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성경 읽기(54) - 갈릴리 같은 인생? 사해 같은 인생?

김동문 선교사 | 기사입력 2021/06/15 [03:06]

문화로 성경 읽기(54) - 갈릴리 같은 인생? 사해 같은 인생?

김동문 선교사 | 입력 : 2021/06/15 [03:06]

▲ 갈릴리 호수     © 김동문 선교사

 

살면서 우리들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어떤 일이 많습니다. 그것은 특정인, 특정 민족, 인종, 지역, 사물, 사건 등에 대한 해묵은 편견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질문도 던지지 않는, 물어보나 당연한 어떤 지혜처럼 활용되기도 합니다. 사실이 드러나도 “알고 보니 내가 오해했다 미안하다” 인정도 안 하는 그런 일이 적지 않습니다.

 

갈릴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지요? 사해 하면 떠오르는 것은요? 혹시, 갈릴리와 사해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떠올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는 긍정적인 존재로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존재로 말입니다. 갈릴리 같은 인생으로 살고, 사해 같은 인생으로 살지 말자, 하는 식의 설교나 훈시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양 같은  염소 같은 교인 되지 말자”라는 것 못지 않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우리들의 오류일 뿐 입니다.

 

▲ 갈릴리 호수     © 김동문 선교사

 

성경 속으로

 

갈릴리 호수와 사해 모두 주요한 수자원은 요단강입니다. 갈릴리 호수도 요단강(상부 요단강)에서 물을 공급받고, 사해도 요단강(하부 요단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습니다. 물론 요단강 말고도 크고 작은 강과 시내에서 물이 유입됩니다. 요단강을 비롯하여 주변의 크기 작은 시내와 마른 시내(비가 오면 잠시 흐르는 시내)에서 유입되는 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갈릴리가 익숙한 것은 예수님의 사역지라는 것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은 맑기만 합니다. 물론 각종 물고기도 살고 있고, 여름철이면 이스라엘 안팎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휴양지, 휴식지로 사랑을  곳입니다. 금요일 낮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이 지역의 호텔은 안식일을 가족과 함께 쉬려는 유대인 가정으로 넘쳐나기도 합니다.

 

갈릴리 호수는 둘레가 33마일(약 ) 정도 되고, 가장 폭이 넓은 곳은 8마일(약 , 남북은 최대 13마일(약) 정도 됩니다. 해발고도 –215미터 정도로, 수심이 깊은 곳은 넘기도 합니다. 갈매기도 볼 수 있는 그러나 민물호수입니다. 물도 맑습니다. ‘갈릴리 호수 같은  사해 같은 인생이라는 표현에 비해 활기차고 생명력 있는 어떤 것을 그리도록 합니다.

 

그런데 갈릴리 호수는 어떤 존재일까요? 예수 시대 갈릴리 호수 지역에는 15개 이상의 포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도시는 디베랴, 게네사렛(긴네롯), 막달라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희에게 익숙한 포구를 언급한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다른 이름으로 디베랴 바다, 게네사렛 호수, 긴네롯 바다 등으로 불린 것으로 우리들이 말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디베랴 성 앞의 호수는 디베랴 호수(바다) 등으로 부르던 것입니다. 산타 모니카 비치, 레돈도 비치, 롱 비치가 태평양의 다른 이름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가장 주요한 수자원은 요단강입니다. 이른바 헬몬산 지역에서 유입되는 4개의 주요한 물줄기가 만나서 이루는 요단강이 갈릴리 호수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 갈릴리 호수는 요단강에 물을 제공해주는 모양새입니다.

 

요단강에서 물을 요단강에 물을 전달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갈릴리 호수는 자기의 . 받은 것의 일부를 흘려 보내주는 그런 모습, 그런 사람을 떠올려 본다면 어떤 느낌이 다가오는지요?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떠오르나요? 아닐 것입니다. 생색내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갈릴리 같은 인생은, 그렇게 좋게 평가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 사해     © 김동문 선교사

 

그런데 사해는 죽은 바다가 아닙니다. 섞은 물이라거나 물색이 탁하다거나 나쁜 냄새가 진동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물론 머드로 부르는 진흙은 냄새가 나기는 합니다. 염도가 강한 소금물이지만 물속이 훤히 보이고, 장소에 따라서는 푸르른 빛을 드러내 주기도 합니다. 사해의 물색만 보면 사해라는 생각이 안 들 것입니다. 그런데 사해는 각종 유기물질을 제공합니다. 사해가 여러 형태로 증발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해 소금도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 사해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사해는, 마치 등불이 기름을 태우는 것을 통해 다른 사물의 존재감을 드러내주고, 자신을 감추는 듯합니다. 자신을 바꿔서 우리의 삶의 다양한 영역에 필요한 각종 유기물질을 제공합니다. 비료로도 사용됩니다. 퇴비, 거름을 만들 때, 산성 토양을 회복할 때, 빙판길을 녹여줄 때, 그리고 각종 음식의 맛을 낼 때, 우리 몸의 축난 것을 보충해줄 때도 사용됩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을 떠올려보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생색내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베풂이 가득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 갈릴리 같은 사람, 사해 같은 사람, 어떤 유형의 사람이 더 호감이 가는지요?

 

우리는 저마다의 편견이나 고정관념, 선입견을 갖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사람에 대해 그렇게 살아갈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을 오해하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물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데 사람에 대해 사실 여부도 짚어보지 않고 쉽게 단정 짓는 것은 더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소금처럼 등불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숨 쉴 만한 틈이 되는 삶, 생색만 내는 갈릴리 같은 삶, 얌체 같은 삶이 아니라 다른 이를 돋보이게 하는 사해 같은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뜬금없지만, 갈릴리 호수와 사해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잠시 되짚어보는 글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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