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거장
(38) 리차드 박스터 (1615-1691년)
“세상에서 말씀실천”
조대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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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5/05 [02:5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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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말씀실천”
구원의 은혜를 삶과 연관…청교도에게 영향
금욕적인 삶 부정…창조세계의 기쁨 누려야

 
 
우리는 리차드 박스터(박스터)의 영성을 배우게 되면서 장로교인들과 개혁주의 신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청교도 영성으로 들어섰다.
 
영국의 청교도 신앙은 박스터, 오웬(Owen), 굳윈(Goodwin), 하우(Howe), 펄킨스(Perkins), 십스(Sibbs), 브룩스(Brooks), 왓슨(Watson), 구르날(Gurnall), 플라벨(Flavel), 번연(Bunyan), 만톤(Manton)등 기라성같은 목사-신학자들을 생산해냈다. 이들은 영국 성공회나 로마 카톨릭교회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영성가나 신학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영성과 지력과 실천목회 능력을 겸비하였던 막강한 그리스도의 군대이었다. 이 영성시리즈에서는박스터, 오웬, 번연과 미국의 청교도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를 다룬다.

박스터는 "나는 어떻하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수 있는가?"(How do I know I have saving faith?)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내적 성찰에 들어갔다. 그는 신자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신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명상(meditation)과 밀접한 연관을 지었다. 박스터의 명상의 원리와 방법은 청교도들이 현세에서 누릴수 있는 깊은 영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박스터는 어려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1638년 그는 영국 성공회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칼빈주의에의한 종교개혁을 원하는 의회와 종교개혁을 원치 않는 왕과의 전쟁에서 의회를 지지하게 되면서, 그는 2000명의 목사와 함께 영국 성공회에서 출교를 당하였다.

 
박스터는 온건파 칼빈주의자이었으나 그는 성공회와 장로교와 독립교간에 협력과 관용을 추구하였다. 그의 기적같은 키더민스터에서의 목회사역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스터가 부임하기 전까지는 술과 방탕과 상소리로 가득찼던 마을이 나중에는 말씀과 찬송으로 가득찬 지상의 천국으로 바뀐 것은 그의 눈물과 피가 섞인 헌신과 하늘나라에 사는 그의 영성을 보여준다. 그의 "인간은 하늘나라에 사는 만큼만 크리스천이다"라는 말은 그의 영성을 잘 보여준다. 박스터는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하나님의 사역에 혼신을 쏟아넣었는데, 그의 하루 일과는 말씀연구, 기도, 명상, 설교, 심방, 일대일 성경공부인도로 가득차 있었다.

특별히 그는 일주일에 이틀은 하루에 8가정씩 개인 성경공부를 인도하였다. 이러므로 그는 매년마다 한번씩 800 가정의 교인들을 직접 상담하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인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박스터의 목회를 통하여 믿게된 600여명의 새신자중에 한명도 낙오자가 없었다고 한다. 박스터는 이런 바쁜 목회 사역중에서도 약 200개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의 대표되는 저서로는 성도의 영원한 안식(The Saint's Everlasting Rest)과 개혁주의 목사(The Reformed Pastor)가 있다. 박스터는 카톨릭교회에서 가르쳐온 물질세계와 감각을 초월하는 초월명상보다는 현세를 통한 명상을 가르쳤다. 그는 신자들에게 감각과 상상을 통한 명상을 가르친다. 박스터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인간의 감각과 상상을 만드셨기 때문에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성경에서 형상을 통하여 가르치시기 때문에 상상은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정당한 방법이다. 셋째, 어떤 진리를 상징하는 물체가신성을 담고 있다고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물체가 하나님을 가르키는 화살표로 쓰여질수 있다는 것을 정당하게 한다. 넷째, 영의 세계는 보이지 않으므로 초자연적 차원에서 역사하는 믿음은 상급이 주어지지 않으면 약해지는 성향이 있다.

박스터는 믿음이 자라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유비적 상상을 하라고 권한다. 이것은 이땅의 기쁨을 통하여 하늘의 기쁨을 맛보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나, 냄새좋은 향기를 맡을때나, 완전한 음악을 들을때나,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 오는 이땅의 기쁨을 통하여 하늘의 기쁨을 맛보라고 가르친다. 박스터는 영의 세계의 실재를 감각하기 위하여 인간의 자연 기능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이런 가르침은 현대신자들이 부담없이 받아들일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같이 맛있는 음식 좋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면서 동시에 깊은 영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신자들이 어디 또 있겠는가?

