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샤머니즘적인 신앙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
서재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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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10 [04:4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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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샤머니즘은 신령(神靈)과의 접촉을 통하여 재앙(災殃)을 물리치고 인간의 온갖 소망을 선취할 수 있다고 믿는 샤먼(무당)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주술 종교적(呪術 宗敎的) 현상을 말하며, 샤머니즘은 한국 민족(民族)의 유구한 역사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민중(民衆)의 생활 저변에 민간신앙(民間信仰)으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샤머니즘에는 신앙(信仰)의 대상으로 신령(神靈)과 조령(祖靈)이 있으며,. 샤머니즘의 특징은 종교적(宗敎的) 사제의 역할을 무당(巫堂)이 수행하고 있으며 교주가 없고 체계적(體系的)인 교리(敎理)나 조직(組織)을 갖추지 못한 원시형태적인 종교(宗敎)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샤머니즘의 역사는 한국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으면서,. 한국 모든 종교(宗敎) 중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종교이며 삶의 현상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대한불교 조계종 스님으로 개종(改宗)한 목사(牧師)로서 순수한 철학의 한국 불교가 자기의 근본사상을 저버리고 샤머니즘에 융화된 것 같이, 필자가 전국 2000여 한국교회 집회를 인도하는 동안에 한국 기독교(基督敎)도 샤머니즘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민족의 생활구조와 정신적(精神的)인 핵은 역시 샤머니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래종교(外來宗敎)를 받아들이기 이전의 한국에는 억압(抑壓)도 없이 샤머니즘에 노출되어 이었습니다. 이 샤머니즘은 외래종교를 받아들이고 이 땅에 토착화(土着化)하도록 뒷받침해 주었다고 필자는 생각 합니다.

 불교(佛敎)가 이 땅에 전래 된 후 차츰 근본 모습을 잃어 가면서 샤머니즘적인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조왕신(竈王神)등을 융화하고, 유교(儒敎), 도교(道敎)로 하여금 기우제(祈雨祭), 산신제(山神祭), 음양설(陰陽說), 기수련(氣修鍊), 및 조상숭배(祖上崇拜)의 제주가 되게 한 것은 역시 샤머니즘의 융화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샤머니즘이 한국 기독교인의 신관(神官)에, 심성(心性)인 마음속에, 한국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하여 들어 왔다고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2. 샤머니즘의 ‘신관(神官)’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

 샤머니즘의 최고 주상 신(神)개념으로서의 하나님 사상은 유일신 여호와를 같은 용어로 번역한 한국 기독교(基督敎)의 하나님을 아무 저항감(抵抗感) 없이 쉽게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몇 천 년전부터 우주의 최고를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 받아들이고 부르는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얼마나 기독교의 본래적인 하나님인가 하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고 봅니다. 한국인(韓國人)이 믿는 하나님이 과연 천지와 만물을 창조(創造))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고,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하나님이냐, 아니면 샤머니즘의 최고 신(神)처럼 막연하고 모호한 하나님이냐 하는 것은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위급한 때는 부르다가 평안(平安)할 때는 전혀 상관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샤머니즘의 하나님이 한국 기독교(基督敎)인들 마음에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샤머니즘적인 신관의 사고방식(思考方式)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고 봅니다. 샤머니즘적 신관(神官)은 소원성취의 도구로 불리어 질뿐입니다. 그것도 논리적(論理的)인 결단이나 신(神)의 뜻에 순응하겠다는 신앙적(信仰的)인 결단과는 관계없이 제물을 바쳐서 효과를 기대하는 극히 공리적인 관계를 가질 뿐입니다.

