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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공화국

정성구 박사 | 기사입력 2021/02/18 [02:46]

「완장」공화국

정성구 박사 | 입력 : 2021/02/18 [02:46]

▲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50여년 전의 일이다. 필자가 전방부대의 군목으로 일할 때였다. 새로 전입한 신병 중에 사회에서 좀 놀던 자가 들어왔다. 그는 나이도 많은데다 삼류 쇼 무대에서 사회를 봤었고 주먹도 있었다. 그러니 군대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사사건건 사고를 치는 문제사병으로 낙인 찍혔다. 요즘은 이런 자를 관심사병이라고 한다지만, 부대장을 비롯해서 장교들은 그 병사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지휘관은 놀라운 아이디어를 냈다. 지휘관은 그에게 위병소의 근무자로 발령을 내고 완장을 채워주었다. 계급도 아예 병장으로 달아주고 위병소 안에 있는 간이 영창을 관리까지 하도록 했다. 당시 군대에서는 이런 경우를 마이가리 병장이라고 했다. 그는 갑자기 얻은 완장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우선 부대를 출입하는 모든 장병들의 군기를 잡고 위협적으로 부대 내에 임시영창의 관리자로서의 임무를 톡톡히 해냈다. 지휘관으로서는 관심사병에게 완장을 채워 줌으로서 부대를 원만히 이끌 수도 있고, 말썽꾸러기를 잘 관리하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완장을 찬 그 사병은 자기 뒤에 지휘관이 있음을 알고, 점점 권력을 행사하더니 폭력까지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기권력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갈취한 사건 때문에 일등병으로 강등되고 완장이 벗겨지고, 도리어 자기가 관리하던 그 영창에 갇히게 되었다. 권력의 뒷배를 믿고 설치다가 우습게 된 사건이었다.

 

필자는 그 옛날을 회상하면서 1983년 윤흥길이 쓴 소설 <완장>이 생각난다. 이 소설은 MBC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그 소설과 드라마는 오늘의 한국상황의 민낯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임종술은 놈팽이요 건달이었다. 마을 저수지를 최사장이 사용권을 확보하고, 유료 낚시터로 개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객지를 돌아다니다가 망나니와 깡패로 살아오던 종술이에게 월급 5만원에 감시원 자리를 주고 비닐 완장을 채워준다. 그러나 종술은 노랑바탕에 ‘감독’이라는 파란글씨에다 좌우로 세 개의 빨간 줄을 그린 비닐완장을 맞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람이 완장을 차면 어떻게 돌변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완장을 차는 사람이 과거에 전과가 있거나,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수록 완장을 차면 더욱 돌변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된다. 

 

완장은 권력이다. 그러니 종술은 완장을 차고 난 후에 눈에 뵈는 것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마을 이장이고, 경찰이고, 친구고, 동창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데로 폭력을 가하고 거들먹거렸다. 이제 종술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완장은 곧 종술이고, 종술은 곧 완장이었다. 그는 완장의 능력과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그 마을에 최악의 가뭄이 들자 관청에서 저수지의 물을 방류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로써 종술에게 완장을 채워준 최사장의 계획도 무산된다. 그래도 종술은 끝까지 완장에 매달리고 쥐꼬리만한 권력에 심취해서 그것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가 애인인 부월이가 종술을 찾아와 완장을 뺏어 저수지에 던지고, 그 완장은 물 위에 둥둥 떠내려 갔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현실이다. 현실이 소설화 된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완장 공화국>이다. 아주 멀쩡한 사람도 <완장>을 차면 기고만장하고 뵈는 것이 없어진다. 특히 과거에 만주화랍시고 운동권에서 날리던 사람들이 완장을 차면 완전히 돌변한다. 특히 이런 저런 불법 또는 사회주의 경력으로 몇 번 감방에 갔다 온 사람들이 완장을 차면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완장 찬 사람 중에는 백수 건달, 놈팽이도 많다고 들었다. 

 

수많은 직책 가운데 공직은 확실한 완장이다. 문제는 완장을 채워주는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완장을 채워 준 자에게 정의나 법 따위는 없고, 오직 지사충성하게 된다. 완장 찬 사람에게는 국민도 안보이고, 나라도 안보이고 오직 임명자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완장을 유지하는 것이 된다.

 

사실 완장하면 독일 나치의 히틀러가 찬 완장이 생각난다. 히틀러는 미친 자이다. 미친 자에게 완장을 채워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본 회퍼가 미친 자에게는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는 말은 완장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홍위병들이 차고 있었던 완장은 사람 죽이는 완장이었다. 또한 인민군들이 차고 있던 완장도 그들에게 공산주의 이상을 달성하려는 폭력의 상징이었다.

 

물론 한국의 모든 과거 정권도 완장을 채워주는 자들과 완장을 찬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처럼 정부의 관리들과 법조계에 완장을 차고 있는 자들이 그토록 문제가 많고, 흠결이 많아도 완장 채워준 자의 뒷배를 믿고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안스럽다. 요즘은 구청직원, 동직원들도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대면예배 감시를 하는 것도 완장 채워준 자를 위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교회를 위협하고 겁박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880년 10월 20일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가 뿌라야(자유) 대학교를 설립하면서 외친 연설이 생각 난다. “이 학교를 세우는 이유는 국가지상주의, 우상 주의 국가가 교회, 개인의 신앙, 교육 등을 모두 장악해서 개인의 자율권을 박탈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독재와 국가지상주의를 위해서 완장차고 설치면서 일하는 분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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