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문화로 성경읽기(38) - 등불 밝히기와 가죽 부대
“우리는 빛이 아니고 빛을 밝히는 존재일뿐”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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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4 [01:3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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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둔 밤을 비추는 빛은 등잔불이었다. 그러나 모든 가정이 등불을 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기가 없던 시절 우리도 그랬던 것처럼.

 

성경을 읽으면서, 특정 단어나 표현을 깊이 곱씹는 식의 묵상은 때때로 아쉽습니다. 일상을 묘사하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상황 묘사가 그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카페를 가고, 식당을 이용하고, TV를 보고,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상을 어떤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마냥 해석하려 한다면, 지나친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떤 거창한 뜻이나, 심오한 개념이 담긴 것으로 풀이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 풍경으로 보면 어떨까 싶은 성경 이야기 한 두 꼭지를 다뤄봅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사야의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표현과 낡은 가죽 부대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구약성경 이사야 60:1)

 

▲ 에돔 산지에 떠오르는 햇살이 사해를 비추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빛은 대개 어둠 가운데 빛나는 등불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명령을 주셨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우리가 빛을 발하려면, 빛으로 살아가려면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라는 주님의 명령...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가 자리를 들고 일어난 것 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빛은 어떤 빛이었을까요? 어둔 밤을 밝혀주던 등불도 이 빛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경에서 빛을 발한다는 뜻이 등불을 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본문과 조금 시차가 있지만, 예수님의 세상의 빛 설교에도 등(잔)불을 켜는 것으로 나옵니다. 잠시 이사야 선지자가 살던 2700년 전후한 시기의 등잔, 등잔불, 등불 켜기에 눈길을 돌려 봅니다. 등잔도 등불 켜는 것도 시대에 따라, 지역과 계층, 계급에 따라 달랐습니다. 마치 한국 사회에서도 불을 켜는 수단이나 도구, 방법이 달라졌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경우를 떠올려 봅니다.

 

등불을 켜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물론 등잔, 기름, 심지, 불씨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불씨가 큰 문제였습니다. 그 오랜 옛날에는 어떻게 불을 피우고 불씨를 이용하여 등불을 밝힐 수 있었을까요? 집안에 화로라도 있는 힘 있는 집안이라면 그 불씨를 이용하였겠지만요. 이제 불씨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불씨를 갖고 등잔불을 켜보겠습니다. 어떤 연속 동작이 떠오르나요? 먼저 등잔은 바닥에 놓여있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등경 위에 놓인 등잔에 등불을 켜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서’ 등잔에 다가서서, 불씨로 심지에 불을 붙이면 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일어나서 등불을 켜는 장면은 자연스러운, 시각적인 묘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어나다’는 단어를 너무 깊이 묵상할 것만이 아닙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 가죽부대도 귀한 것이었다. 물을 담기도 하고, 치즈를만드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고, 포도주 등을 담는 부대로도 사용했다.

 

기독교인은 물론 일반인조차, 낡은 가죽 부대, 새 포도주 같은 어휘가 낯설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우리가 새 가죽 부대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적절한 것일까요? 낡은 가죽 부대가 문제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포도주는 맑은 포도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송이를 포도즙 틀이라 부르던 돌로 판 공간에서 포도송이를 남자들이 밟아서 짜내던 것이 새 포도주 또는 신 포도주였습니다. 여전히 껍질도 많고, 아주 조금의 국물이 뒤섞인 포도주가 상상되시나요?

 

새 포도주는 발효가 안 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효가 되면, 팽창되고, 그런 이유로 낡은 가죽 부대가 그 팽창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 버리는 장면이 떠오르시는지요? 마치 고추장 된장 간장을 담근 항아리를 제대로 열고, 닫지 못하면, 독이 깨쳐 장 담근 것이 다 흘러나오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지요? 낡은 가죽 부대에 담긴 묵은 포도주를 떠올려 봅니다. 숙성된 포도주, 익은 포도주, 발효된 포도주는 새 포도주, 떫기가 그지없는 신 포도주에 비교되지 않은 귀한 것이었습니다. 이 귀한 포도주가 담긴 것은 낡은 가죽 부대입니다.

 

예수님의 포도주 가죽 부대에 비유는, 포도 한 알 한 송이, 건포도 한 알 한 줌조차 먹기 어려웠던 그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새 가죽 부대에 담긴 이미 묵은 포도주, 낡은 가죽 부대에 담긴 묵은 포도주 말입니다. 낡은 가죽 부대가 문제가 될까요? 아닙니다. 낡은 가죽 부대를 문제시하는 어떤 시선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새 가죽 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를 새롭게만 보는 시선은 아쉽다. 이 이야기는 새 포도주를 더 나은 것이라고, 낡은 가죽 부대가 더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하기

 

▲ 유목 생활의 산물로, 가죽을 만들어 중요한 것을 담는부대(용기)로 사용했다.

 

우리가 때로는 낡은 가죽 부대일 수 있고, 새 가죽 부대일 수도 있습니다. 가죽 부대의 형편과 포도주의 상태가 잘 어우러지면, 터질 일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둔 밤을 밝힐 등과 심지, 기름이 있고, 불씨가 주어졌다면, 불을 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빛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을 밝히는 존재로서의 빛이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내 존재 자체가 빛인 양, 빛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훨씬 일상적이고, 친근하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시대에 바리새인 서기관이 고상하고 어렵게 성경을 풀어내던 것과 달리 예수님의 메시지는 구체적으로 일상적이고, 많이 배우지 못한 이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 속 현장감을 떠 올리거나, 그 실물이나 실제 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조금 더 부지런하고 지혜로우면 좋겠습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 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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