다음 돌아가셨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까지입니다. 5대조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고 제삿날 기제사도 지내지 않고 10월에 지내는 묘사(시제)로 대신합니다. 

 
차례를 지내는 장소는 조상신(祖上神)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祠堂)이 있을 때는 사당에서 지내고 그렇지 않으면 대개 대청이나 큰방에서 지냅니다. 차례 음식은 계절의 특식을 조상신(祖上神)에게 올리는 제사이므로 밥과 국은 올리지 않고 설에는 떡국을 올리고 추석(秋夕)에는 송편을 올립니다. 또한 특징은 축문(祝文)이 없으며, 나머지는 기제사 음식과 유사한 술과 과일과 적과 전이며, 술은 한번만 올리는 단 잔으로 하며 원칙적(原則的)으로 소주는 쓰지 않습니다.

설날의 차례(茶禮)는 떡국이 주식이므로 “떡국차례”라하고 팔월 한가위차례는 “송편차례”라고도 합니다. 이 설날에는 타향에 나가 있던 사람도 모두 고향에 돌아가 생존하신 부모님과 어른들에게 세배(歲拜)를 하고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제례를 지내기 때문에 여러 일가들이 이때에는 거의 다 모이게 됩니다. 이 풍속이 현재에도 내려와서 섣달그믐이나 팔월 추석 전에 귀성객으로 복잡한 것은 이 풍속(風俗)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5, 유교(儒敎)의 영향과 차례 

 
한국은 유교사상(儒敎思想)을 뿌리를 두고 내린 유교문화(儒敎文化)를 가진 나라입니다. 설날을 맞이하여 요즘은 차례(茶禮)제사가 간소화 되고 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습니다만. 유교문화는 한국인의 삶음에 지금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한국 교회의 신앙행태를 보면, 생각은 불교적(佛敎的)으로 하고, 생활은 유교적(儒敎的)으로 살고, 신앙은 무속(巫俗)(샤먼)적으로 믿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인 생활문화인 유교가 설날 차례에 준 영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교(儒敎)는 충(忠)과 효(孝)를 강조합니다.

한국의 유교의 문화는 효(孝)를 강조 했고, 일본의 유교의 문화는 충(忠)를 강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중, 일 3국에서 가장 유교가 발달하고 정비된 나라는 역시 한국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정치 집권층의 학문에 불과 했지만, 한국의 사회 전 계층의 질서인 도덕학, 윤리학으로 기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忠) 못지않게 , 효(孝)가 강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교의 효(孝)의 사상은 조상숭배(祖上崇拜)사상과 연계되어 고유사상에 흡수되기도 했습니다.

2), 유교(儒敎)는 수직적 관계를 강조합니다.

임금과 신하 관계, 아버지와 아들 관계, 남편과 아내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국경이 수직적(垂直的) 관계를 강조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지금도 수평적(水平的)인 관계보다는 수직적 관계를 더 중요시합니다. 5공 청문에서 한 기업 총수가 직원을 머슴이라고 말한 것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유교(儒敎)의 오륜인 군신유의(君臣有義),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봉우유신(朋友有信), 각 관계마다 다른 덕목이 존재합니다. 즉 군신, 부자, 부부, 장유는 수직적(垂直的) 관계요, 봉우만이 수평적(水平的)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道)는 친애(親愛)에 있으며,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 부부 사이에는 서로 침범치 못할 인륜(人倫)의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 친구(벗)와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유교(儒敎)는 예의(禮意)가 강조 됩니다.

예의는 일종의 사회적(社會的) 연속으로써, 반듯이 지켜져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규정 되어진 관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확인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20년의 기독교가 한국문화(韓國文化)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관습은 바뀌어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관념(觀念)은 변하지 않아서 한국인만의 유교적(儒敎的) 특징이 있습니다. 박찬호 야구 선수가 주심에게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미국사회에서 뉴스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유교(儒敎)의 예의 문화의 영향이라고 생각 합니다.

설날 차례는 명절이나 조상의 생신에 지내는 간소한 약식 조상숭배(祖上崇拜) 제사이며 이 모든 것이 유교(儒敎)의 예의 사상이 조상숭배(祖上崇拜)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집니다. 

