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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33) - 베개, 수건 그리고 대야
베게 베고 잠잘수 있는 계층은 평민 아니야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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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30 [01:0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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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이집트 파라오가 사용하던 베개. 백성의 일상생활에서는 베개의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성경 속 이야기를 마주치면서, 습관적으로 그 시대의 일상 생활에 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 속 인물이 살던 그 시대의 삶의 자리나 일상 생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매이는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고,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무엇을 입고 덮고 살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잠을 잤는지 등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 속 인물의 삶을 평범한 서민의 삶으로 오해하는 경우 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솔로몬,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할 것 없이 성경 인물 다수는 평민이 아닌 귀족이나 왕족, 왕같은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일상 생활을 바탕으로, 그 당시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 시대를 읽게되면 아주 섬세한 성경읽기가 가능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성경 속으로

 

터지기 직전의 포도주통

 

▲ 고대 이집트는 물론 예수 시대 로마문명권에서도 발로 포도송이를 으깨서 포도주를 만들었다.

 

그 옛날 성경‘욥’에서, 격앙된 분노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하다니 대단합니다. 무엇일까요?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욥기 32:19)”하는 표현 말입니다. 이 말은, 욥과 그를 위로하겠다며 찾아 온 욥의 세 친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 곁에서 지켜보며 듣던 정체불명의 엘리후가 내뱉은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시적입니다. 아주 대단히 섬세하고 시각적인 표현입니다.

 

중동 지역은, 기원전은 물론이고 기원후 에도,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서도, 그리고 중세 유럽 문명권 에서도, 포도송이를 발로 밟아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기준이라면 포도즙보다 알맹이와 포도 건더기가 더 많은 상태의 포도즙을 포도주로 불렀습니다. 이것을 새포도주 또는 떫은맛이 나기에 신포도주라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이 포도즙을 포도주통(흙으로 만든 용기)이나 포도주 가죽부대에 담아서 숙성시켰습니다. 숙성시킬 때에는, 가죽부대나 포도주통이나 열어두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발효되면서 포도즙에서 포도주로 변하면서, 팽창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대로 발효가 되기전에 가죽부대나 포도주통을 막아 두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가죽부대는 터지고 포도주통은 깨졌습니다(한국에서도 종종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집에서, 한여름철에 급팽창한 장으로 인해 장항아리가 깨지는 경우가 빚어졌던 것을 연상해보면 좋겠습니다).

 

성경 욥기 속 엘리후는 ‘내속이 터진다’ 는 말을 이처럼 오감 가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 맛갈진 표현아닌가요?

 

돌베개, 이불, 담요, 수건 그리고 대야

 

오늘은,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돌베개, 이불, 담요, 수건, 대야 등 일상 용품을 바탕으로, 성경을 읽어봅니다.

 

(돌)베개, 이불과 담요, 고대 중근동에서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잠을 자는 이들은 평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배개나 이불, 담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어떻게 달랐을까요?

 

▲ 수건. 고대 이스라엘의 남성용 머리 덮개는 수건으로도 사용하였다. 

베개 : 고대 이집트의 베개는 나무, 돌, 설화석고(알라바스터), 나중에는 유리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 베개는 목침에 가까운 것이었다. 물론 다수의 백성은 이것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돌로 만든 베개는, 일상 생활에서가 아니라, 왕이나 귀족 무덤에 부장품으로 넣어두었습니다. 그것은 돌베개는 ‘꿈’을 뜻하기도 했고, ‘잠을 푹잠’, ‘영원한 안식을 누림’을 뜻하는 관용어 이기도 했습니다.

 

문득 도망자 야곱이 떠오릅니다. 그는 벧엘이라는 곳에서, 석회암 산지에서, 도망자 처지로, 밤의 위협, 밤의 추위, 맹수의 위협, 추적자 라반의 위협 등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또 야곱은 ‘꿈’을 꿉니다. 돌베개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야곱이 그 와중에서 평안을 누렸다는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불 : 서민들은 겉옷을 이불로 사용하였습니다. 일교차가 큰 계절이나 이슬과 밤 바람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는 이들은, 힘든 밤을 지내야 했습니다. 오늘날 침대보 같은 분위기의 이불은 있는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베로 만든 홑이불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수를 놓은 베로 만든 홑이불은 부귀권세의 상징이었습니다. 수놓은 담요를 깔거나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침대를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 권력자만의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에 베로 만든 홑이불을 두르고 등장하는 그 청년은, 있는 집안 사람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룻기에 룻이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덮었다는 표현은, 보아스의 겉옷을 뜻하는 것입니다.

 

수건과 대야 :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요한 13:4, 5)” 이 본문에 나오는 ‘수건’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대야’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수건 : 수건은 별도의 수건일 수도 있지만, 당시 유대인 남자가 머리에 쓰는 머리 덮개를 뜻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이 머리 덮개는 보자기로도, 허리띠로도, 수건으로도, 햇볕가리개로도, 추울 때는 이불로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모세가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고 할 때도 이 머리 덮개를 뜻하는 것입니다.

 

대야 : 대야는 적지 않은 이들이 떠올릴 ‘세숫대야’ 같은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석회암 돌을 깍아서 만들거나 진흙을 빚어내어 초벌로 구운 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휴대가 간편하다거나 들고 다니면서 사용할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서민 가정이 이런 공산품을 갖추고 지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발씻는 물그릇에 발을 씻는 경우는 일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발씻는 물그릇은, 유대인의 명절 정결의식에 깊이 연결된 용품입니다.

 

다시 생각하기

 

오늘은 성경 속 감각적인 표현과 일상 용품에 얽힌 이야기를 짚어 보았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때 그자리로 시간여행과 공간 이동을 해보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생각보다 생생한 현장, 섬세한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 공간에서 섬세하게 주어졌고 선포된 것임을 더 맛보는 성경읽기 이기를 바랍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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