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3년 4월 24일 자 16면에 <예수는 언제 행복했을까...묻지마 신앙은 위험>이란 제하에 한국의 최원영 작가가 쓴 <예수님의 폭소>를 소개했다. 나는 아직 최원영 작가가 쓴 <예수님의 폭소>를 읽어보지 못해서 중앙일보 종교기자의 기사가 잘 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기자가 요약한 글에 몇 가지 다시 꼭 지적하고 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인간에게 원죄가 없는가
이 기사에 <구약성경에도 원죄라는 용어는 없다. 원죄가 유전된다는 말도 없다.>고 말한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아주 무서운 말로 인류에게 원죄가 없다는 말로 이해되기 쉬운 말이 된다. 구약성경뿐 아니라 신약성경에도 원죄라는 말은 없고 원죄가 유전된다는 말도 없다. 원죄라는 말과 유전이란 말은 신학적 용어일 뿐이다. 그러나 성경에 원죄라는 말이 없다고 인간에게 원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원죄가 없다면 예수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기독교 전체가 없어지게 된다.
기독교의 근간은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원죄(일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죄)를 원죄 없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원죄의 값을 치루고 대신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영생(하나님의 형상)의 길을 열어주었고 이 영생의 길, 영생의 진리를 받아드리는 사람은 죽어도 사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 원죄라는 말이 없어서 인간에게 원죄가 없다는 말은 아주 무서운 말로 기독교의 근간을 허무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구원을 가르쳐주기 위해 기록된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의 사건, 곧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말하고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한 선악과를 아담이 먹어 온 인류가 죄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죄의 사건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한다.
1. 아담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하나님의 본질대로) 창조되었다. 이 말은 아담이 하나님과 똑 같이 죽음이 없는 영원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이다. 아담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하고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한 선악과를 먹음으로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었다. 그러나 아담은 아주 오래 살면서 인류가 이 아담을 통해 번성하게 되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은 것은 아담의 영으로, 아담의 후손, 곧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영생하는 하나님의 본질)을 잃은 아담의 형상, 죽음을 가지고 번성한다. 이것이 원죄다.
2. 원죄는 아담이 지은 죄를 인간이 책임을 지고 죽게 된 것이 아니다. 아담이 원죄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영생)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번성하는 것이 원죄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다 죽음을 갖게 되어 모든 인간이 결국은 죽는, 인간의 죽음이 원죄다. 이 말은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유전되는 것이라는 말보다는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돼지새끼가 되는 것 같이 아담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영생)이 없는 아담새끼로 태어나는 것이 원죄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 영생이 없는 아담의 새끼다.
둘째 21세기 종교정신은 결국 깨달음인가.
<예수님의 폭소>를 소개한 글에서 기독교 신앙의 성숙을 강조하면서 21세기 종교정신은 결국 깨달음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21세기 기독교의 정신도 깨달음이어야 한다는 주장같이 들리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성숙한 믿음, 성숙한 교회,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 이상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21세게 종교정신이 <깨달음> 이라는 주장과 논리는 20세기에 등장한 뉴에이지 운동의 주장이고 기독교이단의 중심인 <구원파>의 주장이며 범신론과 불교의 주장이다. 기독교의 정신은 깨달음이 아니라 1세기에도 20세기에도 21세기에도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믿음과 구원과 사랑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 얻은 성도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사랑으로 성숙해야 한다.
김상구 목사(CA) <저작권자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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