 6, 설날 차례 상 차리는 법 

 
설날 차례(茶禮)상 차리는 법은 지방마다, 집안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고유의 기본적인 진설(陳設·상차림)법이 있습니다. 차례상 차리는 법과 의미, 지내는 순서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차례 상 뒤에 병풍은 있고 차례 상은 북쪽으로 향하게 하고 가장 위쪽 한가운데에 지방을 양쪽에 촛대를 세웁니다. 제주가 제상을 바라본 자세에서 오른쪽이 동쪽. 왼쪽은 서쪽이 됩니다. 설 차례 상 차리는 법은 지역마다 가문(家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제주 앞에서부터 다음과 같습니다. 

 
첫줄에는 과일을 놓고, 과일은 감 대추 밤 세가지가 기본. 배 사과 약과 등을 올리는데 과일종류는 홀수로 씁니다. 배열은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 과일은 동쪽. 흰색 과일은 서쪽에 차립니다.

 
둘째 줄은 ‘좌포우혜(左脯右醯)’. 왼쪽에는 포(문어·명태·오징어 등)를 놓고 오른쪽에는 식혜를 올립니다. 식혜는 건더기만 올립니다. 포와 식혜 사이에는 간장과 나물을 놓고, 나물은 삼색(푸른색 갈색 흰색)을 갖춰 놓습니다.

셋째 줄에는 탕을 놓습니다. 육탕(고기탕)과 소탕(두부와 채소탕)과 어탕(생선탕) 등 세 가지 탕을 올립니다. 

 넷째 줄은 어동육서(魚東肉西) 원칙에 따라 생선은 오른쪽, 육류는 왼쪽에 놓습니다. 그리고 지짐·산적은 고기 생선 두부로 만든 3가지를. 조기를 놓을 때는 동두서미(東頭西尾)에 맞춰 머리는 동쪽에. 꼬리는 서쪽에 둡니다.

다섯째 줄에는 병풍에 제일 가까운 곳을 제삿밥으로 신위의 수대로 식기에 수북이 담고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 시접(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제기). 잔반(잔과 받침)을 놓습니다.

차례 상 맨 앞에는 술, 강신, 잔, 퇴줏그릇, 향로, 향합, 모래를 담은 모사그릇을 놓습니다.

7, 차례(茶禮) 상에 올리는 세가지 과일의 의미와 올려서는 안 되는 음식들

 
오늘 날의 제사음식 관습은 고인에 올리는 제사음식도 산 사람을 대접할 때의 음식물과 유사한 것인데, 이러한 예속은 대개 한(韓)나라, 당(唐)나라 이후의 중국 서민사회의 조상제사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주자의 '가례'에 수용되어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오늘날의 표준예법처럼 된 것입니다. 

 
제수로 보통의 음식을 쓰게 된 것은 돌아가신 이를 산 사람과 똑같이 모신다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용(中庸)의 "죽은 이를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하고, 없는 이를 섬기기를 있는 사람 섬기듯이 하라(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는 교훈이 그 이론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로서 생전에 잡수시던 음식을 사후의 제사에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 날 차례 상에 올리면 세가지과일의 의미와 올려서는 안 되는 음식들을 아는 대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제사음식에 쓰이는 세가지 과일의 의미

(1) 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천지(天地)의 이치(理致)입니다. 그러나 감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 씨앗은 심은 데서 감나무가 나지 않고 대신 고염나무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3~5년쯤 지났을 때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잘라 이 고염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 다음 해부터 감이 열립니다.

이 감나무가 상징(象徵)하는 것은 인간(人間)으로 태어났다고 다 인간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는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이어 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2)밤:- 다른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첫 씨앗은 땅속에서 썩어 없어져 버리지만, 밤은 땅 속의 씨 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서 씨앗을 맺어야만 씨 밤이 썩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은 자기(自己)와 조상(祖上)의 영원한 연결과 상징(象徵)을 의미합니다. 자손(子孫)이 수십 수백 대를 내려가도 조상(祖上)은 언제나 자기와 연결되어 함께 이어간다는 뜻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주를 밤나무로 만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고, 폐백(幣帛)에 밤을 던지는 것도 조상(祖上)을 잘 섬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3)대추:- 대추의 특징(特徵)은 한 나무에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열리며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가 열리고 나서 꽃이 떨어집니다. 헛꽃은 절대 없습니다. 즉,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서 죽어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상에 대추가 첫 번째 자리에 놓입니다. 자손(子孫)의 번창(繁昌)을 기원하는 뜻에서 입니다. 

