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코로나, 살 때와 죽을 때
나은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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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04 [13:5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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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은혜 목사(지은나교회)

며칠 전 일이다. 남편 K선교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내가 말했다. “여보, 혹시 모르는 일이라 미리 말하는 건데 내가 당신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을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유서를 남겨야겠어요. 엄마가 먼저 죽으면 아빠를 잘 돌봐 드리라고...”

 

남편은 너무 뜻밖의 내 말에 멍하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애써 그 분위기를 바꾸려고 “아니, 뭐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물론 그 반대 일수도 있지 당신이 먼저 죽고 내가 남을 수도 있는 거지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어 주었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은 웃지 않았다. 아마 내 말에 심각해져서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다. 왜냐하면 내가 한 번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정색을 하고 죽음 이야기를 꺼냈으니 위기 중심적 성향의 남편에겐 상당한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보통 여자가 더 오래 산다고 한다. 한국 남성의 수명은 평균 79세 여자의 평균수명은 84세로 나와 있다. 통계로 나와서 그렇겠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보통 8-10년 정도는 더 산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 된 사람은 적어도 아내가 혼자 10년 정도 살아갈 생활비를 준비해 놓고 죽어야 한다고 모전문가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참 가장의 책임이 무섭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혼자 남은 배우자의 생활비까지 준비해 주고 가야 하니 말이다. 그러면 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살까?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대학은 다음과 같은 원인을 연구 발견해 냈다. 즉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염색체에 의해 남성이 여성보다 17.6% 짧은 수명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 것이다. 

 

아무튼 이것이 통계학적인 분석이던 연구 결과이던 팩트라고 할 때 우리는 이런 경우를 충분히 예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런 일이 우리의 삶 앞에 현실로 다가오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빨리 죽는 예외는 물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여자가 병사나 사고사를 당하게 될 경우이다. 그러므로 위의 지론은 자연사일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 내 주변의 사망자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고 그리고 불치의 병에 걸려 남편과 아이들을 남겨 두고 병사한 경우가 많았다. 

 

중국의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나라만 해도 14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이란, 프랑스, 미국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희생이 많은 이탈리아는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고 있다. 뉴스에 보니 이탈리아 성당 안에는 화장할 관들이 즐비하게 놓여서 화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진이 있었다. 또 이탈리아 신문의 3-4면이 부고로 가득 찬다고 한다. 

 

이러한 지구촌 삶의 환경 때문에 나도 모르게 죽음이 정말 가깝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생전 꺼내지 않았던 죽음에 관한 숙연한 주제로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상황은 종종 있었다. 선교지에서 살 때의 일이다. 당시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감기몸살이 한 달을 넘어 두 달 가까이 지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인데도 나는 그때 계속 시름시름 아프니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사스가 창궐하였을 때이다. 그때 나는 중국의 N시에 살고 있었다. 당시 사스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N시의 거리엔 앰뷸런스가 쉬지 않고 앵앵 거리며 달렸다. 엘리베이터에서든 길에서든 사람들은 모두 하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한국유학생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때문에 선교사들도 대부분 고국으로 귀국했다. 

 

우리 가족은 남편 K선교사는 그때 마침 꼭 나갈 일이 있어 한국에 나갔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이들은 학업 때문에 다 한국에 있어서 큰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혼자 남기로 했다. 혼자 남아 있다가 사스에 걸려서 선교지에서 죽는다면 그것도 순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계속 전화를 해서 한국으로 나오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요지부동 하면서 한국으로 안 나간다는 나를 설득하지 못하자 남편은 별 수 없이 하나님께 매달렸다. 남편 K선교사가 삼일을 금식하고 나서 나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강하게 선교지를 지킨다고 주장하며 버티던 내 마음이 스르르 바뀐 것이다. 나 때문에 삼일을 금식했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뭔데 이렇게 남편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거지. 나는 참 못된 아내구나...”

 

그런 깨달음이 오자 나는 당장 비행기 표를 구입해서 한국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때도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온 국민들은 우선 격리 하라고 했었다. 우리 가족이 고국에 갈 때 마다 머물렀던 명일동의 G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어디 가서 보름을 보내고 아무 이상 없으면 들어오라고 했다. 

 

다행히 문정동에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연결이 되어서 우리 가족은 다 함께 다섯 식구가 3개월인가 그곳에서 보냈던 기억이 있다. 포항 한동대에서 공부하고 있던 자녀들도 방학을 하면 갈 때가 없으니 아빠 엄마가 있는 게스트 룸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는 선교지에서 겪었던 사스바이러스 대란, 지금은 코로나19 대란이다. 그러나 당시는 젊었고 용감했다. 더욱이 선교지에서 죽는다면 순교라고 생각하며 명분조차 당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월은 말없이 흘렀고 나도 손주 손녀를 볼만큼 나이가 들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생소하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었다. 물론 나는 현재 90세의 시어머님을 곁에 모시고 사니까 어머니 앞에서 죽음을 논한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내 감정은 그렇게 움직였다. 대화를 나누고 우리 부부는 저녁 기도회를 함께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벌써 쿨쿨 잠에 떨어졌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문득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전에 못 보던 그리고 평상시 내가 별 관심 없었던 패션에 관련한 동영상이 떠 있었다. 

 

30여분 정도 길이의 그 동영상을 누워서 잠시 들여다보다가 나는 그만 벌떡 일어났다. 거실로 나와서 그 동영상에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 동영상은 한 시니어 패션모델을 주인공으로 다큐식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77세인데 70이 넘은 나이에 시니어 패션모델로 도전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에... 77세의 패션모델이라니... 그녀는 어릴 때 부터의 꿈이던 패션모델이 되기 위해서 간병인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도 패션모델을 키워내는 학원을 3년을 다닌 끝에 드디어 모델로 데뷔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170센티의 키에 날씬한 체격이라는 타고난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옷을 좋아하고 옷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늘 양장점에서 맞춤옷을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서 입는 옷에 관련한 한 아주 열정이 있던 사람이었다. 

 

하이얀 백발을 짧게 커트하고 예쁜 핀을 나란히 서너 개나 꽂은 세련된 스타일로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멋진 옷들을 잘 소화해 내고 있었고 시니어 모델들 가운데서도 최고령이었지만 다른 모델들과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패션 다자이너들은 말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평소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의 동영상을 내가 왜 그날 밤에 보게 되었을까? 시간은 벌써 잠잘 시간을 훌쩍 넘겨 새벽 한시를 지나고 있었다. 잠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며 나는 이 영상을 내게 보도록 한 분이 누구인지를 곧 깨달았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 이셨다. 

 

나보다 12살이 많으면서도 시니어 패션모델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내게 메시지를 주셨던 것이다. “너 두고 보자니 정말 엄살이 심하구나. 내 계획이 아닌데 넌 왜 멋대로 네 삶을 예단하고 있니 못난 것...”

 

그 시니어 패션모델에 관한 동영상은 분명 내가 생각해낸 것도 내가 찾아낸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찾아내 보여 주신 것이다. 내 의기소침해진 다운된 감정을 일깨우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이다.

 

“아... 주님은 바로 내 옆에 계셨구나 내생각과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그 동영상을 골라서 나에게 보게 하신 것이구나.”그렇다면 내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아무튼 그날밤 난 단잠을 잤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시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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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20/04/04 [17:48] 수정 삭제
  UN에서 새로 발표한 연령구분에는 만 18~65세까지는 청년(Youth)로 분류한다네요. 아직 청년이십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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