 샤머니즘의 신관(神官)의 영향은 기독교 신앙을 극히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인 환란초복의 기복종교로 변질되게 하였습니다. 한국인은 질병(疾病)이나 재앙(災殃)을 만났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와 예배가 다분히 샤머니즘적인 역할(役割)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과로 일반신자들은 성경(聖經)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차원 높은 결단이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생명(生命)적인 순종보다는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기적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신앙태도를 갖게 되며 가정 방문(심방)이나 안수(축원)기도하는 교직자들이 “샤머니즘”적인 중재역(무당)을 하도록 요청하며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인격적 섭리에 대한 기대보다 그의 영력의 주술적(呪術的)인 효과를 기대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3. 샤머니즘이 한국 기독교인들의 ‘심성(心性)’에 끼친 영향

샤머니즘이 한국의 기독교인의 “심성(心性)”에 미친 영향(影響)을 고찰하려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생사화복(生死禍福), 치병(治病) 등 운명(運命)일체가 신의 의사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성숙한 자기 통찰의 결여로 내 주위에 생겨나는 일을 나의 힘으로 노력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운명(運命)으로 돌려 신에게 빌고, 안되면 사주팔자(四柱八字)로 현실을 체념케 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는 눈앞의 욕망(慾望)에 더 지배적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민족은 모든 요구와 소망을 현재에 집중시키는 현실주의적 심성이 지나치게 강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기독교인 “심성(心性)”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요행을 바라며 현세적(現世的), 운명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난주에 교회(敎會)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재앙(災殃)이 닥쳤다고 하는 생각은 유일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샤머니즘의 신(神)으로 타락시킨 것입니다. 심방으로 심적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당(巫堂)(단골판)을 불러 고사(告祀)나, 굿(㖌)으로 심적(心的)인 안정을 찾고자 하는 샤머니즘이 한국 기독교인 “심성(心性)”에 끼친 영향인 것입니다. 샤머니즘이 한국 기독교(基督敎)인들의 “심성(心性)”에 끼친 영향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기복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샤머니즘의 기복사상은 철저히 현세적(現世的)이고 물질적(物質的)입니다. 기독교에서도 현실생활 혹은 육신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을 복(福)으로 간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 같은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적이고, 정신적(精神的)인 축복(祝福)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십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복(福)사상은 현세적이고, 물질적(物質的)인 복(福)의 사상으로 더 기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바칠, 헌금을 복(福) 받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처럼 생각해서, 많이 바치면 그만큼 많은 복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교회(敎會)의 여러 가지 봉사가 다 하나님께 받은바 영적 육적 은혜의 감사, 감격의 표시라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얻기 위한 파종으로, 보상의 수단으로 드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의 복(福)사상과 기독교의 복(福)사상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윤리적(倫理的) 축복사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 샤머니즘은 현세적(現世的) 기복사상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기독교는 계약적(契約的)인 축복 사상인 반면, 한국 샤머니즘은 요행적인 기복사상을 가지고 있고, 또한 기독교는 신앙적(信仰的) 축복을 가진 반면, 한국 샤머니즘은 주술적(呪術的) 기복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둘째로는 강신체험적인 신앙생활입니다. 한국 샤머니즘 신앙생활에서는 강신체험과 엑스타시가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샤머니즘적 신앙(信仰)양태는 기독교 안에서도 신비체험과 엑스타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있어야만 옳은 교회요, 성령 받은 신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과 은사도 오해되었고, 무당(巫堂)의 강신체험이나 엑스타시 비슷한 경험의 간증이 교회(敎會)에서 환영받게 되는 이상풍조까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김태곤 교수가 기독교의 성령체험을 샤머니즘의 입신(入神)과 비교해 조사한 것을 살펴보면 성령체험자 거의 모두가 성령체험의 증거로 손끝이 떨리고, 진동이 오고, 몸에 화끈하는 불을 느끼고, 방언을 말하며, 환상과 환청을 체험하는 등 모두가 외형적(外形的)인 것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당이 될 때나 굿(㖌)을 함으로 신탁을 할 때에, 영계와 교통하여 무아 입신의 삼매경(三昧境)으로 들어가 탈아 상태로 합일의 상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이 기독교 신비(神秘)주의 속에 들어와서 감각적(感覺的)인 느낌을 가져야 성령을 체험한 것으로 인정을 하고, 입신, 환상, 방언, 기적의 체험의 신비적(神秘的)인 것들만을 요구하는 비 복음적(福音的) 신앙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샤머니즘과 종교적(宗敎的) 심성이 강하게 유합된 결과입니다.

