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현장의 목소리 55. 말레이시아 장명석 선교사

원주민마을 교회개척 “눈높이 선교” 오토바이 타고 오지 속으로 …

송금관 기자 | 기사입력 2022/06/23 [05:24]

선교현장의 목소리 55. 말레이시아 장명석 선교사

원주민마을 교회개척 “눈높이 선교” 오토바이 타고 오지 속으로 …

송금관 기자 | 입력 : 2022/06/23 [05:24]

“말레이시아에 살러온 것이 아닌데…, 그리고 죽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지 않는가!…”

 

▲ 장명석 선교사(우측)와 부인 송애경 선교사(장명석 선교사는 예장 합동 GMS 소속으로 청소년 시절 선교사로 서원한 후 한국에서 담임목회를 10년 한 후, 2004년 말레이시아로 파송 받았다. 현재 동남아 이슬람권에서 교회개척 사역과 이슬람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교원 사역을 하고 있다. 경성대와 부경대대학원 그리고 총신대학신학대학원과 인디애나주의 Grace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다. 현재 GMS세계선교사회 부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자녀로는 아들 요한이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115CC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선교지 원주민 마을 오지로 가면서 인적이 드문 산골 웅덩이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만 나동댕이 쳐져 오토바이는 부서지고 팔과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옷이 너덜너덜 해어지고 상처의 고통과 아픔 가운데 인적과 차량이 드문 곳이라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간신이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팔과 다리에 상처의 고통 속에 빨리 집에 가서 치료하고 쉬고 싶었다. 비를 맞으며 정신을 조금 차리고 절뚝거리며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니 파손된 부분이 많았다. 이 외딴 곳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황망해 하는데, 시동을 걸어 보니 기적같이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순간 잠시 망설여지는 것은 왔던 길을 돌려 집으로 가느냐, 아니면 상처의 고통 속에 피를 흘리며 비를 맞고 다시 1시간을 더 달려서, 오지 원주민 마을 교회로 가느냐하는 인간적인 갈등이 찾아왔다. 

 

집에서 오토바이로 편도 5시간, 왕복 10시간 거리의 원주민 마을 교회다. 이제 여기서 1시간만 가면 되는데... 

 

내가 말레이시아에 이민 온 것이 아니고 살러온 것도 아닌데, 선교지에 가면서 선교현장 가운데 죽지도 않았는데, 비록 이 같은 사고 속에 상처와 피가 흐른다고 이대로 사명을 포기할 수 없지 않는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원주민마을 탐방에 환영하는 ‘무룻’ 종족     © 크리스찬투데이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고 부서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빗속을 달려 원주민교회에 도착하니 마침 오지 마을 갓난아기가 열병으로 죽어갈 지경에 부모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선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도밖에 달리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원주민교회에 가면 늘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고, 기도하면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직 기도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체험했기에 젊은 부모는 기도해 왔고, 선교사의 기도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는 도중 당한 사고로 인해 생긴 상처를 돌볼 틈도 없이, 고통 속에서 아이를 안고 밤새도록 예배당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도 아이가 열병으로 죽었던 예가 있어서 아이를 살려 달라는 간절한 기도와 상처를 당한 나의 고통과 함께 어우러져 눈물로 밤을 새웠다. 새벽녘, 지치고 아픈 몸에 안긴 아이와 함께 잠시 웅크린 몸을 일으켜 세우니, 멀리 정글 숲 속 사이에 태양 빛이 비춰 오는 것을 보며 아이를 살펴보니 간밤에 그렇게 열이 펄펄 끓는 아이가 감쪽같이 평온한 모습으로 잠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감사한지, 만약 어제 빗길 속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고 집에 그만 돌아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하니 주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 전통 복장의 ‘무룻’ 종족들의 모습     © 크리스찬투데이

 

현대문명과 원시문명이 함께 공존하는 나라, 적도상 열대의 기후 속에 말레이계 중국계 그리고 인도계가 있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는 장명석 선교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일까?”가 그의 고민이고 기도였다.

