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현장의 목소리 ㊾ 카보베르데 조남홍·조연섭 선교사

대서양 한복판의 작은 섬나라에 주의 복음을…

피터 안 기자 | 기사입력 2021/08/27 [13:33]

선교현장의 목소리 ㊾ 카보베르데 조남홍·조연섭 선교사

대서양 한복판의 작은 섬나라에 주의 복음을…

피터 안 기자 | 입력 : 2021/08/27 [13:33]

▲ 조남홍 선교사는 대한항공 정비사로 근무하던 중 1981년 볼리비아로 첫 번 이민으로 정착하고, 브라질로 두 번째 이민을 간 뒤 1988년 캐나다로 세 번째 이민 중 1998년 북한 땅을 밟으며 선교사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2005년 캐나다를 떠나 하와이를 거쳐 세네갈에 입국하면서 비거주 선교사를 벗어나 거주 선교사로 발걸음을 시작했으며, 2013년 3월 목사 안수를 받고 같은 해 7월 카보베르데 선교사로서 남은 생을 마칠 각오로 들어갔다.

2014년 사랑마을 어린이 사역을 시작, 아프리카 54개국에서 최초로 중국인 교회를 설립해 3년간 담임 목사로 시무, 2015년 1월 1일 1명의 중국인 교인에게 침례를 주었으며, 2016년 1월 1일 4명의 중국인 교인에게 침례를 주었다. 2017년 현재 카보베르데 Santa Cruz 리보네구아 교회를 건축, 2017년 7월 15일 헌당예배를 드렸다.

캐나다 큰빛교회 파송 선교사, 백석 총회 파송 선교사, 한국 불어권 선교회 소속, G.M.P America(미주 GMP)선교회 소속,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경남 대학교, 국제 연합신대원 졸업, 해병대 303기(진중 세례), 북한 사역(1998~2004년 임현수 목사와 함께), 와이엠 디티에스 수료(호놀룰루), 세네갈 다카르 선교사 자녀학교 생활관 Dorm Parents 사역(2005~2010), 카보베르데 (2013-현재)     © 크리스찬투데이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세네갈에서 650km 떨어진 대서양 한복판에 인구 50만 명이 열 개의 크고 작은 섬에 흩어져 사는 작은 섬나라가 있다. 카보베르데(Cape Verde)라는 이곳은 과거에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노예무역이 성행할 때 노예들을 모아 놓았던 슬픈 역사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지금은 1975년 독립을 쟁취한 이후 아프리카 54개국 중 민주주의가 가장 잘 이루어진 나라 중 하나로 현재 2021년까지 작은 쿠데타 한번 없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루어 온 민주공화국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카보베르데는 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기는 하지만 열악한 선박과 조업기구로 인해 주로 근해어업을 하느라 수산물 수출은 거의 없고, 농업 또한 옥수수 외에는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이 없으며, 옥수수 생산도 비가 정상적으로 오던 4년 전만 해도 50%는 식량 자급을 할 수 있었지만, 4년째 가뭄으로 주식인 옥수수를 100% 파라구아이에서 수입해 올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조남홍·조연섭 선교사 부부는 이름도 생소한 이곳 카보베르데에 한인 최초로 건너온 이민자이자 선교사이다. 포르투갈어와 현지인들의 언어인 크레욜을 공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적 문제와 지리적 문제로 인해 선교사들이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조 선교사 부부가 이곳에 머문 지 벌써 8년째가 되어 간다. 

 

“저희 부부가 들어온 2013년까지만 해도 한국인은 전혀 볼 수 없는 나라였지만 저희 부부가 정착한 이후 한국인 방문객들이 조금씩 들어오기는 하지만 정착하는 사람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Sao Vicent 섬에 대한민국의 동원 산업이 잠시 들어왔다가 높은 세율로 인해 견디지 못하고 철수한 적도 있었고 그 후는 한국과 교역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세네갈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돌보는 Dorm Parents 사역을 마치고 안식년을 한국에서 보내던 중 조 선교사 부부는 선임 선교사가 세네갈의 MK 생활관을 없애 버렸다는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이것을 계기로 조 선교사 부부는 원망보다 기도하게 되었고, 선교는 사역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귀하고 값진 교훈을 얻게 된다.

