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문화로 성경 읽기(44) - 안식일, 그저 나만 쉬라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피라미드 구조의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실천의 날이었습니다.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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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23 [07:5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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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피라미는, 고대 이집트 권력자 파라오의 무덤 건축 양식의 하나이다. 파라오의 영생불멸의 기원을 담은 것이었다.    @ 김동문 선교사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듣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과 인종, 성별, 민족 등에 대해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볼 때도 이런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작용하곤 합니다.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일종의 그릇된 확신에 지배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오늘 내가 마주하는 성경을,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설게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십계명이 아주 익숙합니다. 그 가운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뻔한 이야기를 할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읽는다는 마음으로, 조금은 느리게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 속으로

 

안식일 계명을 비롯한 십계명이 주어진 시기는, 출애굽 한 지 1년이 채 안 된 때, 그리고 장소는 시내 광야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이집트에 살던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이 계명의 존재감이 제대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집트의 시간 계산법과 안식의 특권도 봐야 합니다.

 

‘역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 계산법이지요. 이 시간 계산법은 문명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었습니다. 성경으로 들어가 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날짜 계산법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날짜 계산법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밤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는 식으로 하루의 시작을 해가 지는 시각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주의 시작을 첫날로 시작하여 일곱째 날 안식일로 끝을 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하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날짜 계산법에 따른 것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60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0-59까지의 숫자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1분 60초, 1시간 60분 같은 계산법이 그것입니다.

 

▲ 출애굽 광야는 나일강변의 비옥한 이집트 땅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곳은 죽음의 땅으로 간주되었다. 그곳에서 율법이 주어졌다.     © 김동문 선교사

 

한 편 고대 이집트의 시간 계산법은 아예 달랐습니다. 10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주 7일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한 주는 10일이었습니다. 한 달은 30일, 이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지금 저희가 사용하는 시간 계산법과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계절은 4달, 일 년은 12달로 구성하였습니다. 하루는 낮과 밤으로 구분하고 낮과 밤 모두 12시간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일 년이 12달인 것처럼, 그렇게 적용한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은 동트는 시각이었습니다. 해가 뜨는 시각과 먼동 시각 사이에는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대략 한두 시간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새로운 시간 계산법과 안식일 가치가 제시됩니다. 한 주를 7일로 하는 계산법,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로 하는 새로운 시간 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하루의 시작 시점을 하루해가 저무는 시각으로 주어졌습니다. 이 새로운 시간 법은 단순히 시차 부적응의 어려움보다 더 큰 것입니다. 해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사는 이들이, 서머타임( Daylight saving time), 이른바 한 시간 앞뒤로 조정하는 일광절약 시간제에 적응할 때도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 이집트를 떠난다는 것은 이집트의 모든 것, 세계관과 종교, 피라미드 구조의 계급 구조 등 모든 것과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었다.     © 김동문 선교사

 

게다가 새로운 제도를 줬습니다. 바로 안식일입니다. 우리는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를 떠올립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 양식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사회 구조도 피라미드 구조였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계층과 계급이 엄격하게 존재하던 체제였습니다. 인도 지역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조선 시대까지 존재하던 반상제도 그 이상의 체계화된 신분 구조였습니다. 여기서 ‘쉼’은 피라미드 구조의 상위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층 계급에 속한 이들에게 쉼, 안식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은, 안식일만큼은 계층, 계급, 성별, 본토인과 나그네의 차이와 차별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더 힘들었을 까요? 낮은 계급, 계층의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상류층의 경우였을까요?

 

이집트 땅에서 나와 광야에 머물던 모든 이들에게 이런 변화, 시간 계산법의 변화와 안식일 준수 규정은 그야말로 낯설고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단지 외형적인 어떤 변화(change)가 아니라 유전자(DNA)까지 완전히 바꾸는 변화(transformation)였던 것입니다. 철저하게 이집트다운 것을 벗어버리는 세계관의 변화, 궁극의 혼란을 겪는 수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들 모두를, 이집트 신들에 의한 창조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세계로 초대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 명령이 아니라 초대하고 요청합니다. 안식일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의 근거와 이유, 제도를 다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쉼을 위해 다른 이의 쉼을 빼앗는 것을 완전히 제거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 고대 이집트의 역법은 주 10일, 한 달 3주, 일 년 3계절, 먼동틀 때부터 하루가 시작하는 등 모든 것에서 달랐다.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우리의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그 정신을 지켜서 안식일을 살려내야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바울의 가르침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의 차별을 넘어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양한 차별이 정당화되고 제도화되고 관습과 일상이 된 세계를 살아갑니다. 어떤 점에서 또 다른 애굽에 사는 것입니다. 배제와 혐오가 번져가는 현실에서 안식일을 다시 기억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금 이스라엘 공동체가 머물던 그 광야 달려가야 합니다. 안식일의 생동감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정중한 초대이고 간절한 요청입니다.

 

▲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지 노동의 쉼이 아니라, 이집트다운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을 실천하는, 차별과 배제를 제거하는 날이었다.     ©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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