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나무와 나
김이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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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15 [00:1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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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슬 선교사(아프리카 말라위 북서진선교회)

마침내 말라위의 우기를 알리는 첫 비가 내렸다. 몇 달 동안 기다린 비였기 때문에 10여분의 짧은 시간이 아쉬웠지만 비 온 후의 비린내와 흙 먼지의 냄새마저도 무척 반가웠다. 이제 몇 번 더 이렇게 비가 내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되리라(참고로 말라위의 10월은 우기가 시작되기 전, 강렬한 햇볕과 건조함으로 매우 무더운 시기이고 정전이 심하게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나면, 우리는 오랫동안 비를 기다렸던 터라 너무나 반갑고 좋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 사람뿐만이 아니라 식물들도 이 비를 반기고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식물의 감정을 느낄까 싶지만, 나뿐 아니라 다른 선교사님들도 동일하게 느끼시는 것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이렇게 비가 오고 나면 잔디와 나무들이 전과 다르게 잎을 활짝 펴고 조금이라도 이 비를 더 머금고 누리려고 하는 것 같다. 사람이 물을 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매번 첫 비가 내리고 나면 그렇게 느껴진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무리 적은 양의 비일지라도 하나님의 스케일은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다. 광활한 대지를 적시는 하나님의 스케일을 느낄 수 있다. 이러니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는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응할 수 밖에. 

 

선교지에 있으면서 나무를 보며 묵상하는 시간이 많았다. 허허벌판이었던 우리 선교센터에 각종 나무를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아기만 했던 나무가 어느새 아이보다 커지고, 너무 더디게 자라는 것 같던 나무가 어느새 나보다 커졌다. 그리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오디 나무는 심은지 1년도 채 안되어 열매를 맺고 아보카도 나무는 심은지 6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망고나무는 작년부터 하나 둘씩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꽤나 많은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무를 보면서 흙과 빛, 물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자랄 수 있는지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씨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 땅이 주는 영양분,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햇빛과 물에 있는 영양분이 나무를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섭리이다. 

 

나무를 보면 뿌리를 내릴 때가 있고, 자랄 때가 있고, 열매를 맺을 때가 있음을 느낀다. 더 자라야 하는 작은 나무가 간신히 열매를 하나 맺은 것을 보면서 그 열매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더 자라야 하는 나무가 열매를 맺느라 힘을 소진하여 더 자라지 못해 안타까웠다. 

 

작년에 남편이 작은 망고 나무들이 열매 맺은 것을 보고서는 나무가 더 자라야 한다며 잘 자라고 있는 열매를 가차없이 따버렸다. 나는 나무들이 처음 맺은 열매가 아까워서 열매가 자라도록 기다리게 했고 그래서 세 개의 망고 열매를 수확한 다른 나무가 있다. 1년이 지난 후 지금 그 나무들을 보면, 남편이 일찍이 열매를 따버린 나무는 가지도 더 풍성하고 키도 더 커서 지금은 꽤나 많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반면에 내가 열매를 따지 못하게 했던 나무는 그 나무에 비해 덜 자랐고 지금 맺은 열매도 더 적다. 

 

우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뿌리를 내릴 때는 힘껏 뿌리를 내려야 하고, 줄기를 뻗으며 자라야 할 때는 힘껏 자라야 한다.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우리는 힘껏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말라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나무들을 보며 ‘아, 지금 나는 말라위에 뿌리를 내리는 시기이구나. 충분히 뿌리를 내릴 때까지 버티며 기다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작년 즈음에는 ‘지금은 줄기가 자라는 것 같은 시기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각자가 주님 안에서 어느 정도 자랐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진리의 말씀 안에 뿌리를 잘 내렸는지, 믿음의 줄기는 튼튼한지, 열매를 맺을 만큼 충분히 자랐는지, 아직 더 자라야 하는데 무리하게 열매를 맺어 덜 자랐는지, 잘 성장한 나무로서 열매는 잘 맺고 있는지, 가지치기를 해야하는지 혹은 열매 맺느라 힘을 소진했는지 주님께 물으며 점검해보아야 한다.

 

다 자란 나무도 해걸이를 한다. 몇 년 동안 열매를 잘 맺다가도 한 두 해는 열매를 맺지 않으며 다시 힘을 비축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부터는 다시 힘을 다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 열매를 맺어도 그 열매가 비 바람을 잘 견디고 이겨내며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가 맺은 모든 열매를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매들도 비바람을 견뎌낼 힘이 필요하다. 

 

그런 나무가 되자.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온전히 붙어 진액을 받으며 나도 예수님과 똑같은 참 포도나무로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자. 모진 비 바람의 풍파를 견뎌내며 성숙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큰 나무가 되자.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도 주고 맛있는 열매도 주고 향기로운 꽃 향기도 줄 수 있는 예수님과 같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자.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씨 예수 그리스도는 강력하다. 아버지 하나님은 시시때때로 은혜의 빛과 단비로 우리를 기르신다. 나의 생각과는 다른, 나를 향한 하나님의 ‘차원이 다른’ 계획을 신뢰해보자. 그분께 나를 맡겨드릴 때 주님은 나를 주님의 스케일대로, 주님의 완벽한 계획대로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실 것이다. 열매를 맺으려고 나 스스로 무리할 필요도 없다. 내가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 잘 자라기만 한다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힐 것이다. 나를 통해, 우리를 통해 맺으실 주님의 열매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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