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거장
(32) 아빌라 테레사 (1515-1582년)
조대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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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3/17 [02: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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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교회박사
하나님과의 연합을 내적 성곽 입성 단계로 표현
신비체험의 허상 경고…영성 열매∙가르침 중시

 
 
아빌라 테레사(테레사)는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여성 신비주의자이다. 테레사는 1970년 9월 27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라는 칭호로 불려지면서 카톨릭교회 역사상 첫 번째 여성 교회박사가 되었다. 테레사는 16세기스페인의 신비신학에 큰 영향을 준 인물 중의 하나이다. 테레사는 같은 스페인 사람인로욜라 이그나티우스와 십자가 요한과 함께 스페인뿐만 아니라 온 카톨릭교회에 영성운동을 일으킴으로 16세기 카톨릭교회의 개혁을 주도하였던 중요한 인물중의 하나이다.
 
오늘날 테레사는 신자의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을 내적 성곽으로 들어가는 단계로 표현한신비주의자로 알려져있다. 테레사는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카톨릭교로개종한 유대인의 손녀로 태어났다. 테레사가 14세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아버지는 테레사를 카톨릭 소녀학교에 보냈다. 그녀는 여기서 한 수녀의 헌신된 삶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되면서 20세때 카메라이트 수녀원에 입문하였다.

카메라이트 수녀원의 삶은 어렵고 힘들었다. 테레사는 금욕의 삶을 살았고, 항상 하나님의 대한 사랑과 자아 사랑사이에서 일어나는 내적 싸움을 하였다. 그녀는 한 때는 삼년동안 반신불수의 삶을 살았고, 한 번은 죽음에 이르렀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하였다. 테레사는 명상과 행동의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명상의 삶을 살면서 카메라이트 수녀원들을 개혁하는데 온 몸을 바쳤다. 카메라이트 수녀원을 개혁하는 것이 성공적이어서 테레사의 개혁은 카메라이트 수도원까지 영향을 주었다. 테레사는 이런 과정에서 1567년기독교의 최고의 신비신학자라고 불리는 십자가 요한을 만나게 되는데 이 둘은 평생동안 신앙과 개혁의 동지가 되었다. 테레사는 신학을 공부하지 아니하였어도 영성에 관한 위대한 저서들을 남겼다. 이런 저서들은 완전함에 이르는 길과 내적 성곽이다. 특별히 내적 성곽은 영성을 추구하는 현대 신자들에게 잘 알려진 책이다.

 
일곱 개 방으로 영혼 묘사
 
들어진 아름다운 성곽으로 묘사한다. 이 성곽에는 일곱 개의 방이 있는데 하나님은 성곽의 가장 중심부에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성곽 가운데에 있는 방에 들어와서 진리와 사랑에 거하라고 초청하고 계시다고 테레사는 가르친다. 성곽의 첫 번째 방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지만 아직도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는 영혼을 보여준다. 첫 번째 방에 있는 신자는 가끔가다 기도도 하면서 하나님을 믿어 볼려고 하지만 세상의 명예와 물질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이 방에 속한 신자는 자신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한다. 죄로 더러워진 자신을 알아야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거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아름다운 영혼을 알아야한다. 첫 번째 방에서 두 번째 방으로 움직이면서 신자는 자신에 대한 지식을 얻게되고 더 겸손하여진다. 두 번째 방에서 신자는 자신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하나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을 깨닫게 된다. 인내의 기도를 하고 영적인 투쟁을 하면서 신자는 세 번째 방에 들어가게 된다. 이 방에 들어온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을려고 노력한다. 세 번째 방에 있는 신자는 금욕의 삶을 살고, 기도와 반성을 하면서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고 살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살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사는 신자는 선한 신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자를 마지막 방인 일곱 번째 방까지 인도하신다. 세 번째 방에 있는 신자는 물질세계보다는 영적세계에서 더 기쁨을 누리지마는 아직도 세상의 물질과 명예를 버리지 못하였다. 이런 신자는 다른 신자의 약점을 보고 쉽게 충격을 받고 조그만 메마름에 의하여 쉽게 좌절한다. 첫 번째 방에서 세 번째 방까지 신자는 마음의 기도, 경건서적을 공부함, 성도교제, 선행으로 영혼의 약하고 불완전한 것들을 없애 나간다. 그러나 세 번째 방에서는 영적인 메마름을 느끼게 된다. 영적인 메마름은 영적퇴보가 아니라 영적성장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감각이나 감성으로 감지할 수 없는 섬세한 방법으로 영혼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도
 