오늘날 청교도들은 세상의 좋은것과 아름다움을 즐겼던 신자들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세상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항상 반울상을 하고 근엄하게 살았던 사람들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그렇다고 청교도들이 세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방종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들은 카톨릭교회의 수도사처럼 세상을 등지는 삶이 아니었다. 이들은 세상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의 기쁨을 누리면서도 수도사들 못지않은 깊은 영성의 삶을 살았다는 것에 위대한 청교도의 신앙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수도사 토마스 아켐피스에 의하여 쓰여진 카톨릭교회의 최고의 영성서적인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쌍벽을 이루는 프로테스탄트교의 최고의 영성서적인 순례자의 진보가 청교도-존 번연-에 쓰여졌다는 것은 주시할 만하다. 박스터는 그의 저서에서 자신이 겪은 신비로운 체험을 언급한다. 그는 환희를 맛보았다고도 고백한다. 그래서 라델(A. R. Laddell)같은 학자는 박스터를 신비주의자로 부른다. 그러나 박스터는 이런 신비로운 체험도 깊은 영성을 갖는데는 이차적인 중요성만 가진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인간은 이성적인 피조물로서 인간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이다. 영혼안에서 기능 활동이 일어나는 순서는 이성에 의하여 의지에 정보가 전달이 되고, 그 다음에 하등 기능인 감정과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고 박스터는 가르친다.

둘째, 성령의 주된 사역은 성경을 깨달을수 있게 신자에게 조명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외의 성령의 특별한 사역은 일부 신자들에게만 내려지는 부수적인 은혜이다. 칼빈주의에 근거한 청교도의 성경중심 사상이 분명히 보여진다. 박스터는 "성경을 잘 해석하라 그러면 성령의 움직임을 쉽게 해석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여기서 언급한다.

셋째, 성경은 최고의 계시이다. 성경보다 더 정확하고 우수한 계시는 없다. 그러므로 박스터는 명상을 할 때에도 성경에 근거하여 명상을 하라고 가르친다. 그는 성경을 읽을 때에 반복하여 읽고,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고, 성경적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상상하는 세계로 들어가라고 권한다.

칼빈주의자인 박스터는 그림이 잘못하면 우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성경에 나온 내용과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마음을 읽는 성경구절에 집중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가르친다.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독백하라고 한다. 즉, 자신에게 설교하는 차원에 들어가라고 한다. 모든 신자는 자기 영혼에게설교하는 설교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박스터의 명상에 대한 가르침은 카톨릭교회의 수도사인 베네딕트와 이그나티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보다는 베네딕트의 영향을 더 받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칼빈도 베네딕트의 가르침을 많이 인용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는 박스터의 영성에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배울수 있다. 첫째, 그의 영성은 성경중심의 영성이었다. 그는 인간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환희의 체험을 하였어도 항상 성경중심의 영성을 추구하였다. 둘째, 박스터의 영성은 카톨릭교회의 수도사들처럼 감각을 부정하거나 초월하는 영성이 아니라 마음(mind, 지성)을 재정비하는 영성이었다. 수도사들은 금욕의 삶을 살면서 감각을 부정하고 억제하는 영성이었다. 그러나 박스터는 마음을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정비하여 감각을 알맞게 지배하는 영성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기쁨을 누리지마는, 그 감각은 말씀화되고 재정비된 마음(mind)의 지배를 받으므로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균형을 이루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enjoy하되 하나님을 더 많이 더 깊이 enjoy하는 영성을 박스터에게 배워야겠다. 셋째, 박스터의 영성은 수도사들처럼 세상을 버리거나 수도원에 갇혀있는 영성이 아니라 세상안에서 세상을 바꾸어놓는 영성이었다.

박스터에게는 신성과 세속세계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수도원에 들어가 살지않아도 이 세상에서 모든 적과시험을 능히 이길수 있다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영성이다. 우리도 세상안에 살면서 온갖 유혹과 공격을 받으면서 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였다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 이것이 깊은 영성이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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