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해지는 곳(절망)에서 해뜨는 곳(희망)으로 걷다

문화로 성경 읽기(57)

김동문 선교사 | 기사입력 2022/06/23 [05:17]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해지는 곳(절망)에서 해뜨는 곳(희망)으로 걷다

문화로 성경 읽기(57)

김동문 선교사 | 입력 : 2022/06/23 [05:17]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어떤 특정 장면 속 어떤 장소가 인상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추억의 장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느 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묵직한 어떤 ‘느낌’이 솟아날 때가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 속에도 그런 장소, 순간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해, 달, 별, 나무, 식물, 동물, 냄새, 빛, 맛, 음식 다양하기만 합니다. 같은 것인데도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가오곤 합니다.

 

지난 2020년 3월 28일에, 문화로 성경 읽기(40번째 이야기로 “디 베냐와 예루살렘의 아침”을 다루었습니다. 그때 짧게 언급하였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를 오늘은 조금 차분하게 다시 읽어보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 이야기 속 장소는 그냥 ‘이름’이 아니라 개인과 공통의 감정과 추억, 기억이 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냥 아무 장소나 막 써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읽거나 설교하면서도 그 장소, 거리, 거리감, 공간감 등을 떠올리지 않고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것이 아쉽습니다.

 

▲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일출     © 김동문 선교사

 

성경 속으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누가 24:13-35)를 차분하게 읽기 위하여 몇 가지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이해입니다. 언제, 어느 시점, 어느 시간대에 벌어진 이야기일까요?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4월 초순으로 그 시점을 떠올려봐도 좋을 것입니다. 어느 시간대에 벌어진 이야기일까요? 2천 년 전 그날을 떠올리기 위해 4월 초의 먼동부터 일몰, 밤중까지의 시간의 흐름을 짚어봅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 올해의 경우를 참고합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지역의 먼동은 05:22 일출은 06:30 일몰은 19:00 밤중은 20:09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먼동 05:20, 일출 06:28, 일몰 18:59, 밤중 20:06이었습니다. 이 두 장소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로 들어가 봅니다.

 

또한 오늘 이야기의 무대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도 가져야 합니다. 예루살렘, 엠마오 그리고 두 곳을 오고 가는 길에 대한 것입니다. 이 길은 로마식 포장도로를 뜻하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식민지 고대 이스라엘에 곳곳에 로마화 된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로마식 길을, 포장도로를 닦았습니다. 로마 군대가 오가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춘, 마차가 달릴 수도 있는 길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정표(mile stone)도 있었습니다.

 

이 두 곳을 잇는 길의 길이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10~12킬로미터, 눅 24:13) 길로 적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 사본에 60 ‘스타디아’(sadist)로 적고 있지만, 160 ‘스타디아’로 적고 있는 사본도 있는 듯합니다. 로마 거리 측정 기준으로 1 ‘스타디온‘(station, 이 단어의 복수형이 ‘스타디아’입니다)은 185미터 정도입니다. 예루살렘 기점(예수 시대에 예루살렘 지역 어디를 기점으로 삼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에서 엠마오는 11킬로미터 또는 29.5 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로마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기점과 이야기의 무대인 제자들이 머물던 예루살렘 성사하게도 거리가 상당했을 것입니다. 세 시간에서 일곱 시간, 여덟 시간이나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 구글 지도 캡처

 

예루살렘에서 산 지 길을 따라 엠마오가 자리한 평지 평야로 가는 길은 산악 지형입니다. 구글 지도 등을 활용하여 살펴보면 한 시간에 4~5킬로 정도를 갈 수 있을 듯합니다. 동쪽 예루살렘에서 고도 차이가 6, 700미터는 족히 되는 서쪽 엠마오 지역으로 이동하는 두 제자를 떠올려봅니다. 엠마오에 도착할 무렵은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고”(누가눅 24:29)던 시각이었습니다. 멀리 지중해에 해가 지는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것은 이른 오후였을 것입니다. 시간은 낮이지만 제자들은 이미 깊은 밤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저 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고 가던 두 제자는 어떤 느낌, 감정이었을까요? 저무는 하루해는 희망이었을까요? 두 제자는 점점 저무는 햇살 속으로 그리고 밤으로 그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절망, 더 깊은 절망 속으로 ᅟᅳᆯ어가는 듯, '누가'는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 지중해의 일몰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이제 날이 완전히 저물고 밤이 되었습니다. 오후 8시가 넘어 9시, 10시 이렇게 두 제자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 깊은 밤, 절망의 시간에 예수님은 두 제자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함께 저녁 식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두 제자는 마치 꿈만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두 제자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왜? 절망감으로 내려갔던 그 해 지는 서쪽에서 해 뜨는 동쪽으로,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3시간, 4시간, 다섯 시간 산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며 올라갑니다. 새벽 5시가 지나고 예루살렘 산지 그 너머에 먼동이 틉니다.

멀리서부터 새로운 아침이 두 제자 앞에 열리고 있습니다. 마음도 벅찬 감동으로 이미 밝아오고 얼굴은 희망에 넘쳐 붉은빛을 내는 듯합니다. 이제 이 두 제자는 절망이었던 밤을 지나 희망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새로운 아침, 새로운 하루,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새날이 밝았음을 이 두 제자는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밝히며 달려갑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에 지식의 많고 적음이 큰 관건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느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적 동의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억과 추억조차 성경을 온몸으로 공감하도록 돕습니다. 성경은 단지 지식과 정보를 건조하게 던져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추억, 인격에 말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 지난 삶의 엠마오와 예루살렘도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어디쯤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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