네 번째 방은 신자의 신비한 체험이 시작되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신자는 주입된 기도를 하게 된다. 즉, 신자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기도를 받아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신자는 명상의 기도를 하게 된다. 테레사는 이런 기도를 "고요의 기도"라고 부른다. 고요의 기도에서는 신자의 감각과 기능은 더욱 깊어진다. 네 번째 방에서는 신자의 노력없이 영혼이 은혜로 충만하게 된다. 테레사는 세 번째 방에서 받는 은혜와 네 번째 방에서 받는 은혜를 도랑에서 흐르는 물로 적셔진것과 샘물이 솟아서 적셔진 것으로 비교한다. 다섯 번째 방에서는 영혼과 하나님의 연합이 시작된다. 이 방에서는 신자의 감각과 기능은 완전히 고요하게 되고영혼은 하나님안에, 하나님은 영혼안에 있는 관계가 시작된다. 테레사는 다섯 번째 방에 이르렀을때에 자아-기만, 교만, 열성같은 위험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녀는 신자에게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만을 믿고 완전히 의지하라고 가르친다. 테레사는 영혼이 다섯 번째 방, 여섯 번째 방, 일곱 번째 방에서 얻는 은혜를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낙비로 비교한다.

여섯 번째 방에서 영혼은 하나님과 영적약혼의 관계에 들어간다. 테레사는 내적 성곽에서 이 부분에 가장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녀는 영혼의 여정에서 이 단계가 가장 위험한 단계라고 가르친다. 여섯 번째 방에서 영혼은 가장 쉽게 자아-기만과 교만에 빠지게 된다고 테레사는 가르친다. 여기서 영혼은 비상한 체험들을 하게된다. 이것들은 사랑의 상처, 환희, 영혼의 날아오름, 이상을 보는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포함한다. 여섯 번째 방에서 테레사가 가르치는 주제는 고통이다. 영혼은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나오는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인격체와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도 겪어야한다. 일곱 번째 방은 영혼과 하나님의 영적 결혼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테레사는 여기서 영혼은 삼위일체의 영적인 이상을 바라보게 된다고 가르친다. 영적 결혼에서는 영혼의 불안정함과 사모함이 이제는 영혼이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확신에서 오는 평안함으로 바뀌게 된다. 여섯 번째 방에서 가졌던 높은 환희와 영적 메마름이 일곱 번째 방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이제 영혼은 명상의 마리아와 봉사의 마르다로 조화를 이루게된다. 영혼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랑을 누리게 된다. 이제까지 신자의 삶에서 시간안의 일어난 행위이었던 기도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된다.
 
능동적인 영성
 
테레사의 신비주의는 아시시 프란시스와 로욜라 이그나티우스와 십자가 요한의 영향을 받았다. 테레사의 영성은 마리아의 명상과 마르다의 봉사가 잘 어울려진 또 하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영성은 능동적이고 행동에 옮겨지는 영성이었다. 테레사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영성의 목적은 일!일! 일을 하기 위하여 주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테레사는 현대 신자들에게 영성은 골방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일하는데서 나타난다고 할것이다. 영성의 훈련은 골방에서 이루어지지 만 영성의 열매는 주방이나 마당에서 나타난다.

또한 현대 신자들이 테레사의 영성에서 배울 것은 그녀는 비상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영성의 척도로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레사는 많은 신비로운 체험을 했어도 그녀는 환희, 이상,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등을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신비로운 체험이 다 나쁜 것이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면 영성이 하늘로 솟아 오른것처럼 우쭐대는 일부 현대 신자들은 테레사의 말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테레사는 신비한 체험이 영혼에게 평안과 기쁨과 겸손의 영향을 줄때에만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고 말한다. 현대 신자들은 "겸손"이라는 테레사의 말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녀는 하늘로 오르는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하였어도 신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십자가 요한같은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오늘날 일부 신자들의 목사나 신학자의 가르침을 경시여기는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영성이 아니라고 해도 무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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