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1) <예수는 신화다>에 대한 반론

역사자료가 증거하는‘역사적 예수’

한규삼 목사 | 기사입력 2002/12/04 [00:00]

특별기고(1) <예수는 신화다>에 대한 반론

역사자료가 증거하는‘역사적 예수’

한규삼 목사 | 입력 : 2002/12/04 [00:00]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던 예수님에 관한 다른 기록은 타기투스(Tacitus)가 로마의 황제 네로(Nero)에 관해 기록 할 때 잠시 언급한 글인데, 이곳에는“빌라도가 처형한 그리스도 열렬히 따르는 자들”이란 표현이 나온다. 타키투스는 로마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가였다. 짧지만, 그의 기록에도 확실하게 예수님을 가리키는“그리스도”란 표현 등장한다

필자는 소위 보수 신앙 전통 속에서 자랐고, 보수 신학교에서 목회자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이후 소위 자유주의’라고 분류되는 학교에서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복음서 및 관련된 분야를 전공했기 때문에 최근 항간에 문제가 되는 예수님의 역사성과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책들의 기본 사상을 알고 있다.

필자는 <예수는 없다> 혹은 <예수는 신화다>란 책들을 숙독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이 책들은 내용은 어쨌든 제목 자체가 기독교인들을 현혹시킬 여지가 많다. 예를 들어 <예수는 없다>란 책에서 저가가 보이려고 애쓴 것은 우리가 늘 읽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가르침이 역사상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친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주장인 것 같다. 그리고 몇 몇 기독교내의 극단주의적 성격해석을 비판했고, 소위 역사란 관점에서 성경기록의 비 정확성을 지적하려고 힘썼을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앞서 거명한 책들에 대해 서평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다. 거듭이야기하지만 나는 이 책들의 내용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들 책제목이 일으킨 물의 때문에 기독교인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생긴 것 같다. 과연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이 땅에 계셨다는 성경 외의 증거가 있는가? 역사적 자료로서의 성경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역사적 인물임의 성경 외 증거들

필자가 전공한 분야는 구체적으로 Christian Origins(기독교의 근원들)이라는 분야인데, 크게는 신약학(New Testament)에 속한다. 이 분야는 소위‘자유주의’학자들이 점령하고 있고, 방법론도 지극히 사회과학적이며, 성경을 역사상의 한 자료로 볼뿐이다. 따라서, 만일 기독교인들이 믿지 않는 지성인들에게 예수님의 참 모습을 전하려면 이 분야에서 논의 되는 사안들을 조금은 알고 있는 것도 유익 할 수도 있다. 이 분야를 주도하는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점은 (1)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며, (2)성경을 통해 예수의 사역 대략을 추출해 낼 수 있고, (3)성경은 다른 어떤 자료보다도 예수의 생애를 연구하는데 믿을 만한 자료이다.

예수님이 역사상에 계셨다는 것에 관해 의심하는 영향력 있는‘이 분야’를 전문하는 학자를 단 한 명도 알지 못한다. 성경 이외에도 역사상에 계셨던 예수님에 관한 기록이 몇 더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요세푸스의기록이다.

요세푸스는 유대인이었고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다. 통상 그를 역사가라고 하나, 원래는 귀족출신의 장군이었다. 주후 37년에 태어나 66년부터 시작된 유대전쟁(이 전쟁의 결과로 성전이 주후 70년에 무너진다) 때에 유대인들 대표하여 로마와 싸우라고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파견한 장군이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는 싸움을 포기하고 로마에 투항한다. 그리고 로마 사회에서 유대인들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스스로는 이것이 소명이었기 때문에 투항하였다고 주장한다.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기는데, 유대의 <고대사>와 <유대 전쟁사>는 성서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유대<고대사>는 로마인들에게 유대인들이 결코 ‘미개인’(바바리안)이 아님을 변증하기 위해서 쓴 글로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를 저술에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며, 신약시대의 인물도 소개한다.

