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거장
(36) 존 던
조대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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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4/21 [03:1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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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 밍 웨 이 (Ernest Hemingway)가 많은 유명한소설을 저술했지만 그중의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1940년에 출판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이다. 그는 여기서 스페인 혁명군에 자원하여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의 군대와 싸우는 미국인 로버트 조단의 삶을 소개한다. 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의 제목‘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는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파 시인이며 성공회 목사이었던 존 던(던)의 "아무도 섬이 아니다" 라는 시에서 빌려온 것이다. 던은 17세기 성공회(Anglican, 영국 국교)를 이끌었던 소위 카로라인 성직자 중의 하나이다. 17세기 영국의 카로라인 성직자들은 제네바와 로마의 중간을 걷고자 하였다. 즉, 이들은 신학적으로 제네바의 칼빈주의와 로마의 카톨릭신학의 중간을 택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영성은 은혜(grace)와 자연(nature)이 조화를 이루는 카톨릭교의 영성으로 흘렀다. 이런 카로라인 성직자들의 영성을 보여주는 대표되는 인물로 던을 꼽을 수 있다.

던은 1572년에 런던에서 태어났다. 던의 부모는 카톨릭교에 속하였으나 그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공부하였고, 이후에는 런던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던은 공부를 마친후 토마스 에게르톤경의 서기관으로 풍족한 삶을 살았으나 그가 아내와 결혼한 것이 장인모르게 한것이 탄로가 나면서 그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 동안에 시를 많이 지었은데 이 중에 유명한 것은 "가서 떨어지는 별을 잡아라"와 "죽음, 교만하지 말아라" 등이 있다.

던은 죽음에 대한 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죽음아, 교만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이 너를 강하고 무섭다고 불러도 너는 그렇지 않다. 네생각에 네가 집어던져서 없애버릴 것 같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가엾은 죽음아, 또한 너는 나를 죽이지못한다. 짧은 한숨의 잠을 자고나면 우리는 영원안에 깨어난다. 그리고 죽음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죽음아, 너는 죽을 것이다." 던은 다른 시에서 "첫번째 아담의 땀방울이 나의 얼굴을 적시듯이, 나의 영혼아, 마지막 아담의 피방울을 껴안아라" 라고 고백한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죽음과 죄와 씨름을 하였던 던은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다. 1615년 던은 성공회의 목사로 안수를 받고 하나님의 사역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논리와 깊은 영성은 그를 이 시대의 최고의 설교가로 만들었다.

 
은혜는 자연의 완성

던은 은혜를 자연의 부정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은혜는 자연을 완성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던의 영성은 세상의 것들을 부정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을 정결하게하여 원래 창조되었을때의 상태로 회복시키는데서 찾았다. 그는 자연적인 삶과 초자연적인 삶을 분리하지 않았다. 던은 그러므로 항상 육신과 영혼을 같이 말하였고 감각과 영성을 같이 말하였다. 19-20세기 유명한 미국의 작가 엘리옷(T. S. Elliot)은 "던의 사상은 체험이었고 또한 감각이었다. 또한 그의 체험과 감각은 그의 사상과 영성에 흔적을 남겼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던은 성(sex)과 거룩(holiness)을 한숨에 말할 수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에게 올라가고자 하는 갈망은 인간의 성(sexuality)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하였다.

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주님이여, 내가 옛날에 지은 죄이지만 아직까지 나의 죄, 나의 모든 것이 시작된 그 죄를 용서하시겠습니까? 주님이여, 내가 아직도 한탄해하는 지금까지 지은 죄들, 그리고 지금도 짓고 있는 그 죄들을 용서하시겠습니까? 주님이 용서하시는 것이 다 끝났다할지라도 주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여, 다른 사람을 죄짓게 만든 나의 죄, 다른 사람에게 죄의 문을 열어놓았던 나의 죄를 용서하시겠습니까? 주님이여, 내가 일년, 이년, 아니 이십년동안 뒹굴었던 죄를 용서하시겠습니까? 주님이 용서하시는 것이 다 끝났다할지라도 주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마지막 실마디를 감고나면 바닷가에 던져 버려질 것같습니다. 주님이여, 나에게 약속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지금 나에게 해처럼 빛나는 것처럼 나의 죽음에도 빛날것이라고. 주님이 그렇게 하시면, 주님은 끝났습니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인간의 추잡한 죄로부터 고귀한 주님의 은혜를 묘사하는 던의 영성을 엿볼수 있다.

 
영성은 인간공동체와 함께 해야

또한 던의 영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었다. 던에게 있어서 인류의 아픔과 괴로움에서 분리되고 무관심한 신자의 영성은 있을 수 없었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에서 스페인의 정치와 국민과 상관도 없는 미국인 교사가 스페인에 와서 생명을 던지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승산도 없고 가치없는 것 같은 싸움을 하는 내용을 보여준다. 무명의 미국인 한 사람이 스페인에 와서 스페인의 자유를 위하여 독재정권과 싸운다고 해서 스페인의 정치가 바뀌겠는가, 미국인들에게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던은 그의 경건한 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아무도 섬이 아니다, 아무도 자신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죽음이라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를 알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 던에게 있어서 인류의 공동체에서 분리된 영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영성이 아무리 거룩하고 신비해도 인류의 고통과 어려움에 무감각한 영성은 참 영성이 아니었다. 던은 헤밍웨이가 책의 제목으로 인용한 표현을 신앙과 영성의 차원에서 하였는데 헤밍웨이가 인본주의의 사상에 적용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던의 영성을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종합해 볼수 있다.

첫째, 던의 영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연을 조화한 영성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자연과 세상을 부정하는 금욕주의의 삶은 영성을 추구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자연은 아름답고 은혜는 이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 우리는 던에게서 물질세계와 영의 세계를 이원화시키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영성을 배울 수 있다.

둘째, 던의 영성은 다른 사람의 삶의 고통과 어려움과 분리될 수없는 영성이다. 그에게는 극단적으로 주관적이고, 사색적이고, 세상에 무감각한 영성은 있을 수 없다. 영성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어려움에 동참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즉, 참 영성은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의 봉사와 헌신으로 나타나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영성신학자들이 가르쳐 온 것이다. 지구의 한쪽에서는 에이즈와 기아로 사람이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 있는 신자들이 여기에 대하여 무감각하다면 이 신자들은 영성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성은 달콤함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슬픔도 포함한다는 것을 현대신자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구 다른 한쪽에서 울리는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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