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거장
(42) 존 번연 (1628-1688 년)
청교도 영성의 모본
조대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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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6/09 [03:1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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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정복해야”
청교도 영성의 모본…고난속에서 평안 누려
‘만사형통’아닌 심판이 가져오는 은혜 전해

 
 
국민학교(초등학교)때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너무 오래되어서 그때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이 되지않지만 선생님이 반에서 수업을 하다가 자신이 읽은 책중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천로역정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이 책은 물론 우리가 잘아는 존 번연(번연)이 지은 순례자의 진보(The Pilgrim's Progress)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어떻하여 그분이 이책을 읽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정말 모르겠다. 그분은 교회는 물론 안 다니고 보통 한국남자들이 다 하는 술, 담배를 하면서 한국사회의 기준으로 볼때에 적당하게 타락한 삶을 사는 불신자이었다. 번연은 청교도 목사이며 작가로 그의 영성은 청교도들뿐만 아니라 하늘나라만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이 세상에서 영적인 삶과 영혼을 구원하는 일말고는 중요한 일이 없다는 사상은 17세기 청교도의 영성을 잘 말해준다.
 
 
종교에 배타적이었던 시절

번연은 1628년 영국 베드포드셔에서 하류층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성장하면서 냄비 그릇 등을 수선하는 기술을 배워서 땜장이로 살았다. 번연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고, 동네패거리의 대장 노릇을 하면서 모든 나쁜 짓을 하면서 부도덕한 삶을 살았다. 그는 그때의 삶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그때에 나는 종교라는 것만 생각해도 구역질이 났다. 누군가 그리스도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보며는 내 자신이 감옥에 갇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에게 말하였다. '나에게서 떠나가시오. 나는 당신에 대한 지식을 원치 않소' 나의 머리속에서 영적인 생각은 티끌만큼도 찾아볼수 없었다." 이런 번연에게 시집오는 여자가 있어서 그는 결혼을 할수 있었다. 그러나 처가집도 가난하여 신혼살림은 찢어지게 가난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가지고 온 책들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하였다. 이 책들은 보통 사람이 천국에 이르는 길(The Plain Man's Pathway to Heaven)과 경건의 연습(The Practice of Piety)이었다. 번연은 이 책들을 읽으면서 심령을 변화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번연의 구원은 즉석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짧지 않은 절망과 비통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났다. 이것이 번연의 삶에서 잘 알려진 죄에 대한 비통함의 과정이다. 그는 적지 않은 기간동안 자신은 너무나 더럽고 악랄한 죄를 지어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심한 절망과 비통함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번연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되고 체험하게 된다. 그는 지옥의 절망과 비통함 속에서 씨름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은혜를 맛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번연에게는 이 땅에서 영혼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게 되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지푸라기같은 것이었다. 그는 성경을 공부하고 마을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번연은 이 당시의 사람들의 삶을 보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나는 사람들의 삶에서 다음과 같이 두가지를 보며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는 노인들이 마치 이땅에 영원히 살것처럼 세상의 즐거움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자들이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같은 외형적인 것을 잃었을 때 절망하고 비통해 하는 것이다." 과연 영혼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찬 번연다운 고백이다. 번연은 의회가 통치하던 시기에는 자유롭게 순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수 있었으나 왕이 복귀하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12년 동안 토굴감옥 생활을 하였다. 그의 옥생활은 육신적으로는 비참하고 괴로웠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신비한 비밀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번연은 밥먹는 것보다 말씀을 공부하고 깨닫는 것을 더 사모하였다. 그는 또한 마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설교를 즐겨 읽었다. 번연은 "성경다음으로 상처받은 영혼에 위로를 줄수 있는 최고의 책은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설교이다"라고 하였다. 번연은 왕으로부터 설교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다면 석방을 시켜주겠다는 조건적 석방을 제안받았다. 여기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일 오늘 내가 석방된다면 내일 설교하겠다." 이것이 청교도이다.

번연의 소경인 딸은 몇 년 못되어 세상을 떠났다. 번연은 12년 동안의 옥고후에 석방되어 복음을 전하고 경건 서적을 저술하다고 이 땅의 삶을 마쳤다. 그의 저서는 문장 하나 하나마다 그의 눈물과 땀과 핏방울과 뼈가루가 들어있다. 번연의 대표되는 작품으로는 순례자의 진보, 죄인의 괴수에게 내려진 충만한 은혜, 거룩한 전쟁 등이 있다. 물론 이중에 최고의 작품은 순례자의 진보이다. 이 책은 프로테스탄트교에서 성경다음으로 널리 읽혀지는 책이다. 17-18세기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가정에는 꼭 성경과 순례자의 진보가 한권씩은 있었다고 한다. 1933년에는 영국의 변증가 루이스(C. S.Lewis)가 번연을 모방한 책 순례자의 퇴보(The Pilgrim's Regress)를 써서 20세기 신자들에게 도전을 주기도 하였다.

 
항상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여

번연은 깨어있는 시간 동안은 항상 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귀는 항상 하나님의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누가복음 22:31의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다. 하루는 나의 귀에 '시몬아, 시몬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800m 뒤에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의 이름은 시몬이 아니었지만 나를 향하여 크게 부르는 것이 확실하였다. 금방 나를 부르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였으나 얼마후에 나는 어려운 시련이 닥쳐올 것을 깨달았다. 이 이름은 계속 내귀에서 울리고 있었다. 한달후에 매우 어려운 시련이 나에게 닥쳐왔다. 나의 삶의 모든 것이 없어지고 암흑으로만 가득차게 되었다. 주님은 나에게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준비하라고 시몬이라고 불렀던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번연의 영성에서 두가지를 배울수 있다. 첫째, 그의 영성은 고통을 정복하는 영성이었다. 청교도들은 고통과 고난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한다. 이들은 울상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과 은혜를 누리면서 고통을 이기는 영성을 가진 삶을 살았다. 번연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축복한다 핍박이여, 너는 우리에게서 집과 땅과 돈과 자유를 빼앗아 가는구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없어질 때 우리는 영혼뿐이 남은 것이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없어지고 영혼만." 이런 위대한 영성이 미대륙의 추위와 굶주림을 정복한 것이다.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17세기)도 고난중에 오는 위로와 은혜가 너무나 크고 좋아서 고난이 오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참, 특이한 영성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고난이 오기를 위하여 기도하기는 싫다. 물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면서 살기를 원하지만, 고난이 와 달라고 일부러 기도하기는 싫다. 아마 나는 고난중에 느껴지는 위로와 은혜의 깊이와 높이를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둘째, 번연의 영성은 은혜를 바로 깨달은 영성이었다. "은혜"하며는 오늘날 신자들은 그것 다 아는 것 무엇하러 말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신자들은 정말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은혜를 아는가?

번연이 깨달은 "나의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하는가? 20세기 독일의 신학자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현대 신자들이 은혜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모르고 "값싼 은혜"(cheap grace)로 전락시켜 버렸다고 개탄하였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은 이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이 은혜는 지구상에서맛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저주의 지옥불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맛보는 것이다. 번연은 이 은혜를 맛본 것이다. 죄와 심판의 고통과 비통함과 저주속에서 맛보는 것이 은혜이다.


심판과 지옥의 저주에 대한 메시지가 점점강단에서 사라져버리는 이 시대에 과연 신자들이 이런 은혜를 정말로 아는가? 누가 현대 신자들을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과 만사형통의 사탕발림의 메시지로 마취를 시켜놓았는가? 왜 오늘날 주의 종들은 죄와 심판과 지옥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를 주저하는가? 오늘날의 번연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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