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밥하고 설교하세요
⑨ 종려나무(Date Palm)
장재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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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7/21 [13:3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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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오아시스에서 자주 보았을 나무이며, 또한 그들에게 그늘과 양식을 제공해주던 나무였다. 그러므로 유대 랍비들의 해석에 의하면, 초막절에 가져와야하는 종려나무는‘광야에서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다.

▲     ©크리스찬투데이
한편 또 다른 면에서 종려나무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은 다산과 풍요였다. 그 열매들은 말 그대로 무수하게 달린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이 열리는 열매를 보고 다산과 풍요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히브리어로 종려나무는 타마르(Tamar)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성경에서는 다말로 번역되었다. 즉 다말이라는 이름은 여자의 이름으로 다산을 기원하며 붙여진 이름이었다(창 38:6; 삼하 13:1,14:27).

또한 종려나무는 바벨론 포로시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승리’를 상징했다. 왜냐하면 종려나무는 죽은 나무에서 다시 새순이 돋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나무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종려나무를 가리켜서‘죽음을 이기고(승리) 다시 사는 나무’라는 의미에서 ‘승리’라는 상징을 부여했다.

종려 가지와……(광야를 기억하라)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레23:40).

종려나무가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적인 요소는 두 가지이다.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있어야하고 뿌리가 있는 부근에 물이 잘 공급될 수 있는 장소여야 최적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행진할 때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쁨 중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랍비들이 해석하기를 초막절 행사 때 가져와야하는 네 가지 식물 중 종려나무 가지는 바로‘광야에서의 삶’을 기억하라는 의도가 있다고 한다. 즉 종려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를 지날 때의 삶을 기억하도록 해주는 도구였다.

그 이름은 다말(Tamar)이더라
 
현대 의학에서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원인을 여러 가지로 구분한다. 하지만 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여성의 책임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과일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하듯‘여자는 당연히 아기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은 이혼의 사유가 되며, 더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여인으로 인식되었다.

창세기 38장의 중심 이야기는‘아기를 출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주인공은 바로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이었다. 다말(종려나무/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는 여인은 그 이름에 맞게‘다산’을 해야 하는 여인이었음에도 아기를 낳을 수 없었다는 문학적으로 뒤틀린 구조를 갖는다.

결국 다말(종려나무)은 시댁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다말은 아기를 갖기 위해 시아버지 유다를 속이고 아기를 갖는다. 즉 종려나무가 드디어 그 이름에 맞게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생각에 다말의 행동은 반사회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이 세상에 다윗이 올 수 있도록 한 위대한 여인이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의 기자들이 정확하게 말하지 않던 세세한 부분들을 자주 언급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종려나무 가지였다. 즉,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무리들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고 하는데 사도 요한만은 그 나무가 특별하게도‘종려나무’라고 증언하고 있다. 왜 그들은 종려나무를 흔들었을까?

바벨론 포로시기 이후 그들에게 있어서 종려나무는‘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시기는 유월절의 시기였다. 그 의미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속박에서부터 벗어난 절기가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로마에 대항하여 다시 한 번 로마로부터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서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로마의 정복으로 인해서 죽은 것 같은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주소서…’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하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분이 아니었고, 모든 인생으로 하여금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부터 승리하고 새롭게 살 수 있는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장재일 목사( 밥 아카데미’대표 / ryush_200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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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 종료나무 진리를 넘겨받아야할 자 는 반드시 죽음을 통해 안다는걸 ... 강성실 17/11/16 [13:37] 수정 삭제
  2010년글을 이제 접하내요 인터넷의 위대함에 감찬하며 진리가 17년이 지난 지금 내게 넘오 오다니 감동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대 귀먹고 눈먼자였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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