이 중에 예수님에 관한 글이 실려있다. 유대의 <고대사> 18번째 책 중에 63번째와 64번째 문단이다. 이 부분을 필자의 역으로 소개하면, “(63)대략 그 때에 예수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적적인 일들을 행하는 자였기에, 만약 그를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 정당하다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기쁨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자신에게 나오도록 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64)그리고 우리 중의 우두머리 격인 자들의 제언에 따라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로 저주했을 때도 처음 그를 사랑했던 자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신령한 선지자들과 만가지 다른 그에 관한 굉장한 것들이 이미 예언한 대로 그는 삼일 만에 부활했고, 그의 이름을 따른 그리스도인이라는 족속들은 아직도 멸족되지 않고 남아 있다” (Harvard Loeb Classical Library 시리즈에 바탕을 둔 번역임).

요세푸스 전문가들 중에는 과연 이 글이 요세푸스가 진짜 저술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둘로 요약된다. (1) 유대인인 요세푸스는 이런 기독교적인 고백을 할 수 없다는 단순한 개연성에 바탕을 둔 주장(앞에 소개한 번역 중 굵은 글자가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과 (2) 요세푸스의 원본이 기독교인들의 손에 의해 보존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견해를 삽입할 수 있다는 역사적 정황에 근거한 추측이다.

소위‘상식’이라는 것이 학문에 큰 근거인 사람들에게 이 문단의 기록은 저자의 직접 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클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부분( “그는 그리스도였다”와“그는 삼일만에 부활했고”)이 없는 요세푸스의 헬라어 사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많이 양보해도 이 두 표현을 제외한 예수님에 대한 다른 기록들은 요세푸스 자신의 것임에 틀림없다.(요세푸스 전문가 중에 문단 63과 64 전체가 후대에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삽입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필자는 아직 모른다. 물론 필자는 요세푸스 전문가가 아니어서 요세푸스에 대한 지식은 제한되어 있다.) 만약 후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 관한 기록 전체를 삽입했다면, 지금 이곳이 아니라 훨씬 앞에서 기록한 세례 요한에 관한 기록 뒤에 삽입하였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에 관한 지금의 자리는 앞 뒤 흐름과 자연스럽게 들어맞기 때문에 전체가 삽입이 라고 보는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필자는 문제가 되는 두 고백“그는 그리스도였다”와“그는 삼일만에 부활했고”도 요세푸스가 직접 쓴 것이라고 본다. 요세푸스의 기록 중 신약성서에도 나오는 사건에 대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들에서 수정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만약 이 두 고백이 요세푸스 자신의 고백이 아니라 들어서 알게된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을 단순히 소개하고 있다고 보면, 요세푸스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감안하더라고 문제의 소지는 없어진다(이런 견해를 가진 학자들 중에는 Howard Clark Kee가 있다).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던 예수님에 관한 다른 기록은 타기투스(Tacitus)가 로마의 황제 네로(Nero)에 관해 기록할 때 잠시 언급한 글인데, 이 곳에는“빌라도가 처형한 그리스도를 열렬히 따르는 자들”이란 표현이 나온다.

타키투스는 로마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가였다. 짧지만, 그의 기록에도 확실하게 예수님을 가리키는“그리스도”란 표현이 등장한다 (물론 이 표현은 타키투스 자신의 고백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이해를 인용한 것임이 틀림없다.)

로마의 관점에서 예수의 사건은 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로마의 역사기록 관점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 없다. 로마는 지방영토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홀히 했으며, 로마의 역사가들조차 이런 일들에는 별관심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주류 로마의 역사가들에게 예수 사건은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색한 사실이지만, 로마의 역사기록 관점에서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살아 활동하실 때 예수님은 팔레스틴 밖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 때 있었던 천지변화나 성전 휘장이 찢어진 사건 조차 로마 제국 엘리트 지성인이나 사회의 지도자들에는 별다른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역사와 기독교의 위대성은 이런 미미해 보였던 일련의 사건이 결국은 몇 백년 후 로마제국에 지금은 전 세계에 가장 큰 힘을 미치는 기독교의 시작이 되었다.)

