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유토피아는 없다!
정성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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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03 [00:4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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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내가 사는 분당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새로 개발되는 신도시들도 모두 엇비슷해서, 살기 좋은 이상적인 도시가 되었다. 인간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상적인 도시, 이상적인 사회를 늘 갈구하고 있다.

 

그런데 1556년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유토피아(Utopia)란 책을 썼다. 토마스 모어는 법관으로서, 국회의장으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옥스퍼드대학에서 평생 인본주의에 매력을 느껴, 고전과 헬라어도 공부해서 신학문에 일가견을 가졌다. 그는 에라스무스와도 친교가 두터웠다. 모어는 국왕 헨리의 부도덕을 고발하므로 재상직에서 퇴출당하였고, 런던탑에 갇혀 검찰 측의 위증으로 처형을 당했다. 그는 일생 청빈과 양심으로 살았고, 가톨릭교회는 성자로 추앙하기도 했다.

 

유토피아는 사방 2백 리 마을의 섬나라이다. 유토피아는 왕국이지만 왕은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다. 어떤 이는 모어의 유토피아는 무신론적 공산주의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어는 정의와 양심을 미덕으로 아는 법률가였다. 그는 당시 영국의 귀족이나 영주들의 권력과 돈과 사치에 놀아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의와 법과 양심이 통하는 이상적 국가를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세상 아무 데도 유토피아는 없다. 나는 오래전에 유럽에 갔을 때, 그곳은 내 눈에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고색 찬란한 건물이며, 잘 정돈된 집이며, 아름다운 정원에서 거니는 사람들을 보고 ‘여기야말로 유토피아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이니 나 같은 호롱불 세대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지상 낙원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양뿐이었다. 암스테르담 구도심은 범죄와 타락의 도시였고, 외곽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는 수리남에서 건너온 흑인들의 횡포로 금방 슬럼(slum)화가 되어갔다. 지금 런던에는 이슬람이 활개 치고 있고, 남유럽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유색인종들이 밤을 점령했다. 과거 영국은 세계선교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선교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40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 정도 미국을 출입했다. 40년 전에는 교회나 지인의 초청장을 받고 변호사의 서명이 있어야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처음에 미국을 가서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는데 그 광활한 자연과 풍요로운 삶, 사통팔달로 뻗어난 프리웨이, 숲 속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집, 과연 미국은 말 그대로 지상낙원이었다.

 

그러나 미국도 이 세상에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요즘도 인종갈등이 오히려 심해지고, 중국 공산당들의 돈에 맛을 들인 정치가와 언론들은 퓨리턴들이 그토록 지켜왔던 ‘언덕 위의 도시’(City on the Hill)를 잊어버리고, 세속화되고 타락하여 불법선거의 온상이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의 최 극빈 국가에서 세계 10위권 안에 든 국력을 가진 것이 최근의 일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병’,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와 눈물과 땀을 흘린 온 국민 특히 산업전사들이 오늘의 영광을 이루었다.

 

미국에 살다가 수십 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동포들이 이구동성은 한국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시원한 고속도로, 잘 정리된 신도시의 아파트와 아름다운 공원들을 보고 그 놀라움과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3만 불 시대가 되면. 모두가 자동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정부는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우리를 끌어가고 있다. 정부는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중국 공산당식 방법으로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안 쓴 목사는 10만 원의 벌금을 내게 되었고, 코로나 시책에 맞지 않으면 교회를 폐쇄한다는 법까지 만들었다. 

 

지난 25일 밤 자정에 사랑 제일교회에 철거반 용역 7백 명과 경찰 6백여 명이 급습했다. 그것은 사실 방역지침 법의 위반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곳의 개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어째서 한밤중인 자정에서 새벽 4시까지 철거 전쟁을 벌였는지 알 길이 없다. 목자 없는 어리고 여린 성도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겁박을 하고, 교회당을 부수기 위해 모든 공권력이 동원되었다.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중국공산당이 당국의 지침이라면서 48개의 교회당에 불을 지르고, 굴착기로 십자가 탑을 부수는 것을 유튜브로 본 일이 있는데, 그저께 사랑제일교회에 일어난 일은 중국 공산당의 판박이지 싶다. 중국 우한에서 공산당의 교회파괴 때문에 코로나 19가 온 듯하다. 우리 정부는 무엇이 그리 겁나서 모든 사람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철거 작전을 폈는지 모르겠다. 아마 중국공산당처럼 교회 죽이기 본보기로 사랑제일교회를 잡은 듯하다. 

 

소득이 3만 불 시대가 되어도 유토피아는 없다. 왜냐하면, 돈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죄악이 있는 한 유토피아는 없다. 한국의 기독교회는 대단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목회자가 영적인 것보다 육적이고, 정치적이고, 세속적이 되었다. 결국, 교회 살리는 것도 강단을 회복하는 길이요, 나라 살리는 길도 교회가 교회처럼 될 때 가능하다.

 

나는 위대한 공학자이며, 기독 철학자인 헨드릭 반리센(Hendrick Van Riessen)박사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자기 주저인 <미래의 사회, Toecomst Van Maatschaapij>에서 “이 땅에 참된 유토피아가 있다면, 그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를 통과한 후에나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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