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는 조선 개화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유능한 왕이었다"기감, 고종 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 학술제 개최
학술제는 홍석민 목사(국내선교부장)의 사회로 1부 예배, 2부 학술제 순서로 진행됐으며 1부 예배에서는 이철 감독회장의 설교 및 축도, 전창희 목사(종교교회)의 축사, 태동화 목사(선교국 총무)의 격려사 가 있었다.
예배 후 이어진 학술제에서는 소요한 교수(감신대 한국교회사), 서영석 교수(협성대 역사신학), 유은식 목사(제물포 문화아카이브 대표)의 발표가 있었고 장성배 교수(감신대 선교학)가 발표에 대한 논찬을 진행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고종 황제 윤허 140주년을 기념해 지난 7월 2일 기념대회, 지난 10월 3일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 기념비 제막식 등 관련 행사를 진행해 왔다.
한국교회의 선교 역사는 1885년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하며 시작 됐다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입국하기 전 1884년 메클레이 선교사가 고종으로부터 의료, 교육, 전신, 교통 부분에서의 선교를 윤허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고종의 윤허 배경은 다음과 같다.
고종은 조선의 부국강병의 길을 찾고자 1881년부터 중국, 미국, 일본 등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에 따라 조선은 보빙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했고, 보빙사절단은 볼티모어 감리교회 담임목사인 가우처를 만나게 된다. 보빙선교사를 만났던 가우처는 일본에 있던 매클레이 선교사에게 조선을 도울 것이 있는지 타진해 보라고 했다. 이에 조선을 방문한 매클레이 선교사는 김옥균을 통해 고종에게 제안서를 보냈다. 홍영식의 보고와 매클레이의 제안서를 본 고종은 1884년 7월 2일 미국 상선의 조선해 운항, 병원 및 학교 설립, 전신 설치 윤허를 윤허했다. 이후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했고 교회와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하고 활동하며 개화기를 이끌었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나님의 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한 이철 감독회장은 한국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파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섭리이며 한국의 새로운 질서를 여는 시작이라고 전했다.
이 감독회장은 한국에 왔던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했던 경험과 코로나 시절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의 대화를 전하며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과정과 시점을 생각해 보면 힘들 때 하나님의 섭리로 복음의 문을 열었고, 그 복음이 생각과 기준의 질서가 바뀌는 변화를 만들었다”고 말했고 “이 사실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길을 열게 되는 귀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예배 후 진행된 학술제에서는 소요한 교수가 ‘가우처와 보빙사절단’이라는 주제로, 서영석 교수가 ‘매클레이의 동아시아 선교 및 한국선교의 공헌’이라는 주제로, 유은식 목사가 ‘조선 부국강병 위한 고종 윤허 140년의 한국감리교회와 대한민국(1884-2024)’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으며 이후 장성배 교수가 앞선 교수들의 발표 내용에 대한 선교적 의미에 대해 논찬을 진행했다. 소요한 교수는 가우처의 생애와 사상뿐만 아니라 한국 선교의 접촉점이 된 보빙사의 선교적 의미를 재고했다.
소 교수는 가우처의 생애를 5개의 시기(△1845-1868 어린 시절 그의 가문에서 영향받았던 가풍과 경험, 디킨스 대학에서의 신학교육 △1869-1877 목회자로서 볼티모어 지역에서 헌신하며 아내를 만나 결혼한 시기 △1878-1883 안정된 목회와 함께 동북아 지역의 교육 선교를 지원했던 시기 △1884-1907 미감리교회 100주년 선교대회를 동북아 지역 선교를 강화시키며 볼티모어 여자대학 총장으로 직무 한 시기 △1907-1922 생애의 마지막 시기로 총장직을 사임하고 선교지의 대학 설립을 진행했던 시기)로 나눠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설명했다.
소 교수는 “가우처의 교육 철학에서 신앙과 사회적 책임을 결합해 윤리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사상은 현대 교계에서도 큰 의미를 줄 것이며 그가 추구한 교육과 신앙의 결합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모델로 남아있다”고 주장하며 “그의 사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전했다.
또한 보빙사절단에 대해 “한국선교 140주년에 대해 보빙사의 의의를 다시 한번 고찰해야 한다”고 말하며 보빙사의 미국 방문으로 가우처가 기차 안에서 이들을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가우처는 그전부터 한국을 선교지로 생각하고 있었고 신문 잡지 등을 통해 보빙사의 미국 방문과 경로가 노출 됐으며 가우처가 신속히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런 관심과 동북아 선교를 오랫동안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보빙사 구성원의 두 갈래-두 구성원 모두가 개신교 수용에 영향을 끼쳤으며 보빙사 구성원의 갈등이 한국인의 개신교 수용에 갈등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서영석 교수는 매클레이 선교사의 출생부터 중국 선교, 일본 선교, 한국 선교 과정에 대해 설명하며 고종의 윤허를 받아내기까지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아보는 발표를 전했다.
서 교수는 “매클레이는 선교사라는 직분을 감추지 않고 한국에 방문한 첫 번째 선교사이며 그의 방한 이전에 한국선교를 위해 한국 땅에 들어오거나 접촉을 한 인물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한국선교를 가능케 한 인물은 매클레이며 그의 한국 방문으로 인해 한국 정부와의 접촉, 고종의 윤허는 한국근대사와 한국교회사에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전하며 가우처와 함께 그를 아시아 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유은식 목사는 한국감리교회의 역사와 한국에 온 선교사들로부터 현재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을 설명했고 특히 고종을 유능한 왕이라고 평가하며 한국감리교회사에서 ‘매클레이가 국왕의 허락을 받았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고종이 결정(윤허)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유 목사는 고종이 나약한 왕, 무능한 왕, 나라를 팔아먹은 왕, 왕권 유지에만 신경 쓴 왕이라는 주장에 대해 왕권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지기에 왕권은 지켰어야 하며, 일본이 고종을 폄하하기 위해 무능한 왕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한국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했지만 고종은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고종은 직접적으로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낮에는 정상적인 정무를 가질 수 없어 밤에 실제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선교의 윤허 또한 밤에 이루어진 점과 고종이 국왕과 황제로 47년간 통치 한 점 등을 근거로 꼽았고,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 강제 폐위 및 시해 또한 대한제국의 황제로 상징적인 인물이었으며 한반도를 점령하는데 일본에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유 목사는 “다가오는 2025년 광복절 80주년을 준비하며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그 일환으로 7월 첫 주를 고종 윤허 기념 주일로 정하고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은 고종의 결단이 국가를 살리고 한국교회를 세운 그 첫날을 영원히 기억되길 소망해 본다”며 고종 윤허 기념 주일 제정을 제안했다.
뉴스파워 제공 <저작권자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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