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 ㊵ 캄보디아 이교욱 선교사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국가 간의 화해와 회복이뤄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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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28 [22:4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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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후학 양성에 전념

 

▲ 이교욱 선교사는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M.Div,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대학원에서 Th. M을 받았다. 이어 태국 탐마삿대학교대학원에서 역사학과 동남아를 전공(M.A)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Ph.D를 취득했다. ACTS 파송으로 태국 선교사를 지냈으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아세아학과와 선교학과 교수, 태국선교연구소 소장, 재한태국인교회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 세계선교부 소속이며, 캄보디아 장로교신학대학교 학장으로 섬기고 있다. 사진은 이교욱 선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녹화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영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는 2018년 기준으로 인구가 1천6백4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평균수명이 65.2세로 전세계 223개국에서 182위이나 인구분포에서는 평균연령이 25.7세로 젊은층이 전체인구의 과반을 이루고 있어 고령사회보다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젊습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2017년 기준)은 642억 달러로 여전히 세계 104위의 가난한 나라에 속합니다. 이는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로 1970년대 당시 무장 공산단체 크메르 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캄보디아는 지난 4월부터 국경을 통제하고 학교와 종교기관 운영을 중지하는 등 코로나19에 적극적으로 방역대책을 해왔다. 그 결과 10월 15일 현재 확진자 283명, 사망자 0, 완치자 278명에 머문다고 한다. 

 

현지 캄보디아 장로교신학대학교(이하 캄장신)에서 교수로 사역하고 있는 이교욱 선교사에 의하면 지금은 캄보디아 국내의 대다수 학교가 대면수업을 시작했고, 종교기관도 몇몇 조건의 허락 하에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캄장신은 지난 4월 마지막 텀을 비대면 강의로 돌려서 2019-2020학년도를 마쳤습니다. 학부를 제외한 신입생 22명을 선발하고, 10월 12일에 개강을 하였습니다. 캄장신은 일 년 3텀 강의이고, 한 텀 10주 강의, 1학점 90분 강의 일정입니다. 첫 번째 텀은 절반을 대면으로 하기로 하고, 만약 상황이 호전되면 전면 대면 수업할 예정입니다.”

 

지난 2006년 대구제일교회에서 파송받아 캄보디아에 온 이교욱 선교사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시엠립에서 학사, 교회개척, 유치원 등의 사역을 했다. 1988-1996년까지 태국에서 사역을 했던 이 선교사는 1996-2006년 10년 동안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로 재직할 당시 한국에서 태국 노동자를 상태로 교회를 개척한 경험을 살려 태국 국경 근처에 있어 그 영향권에 있는 시엠립을 선교지로 택해 이곳을 교육선교의 발판으로 삼았다.

 

▲ 2007년 캄보디아 사역 초기 시엠립에서 아신대 선교학과 학생들이 와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승려들도 눈에 띤다.

 

이후 2010년 장로교 통합 교단 선교사로 재파송 받으면서, 시엠립 사역은 함께 동역하던 캄보디아 사역자에게 위임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프놈펜의 한국 장로교 연합사역인 캄보디아 장로교신학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교사의 선교지의 삶은 가족들의 병환으로 인한 아픔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태국에서 선교사 시절 6개월 조산아로 태어난 둘째 아들은 인큐베이터 사고로 실명과 정신지체에 심한 자폐를 얻게 되었고, 아내의 시력 상실로 인한 고통은 이 선교사를 항상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했다.

 

▲ 이 선교사의 둘째 아들 이기선씨가 섹소폰 연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기선이는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대신 주님의 은혜로 섹소폰을 배웠습니다. 슬럼가에 세워진 희망학교 학생들은 제 설교보다 기선이의 섹소폰 특송에 더 은혜를 받습니다. 아내는 2002년부터 한국에서 태국인과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다가 양쪽 눈에 녹내장이 발병되어 사역을 다른 사역자에게 위임하고, 2010년에 프놈펜으로 와서 현지인이 중심이 된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많이 낙후된 지역이어서 사는 것이 고달프고, 의료가 낙후되어서 아내의 녹내장 치료가 어려웠습니다. 아내의 안압이 갑자기 올라서 급히 태국에 가서 안과 수술을 하고 육로로 캄보디아에 돌아올 때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녹내장으로 시야의 상당부분을 잃어 심한 우울증과 거듭된 양쪽 눈 수술로 인생의 큰 위기 속에 있던 와중에 함께 동역하던 사역자가 결혼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임신 중 받은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걸렸고, 태아도 전염 가능성이 높아 다들 절망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제게 위로와 새 힘이 되어주셨고, 캄보디아 사역자 역시 이 과정을 꿋꿋이 견뎌내며 현재까지 사역지를 잘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 2008년 한국에서 태국과 캄보디아인들의 화해를 위한 집회를 마치고 서로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을 거행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1998년 한국에서 태국 노동자와 캄보디아 노동자를 대상으로 선교했다. 아신대 제자들과 태국에서 안식년을 맡아 한국에 온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에 여러 교회를 세워나갔으며, 1999년 추석 때는 연합전도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한국의 태국교회와 캄보디아 노동자 교회들이 연합해 추석에 최초로 캄보디아 노동자 교회 연합전도집회를 계획했고, 영락교회 제2여전도회의 후원으로 수유리 영락교회 기도원을 빌려 두 나라의 전도집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제7회를 맞이한 태국 교인들은 10여개 교회에서 250명 정도가 모였고, 최초로 연합집회를 한 캄보디아 교인들은 4개 교회에서 60명 정도 모였다. 

 

이 선교사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태국과 캄보디아 두 나라의 연합 집회를 꾀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인 시엠립에서 직접 겪어 본 두 나라 간의 오해와 적대감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면 치유와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2016년 캄장신 교수(대신 1명, 합동 3명, 고신 3명, 통합 2명, 미국 2명, 캄보디아 2명)들이 신사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캄장신은 2004년부터 현재까지 장로교 교단에서 파송한 한국 선교사들의 대표적인 연합사역현장이다.

 

“캄보디아에서 처음 2년간 ‘화해’를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태국에 일하러 갔던 캄보디아인들이 태국에서 일하며 부당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귀국할 때는 국경에서 모두 빼앗기고, 걸어서 자기 집 가는 길 곳곳에서 구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태국인은 캄보디아인들을 무시하고 킬링필드 사건을 떠올리며 두려워했습니다. 반면 캄보디아인들은 태국을 형뻘되는 선진국으로 생각했지만 킬링필드 이후 교육의 부재로 무지하고 단순하여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캄보디아에 있는 태국 대사관이 습격당하고 방화가 일어나 철수하기도 하고, 국경분쟁도 잦았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선교는 단순히 전도하고 교회 세우는 것을 넘어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국가 간의 화해와 회복까지도 이루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 자체가 삶의 로망이며 자랑이고 자부심이라고 말하는 이교욱 선교사는 1988년 이후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의 병환으로 인한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선교현장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는 누구보다 우리 각자가 반드시 있어야할 자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주님 주신 사명을 감사하며, 현지 언어와 현지인의 문화와 씨름하고, 선교라는 화두를 계속 생각 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하는 이 선교사는 오늘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맡은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일꾼들을 세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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