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첫 주일은 1 월 1 일 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곧바로 전 교인이 준비된 장소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합니다. 언제나 주방에서 가장 크게 일 하시는 분은 K 권사님이십니다. K 권사님은 예배 시작 2 시간 전에 교회 도착하시어 그 날의 점심 메뉴를 점검하고 준비함에 부족함은 없는 지 점검 하십니다.
그런 다음 솔선수범해서 일을 하시며 도울 다른 분이 오시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하실지 지시를 하십니다. 교회서만 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매 주일 식단을 무엇으로 할까를 다른 회원들과 상의 하시며,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기 위해서 마켓을 보는 일도 담당하십니다. 이런 섬김으로 교회 식탁은 늘 맛 나는 음식으로 채워집니다.
특별히 1 월의 첫 주일은 교회 창립기념일 이기에 특별한 음식을 준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도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그 주일이 K 권사님의 70회 생일 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3-4년 동안 자신의 생일을 잊고 지내셨습니다. 교회를 섬기신지는 33년 동안 변함이 없으십니다.
남편이 계실 때는 큰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권사님의 삶은 파란 만장한 삶으로 이어 졌습니다. 남편 생전엔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주위 많은 분들의 부러움 속에 행복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하여 삶에 불행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 때부터 살기위해서 생활 전선에 몸을 던지셔야 했습니다. 전에는 험한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도 힘 들었지만 그보다 더 권사님을 힘들게 한 것은 하나 뿐인 딸이 평생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건강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딸에게서 낳은 16세의 손자도 평생 도와야만 하는 상태입니다.
그 일로 지난 20여 년 동안 권사님은 눈물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시고 홀로 우시며 사셨습니다. 때로는 가슴을 치며 긴 밤을 새우기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의 생각을 거듭해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지고 계신 겁니다.
우리 교회 교우 중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사셨습니다. 그런 권사님이 넘어지지 않도록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교회였습니다. 권사님에게 교회가 없으셨다면 그 힘든 삶을 이어가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자식으로 인한 아픔이 커도 예배로 힘을 얻으셨습니다. 권사님에게 교회는 기댈 유일한 언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삶에 지쳐도 교회 봉사하는 일을 중단하고나 포기할 수 없어 주님을 위한 작은 일에도 전심전력 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권사님의 희생과 삶 믿음을 아는 여전도회 회원들이 권사님을 위한 특별한 잔치를 준비한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수십 년만의 잔치 상을 받으셨습니다.
그 날도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진두지휘하시는 권사님을 장로님들이 강제로 모셔다가 담임목사님과 원로목사님 사이에 앉히고 그날만은 봉사를 하지 않고 앉아서 식사를 하시게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잔치가 준비된 것을 몰랐던 권사님은 전 교인들 앞에서 폭풍 같은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오래 동안 생일을 잊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여전도회 회원들이 은밀하게 생일잔치를 준비 했습니다. 축하 꽃과 큰 케이크 앞에서 전 교인이 권사님의 생일 노래를 합창하며 큰 박수로 축하했습니다. 권사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축하하는 모두가 함께 기뻐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권사님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큰 배에는 큰 엔진이 있고 작은 배에는 작은 기구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 교회가 42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K 권사님과 같이 주님을 향한 큰 믿음의 성도들이 각자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사님의 남은 생애가 이전의 삶보다 더 복되고 행복하시며 큰 상을 예비하는 삶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평강교회 원로, CA) <저작권자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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