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캄보디아 보고서
“학살현장 보존…복음 절실”
조영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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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2/24 [03:2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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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현장 보존…복음 절실”
해골 보관해 비극 고발…사랑의 영 전해야 될 책임감 느껴
성경번역 등 선교활동 존재…초기단계로 정부규제 적은 편

 
 
킬링 필즈(Killing Fileds)란 '학살현장'. 캄보디아의 비극을 영화해서 일약 세계에 알려지게 된 단어입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즈라는 극단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모든 기존세력들 즉 부르조아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불교승려, 기독교인, 공무원, 지식인, 학자, 부자들과 그 가족들이 다 살해되었습니다.
 
방문한 킬링필드는 바로 저 멀리수도 프놈펜이 보이는 곳에 있었습니다. 도심에서 불과 15킬로 떨어진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킬링필즈는 평평한 시골 논한 가운데에 우뚝 선 사원 형태의 건물만이 그곳이 주변과 다름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입구에서 보이는 작고 길쭉한 불교사원 형식의 건물 앞으로 가니‘아뿔싸’온통 해골들이 한낮 2시의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난 채 놀란 커다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약 사방 2미터 정도의 넓이로 된 건물이기에 아주 좁고 그곳에 3단으로 해골들을 모셔 놓았습니다. 써진 글을 보니‘15세에서 20세’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한 단에 무려 100여개. ‘죽일 놈들!’이란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한창 때의 아이들을…. 참 사람이 잠깐 마음 잘못 먹어서 소위 이념이라는 것에 물들면 이리도 악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이념과 신념은 이렇게 잘못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지요.

 
이제 정말 거짓영과 악한 영이 사로잡기 전에 사랑의 영이신 하나님을 전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 비극은 30여년 전 이야기. 지금은 소들만이 마당의 풀을 뜯고 있고 어디선가 신나는 가락이 장단에 맞추어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참족 가운데서 성경번역을 하시면서 선교를 하신다는 선교사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리고 참족 선교현황과 대상의 캄보디아선교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캄보디아의 선교는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NGO와 교회의 활동으로 선교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태도는 불교가 국교이면서도 굳이 자신의 나라를 돕겠다는 기독교 단체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금 및 구금이 없고 또 추방이 없지만 여러모양의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많아지자 서서히 여러 규제적인 조치를 만들기시작한다고 합니다.

 
참족 선교는 30여년 전에 미국 선교사님이 처음 번역 및 선교를 시도했지만 참사 이후의 불안한 상황으로 인해 접근이 불가능하다가, 지난 3-4년 전부터 접근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이 분도 선교사비자를 받고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NGO에 등록이 된 채 그 지역사회를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프놈펜 근교의 참족마을에 사시면서 그들의 언어를 만들어 주는 일을 돕고 계신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참족들이 코란의 언어인 아랍어로 자신들의 말을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실패를 했던 차에 선교사님이 접촉이 되어서 그들에게 성경번역의 방법인 언어 만들기 방법을 통해서 그들에게 언어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하십니다.

moses5706@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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