셋째로는 감각적(感覺的)인 체험 신앙생활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교인들은 체험을 너무 강조합니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 없건만 이들은 주로 감각적(感覺的)인 체험과 기적을 갈망합니다. 한국 샤머니즘의 특례중 하나는 무가(巫歌)에 있습니다. 즉, 노래하고 춤추는 가운데서 신령과 교통할 수 있다는 신접(神接)이 이루어집니다. 이 관념이 일반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열광하며 찬송하고 박수치며 북을 치고 춤을 추는 곳에 성령이 역사한다고 믿는 풍조입니다. 부흥회나 기도원을 자주 찾는 성도들은 당연히 목이 쉬도록 찬송(노래)하고 몸이 나른하도록 춤을 추고 박수치며 땀을 흘려야만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이는 무당(巫堂)의 굿(㖌)판를 연상케 합니다, 일부에서는 예배나 부흥회 때 추는 춤을 미화하여 “은혜의 춤”이라고 합니다. 또한 열린 예배를 보면 강단을 가볍게 하면서 감성적 심성을 자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샤머니즘적 신앙과 부합하다고 필자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는 운명론(運命論)의 신앙생활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 치병(治病) 등 운명(運命)일체가 신(神)의 의사에 달려있다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성숙한 자기 통찰의 결여로 내 주위에 생겨나는 일을 나의 힘으로 노력하고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운명(運命)으로 돌이고 신에게 빌고, 안되면 현실을 체념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는 눈앞의 욕망(慾望)에 더 지배적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민족은 모든 욕구와 소망을 현재에 집중시키는 현실주의적 심성이 지나치게 강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저승보다 이승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적(現世的)인 복(福)을 받기 위해서 무당(巫堂)을 불러 귀신들을 먹이고 달래는 것으로 만사를 해결하려는 생각이나 태도에서 요행 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샤머니즘은 굿(㖌)거리로 인간의 모든 소원이 성취될 것을 약속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 기독교(基督敎)인의 심성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요행을 바라고 현세적 운명적(運命的)인 사상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재앙(災殃)이 닥쳤다는 생각은 유일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무당종교로  타락시킨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개인구원과 개교회주의 신앙생활입니다. 한국 샤머니즘의 여러 특징이 있지, 한국 샤머니즘은 철저한 자기 자신에 치중해 있는 무속신앙(巫俗信仰)입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샤머니즘이 한국의 기독교(基督敎)인의 심성에 미친 영향 개인주의 신앙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철저하게 개인화 하는 신앙의 “심성”이 짙어지고만 가고 있습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의 행복(幸福)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내 자신, 내 가족, 내 교회만 잘되기를 바라는 심성(心性)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他人)을 위한 배려는 심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통적인 기독교의 신관은 개인이 아닌 공통체인 함께 하는 “내 이웃 내 몸과 같이 사랑 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샤머니즘에서 신(神)은 도무지 타인과 함께 하는 신(神)이 안입니다. 즉 모든 굿(㖌)은 개인 굿(㖌)만 있습니다. 이러한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오늘날 한국 기독교(基督敎)도 철저하게 개인과 함께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즉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인이나 교회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수평적인 아닌, 나와 교회가 수직적이고 종적인 관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敎會)가 양적 성장(成長)에도 불구(不具)하고 사회적으로 공신력(公信力)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교회가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 늪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개 교회(敎會)사고는 “교회와 교회” 연합 사업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교단과 교단”, “교회와 교회”가 서로 배타적인 한국 교회(敎會)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초대교회 선교사들은 서로 연합으로 구제와 봉사의 사회사업, 의료사업, 교육사업 등으로 한국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무로서 한국 교회(敎會)는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고 종경(倧經)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도 한국 경제성장으로 이 들이 후진국가로 철수 한 공간을 한국 교회가 감당하지 못하고, 한국교회는 교회건축 경장과 교인 수자 늘이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초대교회 선교사들이 하던 선교사명을 한국 교회가 감당 하지 못 하무로서 한국사회에서 교회가 짓 단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4. 샤머니즘적 신앙생활이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필자는 샤머니즘이 한국 교회(敎會)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독교(基督敎)가 이 땅에 들어 온 이 토착화(土着化) 과정에서 샤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이미 널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基督敎)가 이 땅에 전래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의 샤머니즘 화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기독교(基督敎) 본질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굿판이 한국교회에 준 영향입니다. 교회(敎會)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말씀을 배우고 전하며 주안에서 지체된 성도들 간에 교제를 나누며 주의 일을 위해 봉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敎會)의 현실은 이러한 정통 교회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성도들은 목사(牧師)가 마치 영험 있는 무당(巫堂)인양 생각하고 재난(災難)을 추방하고 복(福)을 빌기를 원합니다.