 

18년간 현지에서 사역하며 내놓은 그의 선교에 대한 대답은 ‘주님의 선교’다. 그는 다른 말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선교’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고 만나 주신 것처럼, 장 선교사는 이것을 ‘눈높이 선교’라 정의한다. 작은 실천이지만 자신의 선교 대상인 원주민 마을에서 그들처럼 똑같이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접근과 선교를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 교회개척 사역의 현장     © 크리스찬투데이

 

“사실, 먼 거리와 또한 오토바이는 때로 위험하기도 하고 더구나 낮 기온 평균 35〫C(95〫F)에 안전모와 긴 팔을 입고 장거리 오토바이를 타면 머리엔 땀띠가 늘 있고 손등에는 화상 자국을 입을 정도로 고역입니다. 때때로 열대 지방에서 퍼붓는 스콜(Squall)을 만나면 어려움은 배가 됩니다. 얼마든지 선교사가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도 이의를 달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찾아가는 그 곳 마을 원주민 가운데는 아무도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대신 오토바이는 원주민마을에 친숙한 교통수단인 것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새삼스럽게 오토바이 연수 학원에 다니며 그것도 몇 번 시험에 떨어져가며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기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격과 배기량이 적은 스쿠터를 구입하고 마을로 달려 들어가니 모두들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지 마을에 가면 솔직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갈 때마다 짧게는 2박3일 또는 3박4일 정도로 여러 마을을 순회하지만 어떤 마을에는 전기와 수도가 없고 음식이 박하며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하지만 깊은 오지인 마을일수록 선교지 마을을 찾고, 선교하다 돌아오면 그렇게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런 오지 속에서 믿음을 받아들이고 이슬람권 영향과 도전 속에서도 변절하지 아니하고 다 헤어진 노트에 필사 성경과 찬송을 가지고, 먹는 것이 변변치 못해 나무 열매를 따다 먹어 입안이 온통 새 빨간 그들을 보며 함께 예배하고 심방하다 보면 오히려 선교사가 때로는 선교 팀이 선교하러 간 것이 아니라 선교 받고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 감동적인 성전봉헌예배     © 크리스찬투데이

 

“무엇보다 아주 깊은 오지와 또한 깊은 원주민마을이 아닐지라도 그 곳에 교회를 세우고 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진실로 그 기쁨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세상이 주는 어떤 기쁨보다 더 큽니다. 개인적으로 선교지에 교회만 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인 줄 압니다. 그것은 교회만 세우고 후속 조치가 없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선교지에서는 교회는 세웠지만 목회자 수급과 선교사가 관리가 안 되어 시간이 흘러 그만 마을 창고로 방치된 교회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제가 감당하고 돌볼 수 있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아홉 개 교회를 은혜 가운데 세웠습니다. 모두 은혜와 감동의 봉헌예배를 드렸지만, 처음 원주민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봉헌한 순간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가 세워진 곳은 아주 깊은 산악 마을에 있는 ‘무룻’(Murut) 종족들이 살고 있는 곳 입니다. 동말레이시아 보르네오(Borneo)섬 시피탕(Sipitang)지역에서 산으로 2시간 올라가는 마을입니다. 지금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왜 이런 곳에 대대로 후손들이 살아가는가 하는 의문일 정도로 오지인 곳입니다. 열악한 가운데 자립할 수 없을뿐더러 감사하게도 촌장을 비롯해 원주민들이 간절히 원했기에 선교사는 오고가는 길이 힘들어도 보람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그 '울루불교회’을 건축 봉헌하신 분은 모 권사님이신데 이 권사님은 본인의 회갑 경비와 가족의 후원으로 헌금하심으로 그야말로 아골 골짝에 있는 산악마을에 십자가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 장례 가정을 심방해 위로하는 장명석 선교사     © 크리스찬투데이

 

장명석 선교사는 선교지에 교회 건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는 정말 교회가 필요한 곳에 그리고 신중하게 앞으로도 세워 나가려고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 그 마을에 교회가 세워지면 교회는 제일 큰 집이요, 쉼터요, 안식처요, 교회가 제일 멋진 건물로 들어서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불신 가정 속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특히 부모님의 반대와 핍박을 무릎 쓰고 학창시절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했던 장 선교사는 그 때 이미 서원했던 선교사가 마침내 되어 “서원 한 것은 갚아야 한다”는 시편 기자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오지와 열악한 마을을 찾아 푸른 하늘아래 세워지는, 십자가의 영광되고 보람찬 사역을 바라보며 오토바이를 타고 오늘도 달린다.

 

▲ 이슬람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습     ©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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