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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 읽기(50) - 출애굽도 광야도 새로운 일상이었듯, 새로운 일상을 마주합니다.

김동문 선교사 | 기사입력 2021/02/03 [02:23]

문화로 성경 읽기(50) - 출애굽도 광야도 새로운 일상이었듯, 새로운 일상을 마주합니다.

김동문 선교사 | 입력 : 2021/02/03 [02:23]

▲ 출애굽과 광야 생활, 그 새로운 일상을 홍해를 건너면서 시작되었다. 언제 끝날 줄 모르는 광야로 들어간다.

 

코로나19로 인해 전혀 상상도 기대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을 버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코로나19 이전의 살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이후를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문득 출애굽 여정이 떠오릅니다. 참, 새해를 맞이하여 성경 통독의 의욕을 다시금 발휘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늘 그렇듯이 레위기를 읽다가 성경 통독의 맛과 의욕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만요..

 

성경 독자인 우리들이, 떠올리는 광야는 어떤 것일까요? 때때로 산과 들로 나가 이른바 야영, 야생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산장이나 잘 갖춰진 숙소가 아닌 그야말로 야외 취침을 하는 상황이라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혼자서가 아니라 남녀노소가 가족과 이웃이 어우러져 그렇게 한다면, 적잖은 혼란도 겪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 여행을 하는 것도 버거운 환경인데, 생활인으로서, 그곳에서 30-40년을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어떠하였을까요? 광야의 24시를 떠올려 본 적이 있으신가요?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자체는 전혀 기대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이었습니다. 또한 출애굽에 함께한 이들 가운데 정말 많은 이들은 광야에서의 노숙, 야생 생활 자체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광야 끝에 무엇이 펼쳐질는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일상을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광야로, 출애굽 그 광야를 살던 이들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 출애굽 광야, 그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났다. 백성들의 살과 피가 되는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먹이셨다.

 

성경 속으로

 

광야는 흔히 심판의 장소, 통과하여야 하는 시험 코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광야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광야는 출애굽 과정에 불순종하여 고생하느라 그냥 지나간 길, 빨리 지나가야만 했던 길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진짜 원하셨던 것은 그 광야 여정을 짧게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한 몫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백성들과 모세, 하나님 모두 새로운 일상으로서 광야를 살아야 했습니다. 광야는 새로운 일상,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해야 했던 것도 심판의 의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광야를 표현하는 많은 것 중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름 기둥, 불기둥. 그것은 기둥이 아니었습니다. 기둥이 아니라고 하니 당황스러우신가요?

 

▲ 그 광야에서 떠돌이 유목민의 천막을 떠올리게 한 성막에서, 백성 한 가운데서 백성들과 만나기도 하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다는데 기둥의 모양과 형식, 크기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런 의문을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신 1:33). 이 구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더불어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시 121:6).는 시인의 고백도요. 위의 두 구절 간의 유사점은 없는 것일까요? 뜨거운 낮에는 시원한 구름 기둥으로, 추운 밤에는 따스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상치 못하도록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보다 더 시각적으로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하시고 있지요? 그들 모두는 이집트에, 태양신으로 숭배되는 파라오(바로)가 다스리는 땅에 살았습니다. 그 문화 속에도 구름 기둥, 불 기둥은 이집트의 그림 언어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와 신적 권력의 이미지 언어는 폭풍우를 수반한 날개 달린 태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바알 신화에서도 구름과 불과 번개는 바알 신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움직이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의 태양신, 그 태양신의 저주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었던 낮의 해로부터 구름 기둥으로 지키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달의 여신이 지배한다고 생각하던 메소포타미아와 출애굽의 그 광야에서 불기둥이 되어 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신적인 권능을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 광야에서 길은, 방향이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그 방향을 따라 길이 열렸다. 그리고 생명의 길로 다가갔다.

 

다시 생각하기

 

코로나19로 여러 가지 아픔과 힘겨움을 크게 작게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광야에서 또 다른 일상, 광야 이전, 광야 이후가 아닌 광야에서 광야와 함께 새로운 일상을 살아간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그 광야 가운데 함께 하시고 동행하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광야 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를 통과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광야를 걷는 그 하나님을 말입니다. 계획하지 않은, 뜻하지 않은 광야, 그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광야에서는 홍해를 건너게 하신 괴거의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약속의 땅에서 인도하실 미래의 하나님과 같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광야에서 백성 가운데, 백성과 함께, 백성에 앞서서 백성을 위해 사시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광야는, 코로나19 시대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훈련장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을 알아가는 곳,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 그것입니다. 모세의 하나님, 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의 하나님 만이 아닌, 코로나19, 우리의 일상에서 2021년, 우리의 하나님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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