 
2), 설날 차례 상에 올리면 안 되는 음식들

(1) 팥(시루떡)을 쓰면 안 됩니다. 옛날부터 팥은 귀신(鬼神)을 쫒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조상(祖上)귀신들이 제사상(祭祀床)을 먹으러 오시다가 팥 때문에 못 드신다고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고사(告祀)상이나, 굿(㖌)상이나, 개업식(開業式) 떡에는 밭 시루떡이 꼭 있어야 합니다. 잡귀(雜鬼)를 쫒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부어서 돌아가신 분의 제사에는 호박을 쓰지 않습니다. 호박은 부기를 빼는 음식이기 때문이랍니다.

(3) 고춧가루나 파를 쓰지 않습니다. 고춧가루도 귀신(鬼神)을 쫒는 음식이고, 붉은 색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도예배(追悼禮拜)를 인도 하다보면 지금도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즉 귀신(鬼神)들이 싫어하는 식재료는 넣지 않고 음식을 준비했음을 알고 필자가 가르침을 준 기억이 있습니다. 나물에는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의 양념은 하지 않습니다. 다 귀신(鬼神)을 쫒는 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4) 숭어. 민어, 농어, 조기 등 어로 끝나거나 기로 끝나는 생선을 올리고 치로 끝나는 생선(예 : 멸치, 갈치, 삼치 등)은 올리지 않습니다.

(5) 과일로는 복숭아는 올리면 안 되는 과일입니다. 귀신(鬼神)을 쫒는 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8, 나오는 말

세시풍속(歲時風俗)인 설날과 차례(茶禮)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설날과 추석 명절(名節)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신앙적인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차례(茶禮)는 분명히 이방인의 조상숭배(祖上崇拜)입니다. 설날 차례는 조상신(祖上神)에게 제사로서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신으로 모시지 않는 모든 이들을 말합니다. 

 
차례(茶禮)는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鬼神)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차례제사나 풍어제(豊漁祭)나 민속(民俗)놀이 등을 풍속(風俗)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려 하나,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귀신에게 하는 제사는 형벌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이나 추석의 차례는 귀신(鬼神)과 교제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설날에 세배하는 풍습(風習)은 부모와 자녀 관계를 성숙시키는 자녀들의 올바른 가치관(價値觀) 형성에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요셉이 노년에 연약해진 야곱에게 자녀들을 데리고 와 축복(祝福)기도를 받았던 일을 기억하며 자녀들에게 세배를 받고 축복하는 것은 좋은 미덕입니다. 자녀들을 축복(祝福)하는 것이야말로 신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명절(名節)에 가족이 모두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차례(茶禮)인 제사(祭祀)문제로 대립하기 쉽습니다. 신앙적(信仰的)인 문제로 대립하지 말고 명절(名節) 기간 동안 가족들을 사랑으로 극진히 섬겨 감동하게 만들어 복음의 전도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가족(家族)모임에 참석 못한 가족에게 행복의 메시지를 보내고 작은 선물이라도 우편으로 보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또한 크리스천 가족이 신앙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믿지 않는 친지들을 자연스럽게 전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필자는 설날이나 추석에 믿지 않는 가족들과 함께 산소에 가서 절하는 가족 뒤에서 서서 조용히 가족(家族)구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설날 차례(제사)를 지낼 때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 가운데 제사 문제로 가족과의 큰 갈등 없이 지금은 가족의 90%가 구원 받았습니다. 갈등(葛藤)은 오히려 이로 말미암아 전도의 문이 막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기독교(基督敎)인들은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서로 돕고, 사랑하고, 서로 우애 있게 지내는 가족화합의 과정으로서 전통 미풍을 활용하여야 합니다. 미신을 조장하는 미풍양속은 전통문화(傳統文化)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엄연히 타파해야 될 우상숭배(偶像崇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받들며 가문(家門)의 전통을 묵인하는 것을 배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날 차례(제사)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조상에게의 제사는 우상숭배(偶像崇拜)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유교(儒敎)의 영향인 조상숭배(祖上崇拜)가 한국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필자는 한국 교회가 진리의 말씀 위에 온전하게 세워져서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서재생목사 / 서울대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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