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성경 읽기(56) -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것 같은 성경읽기 넘어서기

김동문 선교사 | 기사입력 2021/08/16 [01:02]

문화로 성경 읽기(56) -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것 같은 성경읽기 넘어서기

김동문 선교사 | 입력 : 2021/08/16 [01:02]

▲ 시나이반도 와디 페이란(Wadi Feiran), 신 광야 지역의 르비딤 지역의 대추야자 숲이 물의 넉넉함을 떠올리게 한다.     © 크리스찬투데이

 

내가 읽는 성경 이야기 속 시대, 장소, 상황, 사물, 의식주 등을 가리키는 ‘단어’가 나옵니다. 혹시,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이 장소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짚으면서 성경을 읽으시나요? 아니면 그냥 눈으로 읽고 지나가나요? 성경 속 등장인물들을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떠올려본 적이 있는가요? 그 시대, 그 계층, 계급, 처지를 드러내는 옷차림을 하고 말투를 하고 몸짓과 표정을 짓고 있는 성경 속 인물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요? 성경 속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 등을 떠올리면서 성경을 읽어본 적이 있을까요?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성경책에 적혀 있는 것을 감정없이 소리 내어 읽고 있을 뿐입니다. 읽는 이나 그것을 듣는 이 모두, 성경 속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할 것입니다. 드라마 이상으로 생생함이 가득한 성경인데 말입니다. 생생한 성경 읽기는 성경 통독의 횟수나 독서량, 신앙 경력의 길고 짧음과는 무관합니다.

 

성경 속으로

 

▲ 익어가는 대추야자 열매, 성경에서 종려나무 열매로 부르며, 구약성경에서 '꿀'을 뜻할 때, 대추야자 시럽을 말한다.     © 크리스찬투데이

 

오늘 다루는 주제는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사건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아즈 드물게 가뭄을 겪기는 했지만, 나일강의 혜택을 받는 땅 이집트는 비옥한 땅 그 자체였습니다.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는 어떤 곳일까요? 광야는 크고 작은 성과 마을의 경계 밖의 공간을 뜻하곤 합니다. 그런 까닭에 광야도 저마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산마다 들판마다 저마다의 나름의 특징이 있는 것보다 더 선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출애굽의 무대가 되는 수르 광야(에담 광야), 신광야, 시내광야, 바란광야 그리고 또다른 신광야(시나이반도 동쪽 지역의 진광야)도 저마다의 특징이 있습니다. 미국의 서부 지역의 광야, 애리조나나 텍사스의 도시 밖 풍경에 가까운 풍경입니다. 이들 광야는 유대광야와는 사뭇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 광야의 공통점도 많습니다. 그것은 물 걱정을 해야하는 곳, 일교차가 대단히 크다는 점, 맹수의 위협, 홍수의 위협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선 백성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가 바로 물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도시 빈민처럼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들이 살던 곳은 대부분 문설주, 문지방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이런 집을 짓고 살 수도 그런 집을 갖고 광야로 나온 것도 아닙니다. 

 

▲ 광야의 주거 공간인 염소털로 짠 유목민 천막. 일교차가 큰 광야의 밤의 추위와 낮의 더위를 견디는 피난처이다.     © 크리스찬투데이

 

광야에 적절한 집은 염소털로 짠 유목민 천막입니다. 비교가 쉽지 않지만 그것은 오늘날의 평범한 단독주택 값보다 더 비싼 수준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을 갖추고 광야 생활을 시작한 백성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한 천막에 5-6대가 같이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가족이 기본이었던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옷차림이 단촐했습니다. 남자들의 경우 대개 상의는 없이 둘둘말아입는 치마 같은 것을 걸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광야는 일교차가 크기에 이런 옷차림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옷차림도 광야에 적응하느라 고생스러웠을 것입니다. 옷차림새, 사는 공간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야 했던 출애굽한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게다가 먹거리도 달랐습니다. 광야는 정착 문명이 아니기에, 정착할 때에나 가능한 농경 문화의 혜택을 거의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음식도 바꿔야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빈도수 차이가 컸겠지만 구경이라도 했던 어떤 음식들이, 광야에서는 아예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출애굽 광야 이야기에 등장하는 만나가 있습니다. 만나의 크기와 모양을 설명하면서 ‘깟씨’가 나옵니다. ‘깟’의 ‘씨’입니다; 미나리과 식물, 고수(풀)의 씨(Coriander),입니다. 

 

▲ 야생 우슬초, 중동에서 이것은 향신료로는 물론이고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그런 종교적인 몫으로도 활용되었다,     © 크리스찬투데이

 

다시 생각하기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여행한 이들 가운데, 베드로 고기를 먹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을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선은 틸라피아(Tilapia)로 표기하는 민물고기로 필리핀에서도 미국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하는 생선일 뿐입니다. 물론 한국의 대형 마트나 온라인 마켓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생선입니다. 그런데 틸라피아를 앞에 두고도 베드로 고기를 떠올리지 못하고, 베드로 고기를 앞에 두고도 틸라피아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허례허식을 비판할 때 언급하신 향신료가 있습니다. 박하, 회향, 근채, 운향, 모든 채소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채소는 모든 종류의 채소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우슬초를 기본으로 한 향신료의 하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뜻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 향신료를 갖고서 1/10을 계산해보는 것입니다. 전자저울로도 이들 향신료의 1/10을 제대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마치 깨소금의 1/10, 고춧가루의 1/10을 따로 떼려고 애쓰는 것을 떠올려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대형마트나 아랍 이슬람 마켓에 가면 향신료 코너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박하(Mint), 회향(dill), 근채(cummin), 운향(rue), 우슬초(Oregano) 등입니다. 코스(트)코(Costco)나 대형 마트에 가면, 병아리콩으로 만든 ‘훔무스’나 대추야자(종려나무 열매)도 구할 수 있습니다. 훔무스는 빵을 찍어 먹는 아주 값진 소스였고, 대추야자는 구약성경의 ‘꿀’의 대명사였습니다. 실물을 앞에 두고 성경 읽는 것, 한 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성경 문화 실물 체험 재료에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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