 ”샤머니즘이 한국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김창주 목사께서는 ”무속(巫俗)화된 일부 한국교회“ 교인들은 일정한 자기 관한권이 있는 지역의 전속 무당(巫堂)인 단골(短骨)무당이 한 달에 몇 차례씩 자기 단골판(短骨板) 가정을 방문하는 것과 같이 교역자의 심방을 고대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 나가는 것을“ 예배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굿(㖌)”에 참여한 구경꾼 같이 태도로 예배를 드린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굿 화한 교회가 그리 적지 않다고 필자도 동의합니다. 복채(헌금)가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복을 받을 것을 기대함도 무당(巫堂)의 기능과 흡사합니다. “굿판”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복채가 뒤따릅니다. 그러므로 무당 굿은 거저 해주는 무당은 없습니다. 무당이 모신 신령(神靈)은 많은 돈을 내놓아야만 무당 굿을 닫아줍니다.

 기독교(基督敎) 성경에는 거저 받은 은혜 거저 주고받는 신앙의 공동체 정신이 샤머니즘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의 기도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가난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욱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되도록 많은 헌금을 요구하는 현상은 샤머니즘적 가치관(價値觀)이나 행동(行動)양식과 유사하게 변질되어 가는 기독교(基督敎)문화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필자도 전국 2000여 교회 부흥회를 인도 하면서 무당 굿하 듯이 하지 안했나 회개합니다.

둘째로는 카리스마적인 것이 한국교회 목회(牧會)자에 준 영향입니다. 한국교회와 샤머니즘을 연구한 학자들은 또 무속(巫俗)이 한국교회에 끼치는 영향으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를 곧 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당(巫堂)은 종교적(宗敎的) 신비체험을 가진 자로서 일단 강신무로 인정이 되면 그 권위는 신(神)만큼이나 절대적이어서 모든 일이나 마을의 행사 등에서 절대적(絶對的) 권위를 가집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많은 목회자들이 카리스마를 가지고 교회의 모든 일에 절대적인 주장과 독재를 행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종의 모습이 아니라 군림하고 다스리는 독선의 신적 권위자(權威者)로 자처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이었습니다. 즉 강단에서 서심 없이 저주(詛呪)하고, 욕설(辱說)하고, 반말하고, 이성문제, 물질적인 문제 등등을 열거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샤머니즘의 사제자인 무속(巫俗)인의 카리스마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 불의 사자, 은사의 종, 신유의 종으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샤머니즘의 사제자인 무당(巫堂)은 축복(祝福)권과 저주(詛呪)권을 행하는 자이므로 무당이 굿하는 순간 많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갓 게 되므로 서울 대학 박 박사도 굿하는 순간 많은 무당(巫堂)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용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무당(巫堂)들의 카리스마를 모습을 보았던 필자로서 한국교회가 샤머니즘 화되어 가는 것을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는 물량주의적 가치관이 한국교회에 준 영향입니다. 샤머니즘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악(惡) 영향에 대에 많은 사람들이 물량주의적 가치관(價値觀)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물량주적 가치관에 빠지게 된 원인도 필자는 샤머니즘에서 찾고자 합니다. 샤머니즘 사제자인 무당들은 굿(㖌)을 크게 해야 큰 복(福)이 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도 교회를 건축해도, 헌금을 해도 물량주의적 가치관으로 할여고 합니다. 샤머니즘은 철저히 현세적(現世的)이고 물량주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들에게는 정신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와는 어떠한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현세적(現世的) 물질과 관계된 삶에서 신앙(信仰)자체를 정의하고 또 기대하면서 믿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福)이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복(福)이라는 샤머니즘의 신앙(信仰)관 입니다. 이 개념은 한국교회 풍토 속에 크게 영향 끼쳐 부흥되어야 은혜로운 교회되고, 헌금이 많이 나와야 능력 있는 목회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런 물량주의적인 교회(敎會)를 꿈꾸고 이를 위해 교세 확장에 열을 올립니다.

