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문화로 성경읽기(41)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몫을 다하는 목자의 삶을 떠올린다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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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30 [01: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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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한 산을 마주한 광야에서 꼴을 뜯는 양떼. 때때로 넓은 구름기둥(구름 그늘)과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듣고 본 것에 영향을 생각보다 많이 받습니다. 직접 경험한 것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 주입 또는 주어진 어떤 정보에 더 많이 반응합니다. 그것을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특정한 단어, 사람, 지역, 사건 등을 떠올리면 이미 우리는 쉽게 단정하거나 규정짓곤 합니다. 그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 때문에 사람이나 사건 심지어 성경을 읽고 배울 때도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경우는 오해하도록 작용합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디를 가거나 어떤 일을 마주하거나 성경을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 대하듯이 어떤 전제나 선입견을 제거할 수는 없을까요?

 

오늘도 성경 속으로 같이 가봅니다. 우리가 익숙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시 23편의 세계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가진 편견을 제거하는 수고를 하여야 합니다. 이제 출발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이스라엘에 어떤 특정한 장소 이름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라고 쉽게 감을 잡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속으로

 

▲ 6개월도 안된 어린 양떼가 에돔 광야에서 꼴을 뜯고 있다. 때때로 바위 언덕 위로 급류가 쏟아져 내려오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구절입니다. 이렇습니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 이 시에서 말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어떤 곳일까요? 목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불리는 어떤 골짜기로 양떼를 이끌고가는 것일까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위급한 상황이 펼쳐진 들판입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성경이 표현하고 있는 골짜기, 성경의 무대에 살고 있는 이들이 떠올리는 골짜기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좁고 깊은 골짜기 형태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의미는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아주 드넓은 아라바 골짜기도 있고, 아주 길고 긴 요르단 골짜기도 있습니다. 또한 이스르엘 평야로도 부르는 이스르엘 골짜가, 레바논 남북을 쭉 이어주는 베까 골짜기도 있습니다. 광야는 우리의 기대감과는 달리 산도 나무도 들판도 골짜기도 불모지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광야에도 저마다의 특징이 있고, 삶이 있고, 이름이 있다. 성경에서 광야로 나온다고 다 똑같은 광야가 아닙니다. 이 광야에도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공간인 골짜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골짜기를 떠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광야에 머문다는 것, 광야 길을 간다는 것은 변화무쌍한 기후, 광야의 호흡하여야 합니다. 광야는 예기치 않은 국지성 호우가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대개 겨울 우기철의 일입니다. 강한 강풍이 휘몰아칠 때도 있습니다. 여름 건기에도 종종 마주하는 환경입니다. 이런 날씨에는 양과 염소를 몰아 들판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불가능했던 그 옛날, 심지어는 오늘날도, 광야에서 맞이하는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는, 지역에 따라 발생됩니다. 이때는 그야말로 위기 상황입니다. 

 

▲ 골짜기 나무 그늘 주변에서 꼴을 뜯는 염소떼. 이런 골짜기도 국지성 호우로 인해 급류가 흘러넘치기도 한다.

 

중근동, 특별히 이 시편의 무대가 되는 광야는 해마다 봄철이면, 50여일 안팎의 강한 검은 모래 바람을 맞이하곤 합니다. 흙먼지가 심한 날이면 강풍을 동반하고, 시야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날, 양무리를 이끌고 들판에 머물고 있다면,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계절에는 유난히 목자들이 날씨 예측에 마음을 쏟게 된다. 사망이 엄습한 음침한 골짜가는, 순식간에 비, 구름에 덮힌 골짜기입니다. 검은 먹구름과 강풍에 폭우가 쏟아지는, 비를 피할 곳 하나 없는 들녘, 골짜기를 연상해보면 아찔해집니다. 

 

강풍으로부터, 폭우로부터 피할 바위틈도 없을 때, 임시 피난처로 가장 좋은 동굴조차 없을 때면, 목자나 양떼에게 위기상황입니다. 게다가 비탈길을 가는 상황이면 더더욱 난감해 집니다. 예상치 못한 급류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양떼는 물론 사람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국지성 호우로 인해 형성된 급류에 휩쓸려 어려움을 겪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광야에는 그늘이 지면 대낮에도 추위를 맛봅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면 그때의 추위는 아쌀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광야를 노래한 많은 시 안에 낮의 해와 밤의 달, 더위와 추위가 등장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이렇게 다가오는 예기치 못한 환경입니다.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떼와 더불어 길을 가는 과정에 지나갈 수 도 있는 길이 아니라 맞이할 수도 있는 환경인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양떼가 지나게 된 것은 목자의 탓이 아닌 것입니다. 목자도 동일하게 위기를 맞닥뜨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몰아닥치는 폭풍우를 맞이할 때, 평지보다 비탈에 있을 때는 아주 위험스럽습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면서 급류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비오는 날의 비탈길은 음침하게 다가오며, 죽음의 위협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비와 바람 속에서 양떼를 안전하게 옮기는 목자의 움직임을 떠올려봅니다. 목자가 그 몫을 다하고 비가 그친 다음에 느꼈을 그 느낌은 어떠하였을까요? 

 

다시 생각하기

 

▲ 해질 무렵, 들판에서 꼴을 뜯는 양떼. 때때로 검은 모래 바람과 폭우가 들판을 온통 뒤덮기도 한다.

 

목자이신 하나님의 양으로서, 시인은, 자신을 향한 위협이나 곤경 자체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자 하나님의 음성과 인도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듯합니다. 문제 해결은 목자 하나님의 몫이고, 자신은 목자만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목자로서, 양떼를 그렇게 돌보았듯이 말입니다.

 

들판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마주하는 것은 목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목자도 같이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특정한 날, 특정한 공간에서의 이런 위급한 상황은 사실, 목자도 양과 염소도 처음 맞이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목자는 자기의 몫을 다하고자 애를 씁니다.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오늘은 처음이야” 하면서도 목자는 목자의 몫을 다합니다. 목자는 어쩌면 이 같은 위기상황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양떼를 향한 이 환경의 위협을 가장 먼저 눈치채고 빠르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목자의 몫입니다. 탓하는 것이 아니라 몫을 다하는 것이 목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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