역사적 자료로서 신약성경의 가치

성경의 역사성에 관해서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많은 책이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성경해석 방법론에 깊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는 당시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소개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며, 다른 종교나 사상을 향하여 기독교를 변증하려는 변증의 글도 아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한 세대가 믿음의 공동체를 향하여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보전하고 전수하며, 이를 공고히 하려는 믿음의 글이다. 그렇다고 역사상에 있지도 않았던 일을 ‘신앙을 세운다’는 목적으로 마구 창작해 낸 것은 더욱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 정말 예수님께서 하신 것인가를 연구하는 분야가‘역사적 예수 연구’이다. 그러나 이 분야 학자들의 견해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이 분야 학자들은 네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생애와 실제적 가르침에 대해 중요한 맥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과 가르침을 실제 역사상에서 예수님이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으로 믿는다. 반대하는 분들의 도전에 대해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내 입장을 옹호할 수 있고, 어떤 도전은 상당한 논쟁을 펼쳐야 하며, 일부는 아주 힘들게 필자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복음서가 어떤 책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쓰여진 책인가에 계속 초점 맞춘다면,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의 역사성 자체를 실증함이 없이도, 이 가르침들이 역사에 근거하여 가르치고자하는 무엇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실제로 무엇을‘역사성’이라고 하는가는 견해에도 일치함이 없다.)

긴 논쟁을 회피하면서, 경험한 것 하나를 소개한다. 1990년도 하바드 대학 신학부에 있었던 박사학위 과정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을 때이다(필자는 당시 석사과정에 있었다). 세미나를 인도하던 교수는 헬뭇 케스터라는 불트만이 인정하는 마지막 제자였다는 소위‘자유주의’신약학의 거장과 역사적 예수 전문가인 리챠드 홀스리 교수였다. 이 세미나에서‘역사적 바리새인’에 관한 연구를 할당받았었다. 바리새인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크게 넷이다: (1)요세푸스, (2)쿰란문서, (3)랍비문서, 그리고 (4)신약성서이다. 랍비문서는 후대의 자손들이 조상을 생각하면, 조상이 남긴 가르침을 보전 발전하여 기록한 것임으로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는 가장 호의적이지만,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는 제일 떨어진다.

쿰란문서는 연대적으로는 동시대이지만 정황적으로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며 비판적이다. 당시 필자는 요세푸스가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장 객관적으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그려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미나에 참석한 대부분은 놀랍게도 (?) 신약 성서가 역사적 바리새인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한 자료라고 믿고 있었다.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 글에는 일면‘편견’이 담겨있다. 편견을 없애면‘객관’이 드러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편견, 곧 관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객관’은 적어도 사상을 담은 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복음서는‘관점’이 있는 글이다. 이관점을 당시 저자들의 관점을 무시한 채 비판자의‘객관’으로 판단하는 것이 진짜‘객관’인가 의심스럽다(이 글의 근거가 되는 자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나성한인장로 교회 웹사이트 ‘www.lakpc.com’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한규삼 목사

∙나성한인장로교회 담임
∙국제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미국 칼빈신학대학원(목회학석사∙신학석사)
∙하바드대학 신학부(신학석사)
∙토론토대학(신학박사)

  • 도배방지 이미지

  • 특별기고(1) <예수는 신화다>에 대한 반론
  • 목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법
  • 나만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 새로운 목회현장을 가다 (11) 군인목회
  • 아름다운 뒷모습
  • 작은 감사들
  • “문화 통해 복음 전한다”
  • 경기도 가평군에‘통일교 왕국’공사 한창
  • 자선 기부금 갈수록 줄어
  • 베트남 400여 교회 해체 신자실종, 순교위기 임박
  • 과학잡지<와이어드>도 기독교 다뤄
  • 모국어성경 없는 10억 위해 2025년까지 성경번역‘완결’
  • ‘e-봉헌’전자십일조시대 도래
  • http://www.인터넷 한국뉴스
  • “이단집단 광고 싣지 말 것”촉구
  • 122명 회원 모여 뉴욕목사회 정기총회
  • 구세군 자선냄비 등장…12월24일까지가두모금
  • 광고
    인터뷰 / God with us
    이동
    메인사진
    북미주 KCBMC는 전도하고 양육하는 공동체. LA 대회 통해 사명 전하고파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
     
    뉴스포커스·특집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