 질적인 성숙은 배제하고 양적인 성장이 진리라는 가치기준이 교회에 만연함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샤머니즘신앙은 한국 기독교 가치관(價値觀)과 신앙의식 구조를 물량(物量)주의로 계산하는 변태적 가치관을 형성시켰습니다. 필자는 이것도 샤머니즘적인 사상에서 기인함에서 찾고자 합니다.

넷째로는 한국교회에 부흥회와 부흥사에 준 영향입니다. 한국의 일부 교회의 대형 집회와 부흥회는 샤머니즘에 있어서의 부락제(部落祭)와 무당의 단골(短骨)판과 흡사합니다. 샤머니즘에서 무당(巫堂)은 3가지 직능이 있습니다. 즉 사제직, 의무(치료)직, 예언(점)직인데. 이 직능의 현상이 한국교회 내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집회를 빙자한 집단에서 볼 수 있는데 이 현상은 열광적인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과는 상관이 없는 치병만을 위한 신유집회를 여는 것에서 나타나며, 사업의 장래와 가정문제해결과 개인의 미래를 가르쳐준다는 방언, 예언을 빙자한 사사로운 예언 집회, 그리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자를 빙자하여 절대 복종과 권위를 강조하며 주의 종을 하나님처럼 무조건(無條件) 섬겨야 한다는 것은 샤머니즘의 무당(巫堂)의 3대 직능을 모방한 자태입니다. 그것은 영험 있는 무당(巫堂)을 초청하는 것처럼 능력 있고 하는 부흥사들 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샤머니즘의 삶의 태도는 완전히 의타(依他)주의 신앙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팔자(八字)소관이나 운명(運命)으로 돌려 버립니다. 인간 삶의 모든 길흉(吉凶)을 신에게 맡기고 물어 본 후 그 대답을 운명으로 돌리는 것이 샤머니즘신앙입니다. 어떠한 형태의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원인과 상황을 생각하고 또 성찰하는 사고와 비판적 행동보다 먼저 무당을 통하여 주술적(呪術的) 행위에 굿(㖌)판에 자신의 문제를 맡겨 버린 것 같이, 문제가 생기면 기도원이나 은사집회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샤머니즘에서 길흉(吉凶)을 물어 보는 점술(占術)에는 복채가 뒤따르고, 또한 굿판에도 복채가 뒤따릅니다. 한국 교회 부흥회나 은사집회 계시와 예언기도, 안수기도에는 헌금(복채)이라는 헌납이 오늘날 교회의 부정적(否定的) 양상의 하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는 점술(占術)이 한국교회에 준 영향입니다. 최근 한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57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사흘간 설문조사를 실시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0.3%)가 신년 운세를 봤거나 볼 계획이 있다는 답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운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문조사에서 가장 높은 응답을 얻은 항목은 ‘심리적(心理的) 안정을 얻기 위함’(43.1%), ‘재미 삼아서’(32.3%),이였습니다. 이제는 점술(占術)이 어디서나 성도들에게 쉽게 접할 수가 있다는데 문제입니다. 인터넷과 핸드폰, 전화운수 등 포합한 전체 점술(占術) 온라인 서비스가 수만 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네이트온을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최근 회원 92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운세 서비스를 한 번이라도 이용한 적 있다고 답한 회원은 7095명으로 4명중 3명인 된 셈이 됩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뉴욕 타임스는 IT강국인 한국에서 무속신앙(巫俗信仰)이 부활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군사정권(軍事政權)하에서 무속인(무당)들은 사기꾼으로 몰려 시골로 쫓겨 갔으나,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어 한국인들은 샤머니즘을 한국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기독교(基督敎) 신자든 불교(佛敎) 신자든 가리지 않고 올해 같은 선거철에는 무속(巫俗)인과 점(占)집을 찾는 정치인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소개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로 신앙이 있노라 자랑하면서 점(占)은 점(占)대로 치는 교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기독교(基督敎)인들이 하나님과 점술(占術)을 동시에 의지(依支)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네에 점술(占術)신앙의 행태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성경(聖經)을 점(占)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예배에서 하나님이 새해 나에게 주신 말씀을 뽑기 하는 교회들이 만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聖經) 구절은, 복(福)을 준다는 구절들을 추려놓고 그 안에서 뽑기를 합니다. 어떤 교회(敎會)는 아예 성경 뽑기 통 앞에 헌금 통을 놔두고 새해소원 기도제목을 기록하게 한 후, 헌금 봉투를 헌금함에 놓고 새해 성구 뽑기를 합니다. 이방인들이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듯이 교회(敎會) 안에서도 하나님이 새해에 나에게 주신 말씀을 뽑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토정비결(土亭秘訣)에 나오는 신년 운수가 80% 이상 한해 복(福)을 받는 다는 소망으로 되었습니다.