 

▲ 조 선교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저희 부부에게 같은 마음으로 선교의 본을 만들라는 마음을 주시면서 한국교회, 선교단체들의 실체를 보게 하셨고,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에서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계획을 A4 용지에 써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정착금도 없이 순종하고 들어온 저희 부부를 통해 7년 동안 이루어 놓으신 결과가 아직 진행 중에 있지만 그때 주신 주님의 마음들이 눈앞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 의회에서도 관심 없었던 100세대가 사는 시골 마을에 교회를 짓게 하셨고, 그 교회에서 바닥에서 흙 갖고 노는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하게 하셨고, 1,000cve(한화 12,000원)가 없어서 학교를 못 보내는 유치원 졸업생들을 위한 기독초등학교를 세우라는 마음을 주셔서 순적하게 드림스 드림 대표를 만나게 하셔서 초등학교를 건축하여 올 9월에 개교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공간 안에 교회를 비롯해 유치원, 학교, 보건소 등 예수님의 비전공동체가 세워지고 있음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 마당에서 본 교회 모습     © 크리스찬투데이

 

조 선교사 부부는 이처럼 이민자로서 뿌리 내리기와 한국인 선교사로서의 편만함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 영성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조 선교사에 따르면 90% 이상이 카톨릭 신자인 이곳은 선교사들의 사역 기간이 평균 5-6년 정도로 개신교가 발붙이기 쉽지 않은 곳으로 정치는 물론 Catholicism 법으로 모든 중심이 가톨릭으로 돌아가고 있고, 몰몬교, 여호와 증인, 유니버살과 같은 이단들을 개신교라 칭하면서 개신교 점유율을 6%까지 잡고 있지만, 실제 개신교 점유율은 3.5% 정도에 머무른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이단성이 있는 카보베르데 가톨릭은 세속적 가치관과 함께 정령숭배, 기복신앙이 중심이 되어 있고,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 역시 약한 신학 배경은 이단에게 많은 교인들을 뺏기고 있는 실정이어서 각별한 기도가 필요한 지역이라고 말한다.

 

 

“많은 선교사가 유입되어 각 섬마다 올바른 복음이 전해져야 하지만 선교사 정착이 그리 쉽지 않은 외로운 섬나라입니다. 소명을 갖고 들어온 선교사들마저 도심 밖의 열악함으로 인해 모두가 도심 안에서만 정착하기 때문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지 못하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조 선교사 부부는 가장 어려운 코로나19 시기에 미국과 브라질 선교사들이 다 떠나고 유일하게 남은 선교사다. 작년 11월 잠시 한국에 가서 40피트 컨테이너 2대를 부평 세림병원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고 2월에 들어와 현재 사역지인 카보베르데 Santa Cruz 지역 리보네구아 교회 중심으로 사역을 계속 이끌어 가고 있다.

 

▲ 유치원 졸업식     © 크리스찬투데이

 

작년에는 두 차례 내린 비로 좁은 섬나라가 피해를 많이 입고 수해자와 코로나19 환자들이 모인 곳에 치료를 다니며 구호품과 쌀 약 1,000포대를 나누며 복음을 전했다. 또 코로나와 상관없이 침을 놓고 치료하고 상비약을 나누며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

 

교회를 건축할 당시에는 7명이었던 교인이 40명으로 늘어나고, 현재 주일 예배는 약 70명 정도가 드리며, 한 달에 한 번 각 지역 가정교회가 모여 예배드릴 때는 약 150명 정도의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한 작년에 시작한 초등학교 건축이 올해 3월에 모두 끝을 내고, 오는 9월에 시작할 2021-2022년 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부평 세림병원과 인천 치과의사협의회가 지원한 치과의자 풀세트를 설치할 장소를 준비 중이며, 코로나 상황으로 부족한 건축비용 25,000 Euro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 중국인 예배 모습     © 크리스찬투데이

 

조 선교사 부부는 1981년에 한국을 떠나 볼리비아, 브라질, 캐나다, 세네갈 그리고 카보베르데 선교사로 정착을 하면서 3개국 시민권과 6개국 영주권을 받기도 했지만, 카보베르데는 조 선교사 부부에게 있어 남은 생애를 다 던질 사역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섬나라 사람들은 이미 조 선교사 부부를 같은 같은 카보베르데인으로 여기고 함께 하려고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습성을 벗어버리기 쉽지 않은 그들의 타성에서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새 생명으로 거듭나 거짓말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모계사회의 아버지가 없는 자녀들의 상처를 싸매고 성경적 결혼 문화를 심어주는 것을 교회에서 실천하려고 합니다. 또한 복음도 먹을 것이 없다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가난한 교회 형제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여러 방법을 간구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아이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며, 유치원 과정에서 예수님을 가르치고, 기독초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 이 지역을 복음화 시킬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모든 과정을 무료로 가르치고, 먹이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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