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인형과 결혼한 남자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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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31 [13: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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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근 결혼에 성공한 커플이 있다. 

 

카자흐스탄의 보디빌더 유리 톨로츠코라는 남성은 2년을 열애한 끝에 ‘마고’라고 신부와 결혼했다. 이들은 원래 지난 3월에 결혼식을 올리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달 말에야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고 한다.

 

여자 친구인 ‘마고’는 깨끗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로 어딜 가나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다. 이들 부부는 지난 2년 동안 함께 여행을 다니며 식사를 하고, 춤도 추며, 거품 목욕을 하고, 여느 연인들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고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법적인 부부까지 되기에는 넘어야 할 큰 산 하나가 또 남았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남녀 모두 만 18세 이상이어야 부부가 될 수 있는 법 조항 때문이라는데, 현지 언론은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변의 만류와 나이를 초월해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감동 스토리처럼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숨은 이야기가 더 있다. 바로 신부인 ‘마고’가 사람이 아닌 리얼돌, 즉 정말 사람같이 생긴 인형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11월 방송인 사유리(41·후지타 사유리) 씨가 비혼 출산을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아이를 갖기 어려운 부부가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미혼인 사유리의 출산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자 공여시술을 통한 비혼 임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위의 두 사건은 모두 일남일녀의 정통적 결혼이 무너지는 다양한 사건 중 한 예이다.

 

이것은 그냥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네” 하고 한번 놀라고 말 일이 아니다. 전통적 가정의 해체는 결국 아담과 하와 1남1녀의 결합을 전제로 한 기독교 가치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자생적 질서인 시장경제의 해체, 즉 자유와 책임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질서의 붕괴와 함께 통제와 감시를 본질로 하고 있는 사회주의 완성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억측이 아니다. 실제로 종교를 아편에 비유한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소위 전통적 가정의 해체를 강조해 왔다.

 

도대체 사회주의와 가정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마르크스는 전통적 가정이 무너져야 사회주의가 완성된다고 끝없이 주장해 왔을까? 마르크스의 주장은 “전통적 가족은 오직 부르조아를 위해 존재하고, 부르조아적 가족은 자본이 소멸하면 사라질 것”이라는 요지다.

 

즉 1남1녀가 결합한 전통적 결혼제도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1남1녀가 결합한 전통적 결혼제도가 깨져야 자본주의도 깨진다는 것이다. 즉 1남1녀의 결합을 전제로 한 가정을 말하는 성경적 질서와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교회에 적대적이고, 왜 그렇게 집요하게 전통적 가정의 해체에 집착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주의는 결국 가정해체, 교회해체, 안티 기독교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 가정해체 이론’을 ‘다양한 가족개념 이론’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다양한 가족이 이 시대에 나와야 한다는 그럴싸한 말을 하지만 성해방과 성혁명을 통해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사람과 짐승, 이제는 사람과 인형의 결합도 사랑한다면 부부가 될 수 있고, 정당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들은 이제 소수자가 아니다. 더 이상 차별받는 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당당하게 전통적 가족 개념뿐만 아니라 성경적 가치의 파괴를 외치고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레디컬 페미니즘으로 형태를 바꾸면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이라는 이름아래 낙태와 비혼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을 시작으로 해서 하나님을 비웃는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짝지어준 1남1녀의 성경적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 마지막 때임이 분명하다. 

 

온통 세상이 코로나19와 백신이 언제 나올까에 정신이 쏠려있는 어수선한 시기다. 자신의 몸 하나 건강하게 지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요즘이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를 순 없다. 모든 가치와 기준이 흔들릴 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진정한 가치가 무엇이고,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 안에 성경적 세계관을 다시 새기고 다지는 한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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