 한 무속(巫俗)인의 관련 신문기사에 의하면 점(占)집에 상담을 받은 후에 가만히 얘기를 나눠보면 기독교(基督敎)인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상당수인 있다는 것입니다. 한 무속(巫俗)인은 상담인의 30% 정도가 까지 기독교인이라는 충격적인 기사 보았습니다.

5. 나오는 말

한국의 샤머니즘은 외래(外來)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수 천년동안을 우리 민족과 함께 내려오면서 민족성(民族性), 사고방식(思考方式), 신앙(信仰)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국의 샤머니즘의 특징은 끈질긴 생명력(生命力)과 놀라운 수용력입니다.

 대륙에서 불교(佛敎), 유교(儒敎), 도교(道敎) 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크게 번창 했으나 어느 종교(宗敎)도 샤머니즘을 완전히 제압한 외래(外來)종교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 외래(外來) 종교가 수용과정에서 샤머니즘에 흡수되어 변형(變形)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타종교(他宗敎)의 영향을 그렇게 많이 받으면서도 샤머니즘 자체는 변질됨이 없이 발전(發展)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기독교(基督敎)는 그동안 목회현장에서 교회의 부흥을 빙자한 수많은 샤머니즘적 현상으로 고통(苦痛)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샤머니즘신앙의 특징 중 무가(巫歌)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신령(神靈)과 만나 교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관념 또한 한국 교회 부흥집회 현장에서 열광하며 찬송하고 박수치며 북을 치고 춤을 쳐야만 성령이 교통되어 지고 역사한다고 믿는 풍조를 낳았습니다. 샤머니즘신앙에 있어서 신명(神明)이 나서 추는 춤이 무당(巫堂)들의 춤입니다. 그런데 천국(天國) 춤이라 말하는 것으로 성령의 역사와 입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하는 몇몇 집회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진리의 반석위에 굳게 선 바른 교회의 자세를 확립하고 말씀을 중심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재생목사 / 서울대현교회 / 승려생활에서 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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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공책과 필통 10/09/13 [09:38] 수정 삭제
  기독교의 기본진리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려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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