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아들로 태어나기
장덕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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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16 [01:4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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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영 수필가

내리 딸 넷을 낳은 후 아들이 나왔을 때, 내 아버지는 얼마나 기뻐했을 것이며 그제사 한숨 놓았을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싶다. 아버지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족보에 당신 아들을 올리지 못할까 어지간히 애를 태웠을 테고, 어머니는 장씨 집안 대를 끊은 죄책감에 부엌에서 긴긴 세월 눈물 훔치며 살았을 테다. 베이비붐 세대 끄트머리쯤에 태어난 나는 그렇게 아들로 세상에 나와 지금껏 성 정체성 혼돈 없이 다행히 일관되게, 왕자가 아니어도 무사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레위 마태가 왕으로 오신 예수를 입증하기 위해 로얄 훼밀리 족보를 서두에 가져다 쓴 것처럼, 마가 요한도 그리스도 예수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극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집약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서두에 내건다. 당시 사회 역사적 배경에서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아닌, 순 황실용 언어다. 로마제국의 황제 가이사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따라서 그가 공포하는 선언이어야 복음이란 εὐαγγέλιον evangelion 어휘도 쓸 수 있다. 폭정을 일삼으며 하나님 아들이라 자칭하는 황제에게, 그의 선포를 복음이라 착각하는 로마사회에,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 삶을 이어가는 암울한 시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마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진정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알리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과감히 책머리 첫 줄에 올려놓는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께서 세례받을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막 1:11) 기록하여 친생자존재관계를 분명히 한다.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가는 길에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엿새 후, 예수께서 세 제자만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9:7) 변화산 선언이 들려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태로 아들 예수를 변화시키어 왕위를 이을 아들의 훗날을 위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셋 앞으로 엄명하신 하나님의 통치선언이다. 

   더러운 귀신조차도 어느 때이든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고백한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3:11) 할 정도다.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을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 (5:7) 큰 소리로 부르짖는 여단급 규모의 귀신들 Legion도 그리스도의 한 마디 말씀에 돼지 떼 몸 속으로 들어가 바다로 치닫는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목이 뻣뻣한 유대 정치인들은 어떤가. 공회의 대제사장이 예수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14:61) 질문은 그가 몰라서 물음이 아니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들린다. 장차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앞에 모시고 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빌라도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15:2)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가장 저급한 그 심문과 급이 같다. 참새가 어찌 봉황을 알겠는가. 결정적 마지막 한 방은 백부장의 선언에서 쏟아져 나오는 반전의 미학이다. 마가복음의 문학적 구조에 있어 두드러진 점은 앞뒤를 포괄하는 수미쌍관의 기술에 있다. 첫머리에 나온 ‘하나님의 아들’이 끄트머리 15장에 가서 예수 사형을 집행하는 로마 백부장의 입을 통해 the Son Of God 곧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는 (15:39) 고백으로 이어진다. 비록 수하에 100명 거느리는 초급장교이나 황제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자다. 그의 고백은 로마제국을 지키는 장교의 발언이고 그에게 명령권을 위임한 황제와의 연대성을 따지면 황제의 고백으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수난의 파도가 물러가고 고통의 구름이 흘러간 후 성소 휘장이 찢어질 때, 예수를 향해 섰던 사형 집행관의 입에서 터져나온 그의 고백은 진실로 참하다. 그의 고백은 참으로 강력하며, 그의 고백은 강력한 선언이요, 그의 선언은 진실로 아름답다. 

 

가이사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에게서 나오는 말이 복음이라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어수선한 때에, 청년 마가는 깨어 일어나 기필코 한 권 책,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을 쓰고야 만다. 

 

PS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란 인물이 있다. 주전 45년 스페인 원정 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군대에 합류하면서 눈에 띄어 발탁, 다음 해부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부른다. 주전 31년 악티움 해전을 승리로 2차 삼두정치를 마무리하며 100년에 걸친 내란을 종식시킨다. 실질적 1인자 위치에 오른 그는 로마의 첫째 시민으로 princeps civitatis 자처하고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원로원으로부터 선물 받으며 고대 로마의 최고 사제 Pontifex Maximus 자리에 오른 후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즈음엔 국부라는 Pater Patriae 호칭까지 온갖 몸에 좋다는 타이틀은 죄다 거머쥔다. 그 압권은 역시 ‘신의 아들’이겠다. 

아우구스투스 집권 초반 혜성 하나가 밤하늘을 수놓으며 사라진다. 아우구스투스는 양아버지 카이사르가 ‘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의 동방박사들이면 그런 무식한 발언은 처음이라 했겠다. 어쨌든 카이사르를 신으로 승격시키고 자기도 그참에 ‘신의 아들’이 되고 싶었을 테다. 신의 아들이면 나중에 신이 되겠다는 소리 아닌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 그 절정판이다.  ( 황제까지 했으면 됐지...아들로 태어난 게 한편으론 뭔 자랑인가도 싶다 )

 

마가복음은 제국의 황제에게서 절대 권력의 아이콘 ‘신의 아들’이란 타이틀을 박탈하는, 목숨 건 대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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