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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의 핵심가치는 자유의 원리
교회는 정치에 침묵해야 하나? [Ⅰ]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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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03 [09:4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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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정치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때가 있었을까? 모임을 가도, 식당에 가도, 평범한 가정의 식탁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북한 등과 관련해 일련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정치 이야기가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들린다. 그러나 유독 정치 이야기를 꺼리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교회가 아닐까. 교회를 제외한 다른 장소에서는 너나없이 정치 이슈를 화제로 올리지만 교회에서 만큼은 정치에 무관심한척 애써 조심하는 것은 왜일까. 이번호와 다음호 두 차례에 걸쳐 ‘교회는 정치에 침묵해야 하나?’란 제목으로 이를 다루려 한다. <편집자주>

 

 

흔히 “교회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된다” “교회는 하나님만 예배하는 곳이지 세상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에서 정치적 이야기를 하면 서로 얼굴 붉히게 되니 될 수 있는대로 하지 않는게 좋다” 등 교회 내에서의 정치적 발언을 금기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딘지 설득력이 부족한 구실 찾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교회에서 세상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므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분명히 있다. 성도들의 종교적 성향에 대한 마찰을 피하므로 논쟁의 소지를 처음부터 없애고 될 수 있는한 교회에 더 집중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가에서 무슨 정책을 펴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고 넋을 놓고 있다가는 정작 기독교에 반하는 정책이나 악법이 시행될 경우 그 피해는 분명히 교회가 고스란히 받게 된다. 그 때는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들의 말처럼 “교회는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목사가 왜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고 비판하지만, 예언자적 사명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종교인들은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이루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은 어디까지 정치에 참여해야 하며,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 것일까? 이 명제를 들춰보기 이전에 이번 달에는 ‘정교분리’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야 과연 교회나 목사나 혹은 성도들이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설 것이다.

 

미국의 정교분리 출발은 미국헌법 제정시 ‘국교’ 부인

 

‘정교분리’는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당시 다음과 같은 3가지 중요한 원칙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세상정부는 교회를 탄압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 ▲세상정부는 교회에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교회의 수장이 될 수 없다. 

 

엘정책연구원(Eternal Liberty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대표 이정훈 교수는 ‘정교분리’의 출발은 미국 헌법이 만들어질 때 ‘국교’를 부인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청교도 회중교회만이 진짜 교회야, 다른 거 하지마~” 식의 청교도 교회 외의 다른 종파, 즉 침례교도라든지 감리교도 등을 박해나 차별하지 말라는 원리, 다시 말해 ‘자유의 원리’라는 핵심가치가 ‘정교분리’의 근본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장로교 교인이 되던 침례교에 출석하든 국가권력뿐 아니라 어느 누구의 강요가 아닌, 개인의 자유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종파나 종교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교분리의 핵심은 국가권력이 교회를 위한답시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법으로 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교단만 국교로 정해 하나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다 인정하지 않는 차별을 막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즉 정교분리의 출발은 자유입니다.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헌법에 탑재시킨 것을 미국인들은 위대한 실험이라고 표현했고, 미국헌법에서 가장 멋진 것이 바로 ‘정교분리’ 입니다.”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역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가치는 ‘자유의지’이며, 이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을 인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교분리’라고 말한다. 

 

정 목사는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이 쓴 <성경에 따른 정치(Politics according to the Bible)>의 내용을 인용해 “인간은 속박에 갇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믿고, 원하는 대로 말하고,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해야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정부에 속한 국민들의 자유를 지켜주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책임이다. 따라서 세상 정부는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 해줄 수 있는 정부가 바람직한 정부다. 이런 정부가 되려면 필연적으로 정부가 작아야 한다. 정부의 기능이 작을수록 국민의 자율성이 크다. 그러나 반대로 전체주의 독제주의를 추구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나라는 큰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정부는 국민의 모든 것을 규제하고 간섭하려 든다. 잘못된 정교분리에 대한 상식으로 교회를 공격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정교분리의 해석을 한국의 역사를 통해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신학자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 연구위원)는 ‘정교분리의 복잡한 역사’란 아티클에서 “기독교와 깊은 관계를 맺어 온 서양은 근대사회에 진입한 이후 각자의 고유한 경험을 토대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법적·현실적으로 재구성했지만, 오랫동안 불교와 유교가 국교로 기능했던 한국사회에서 정교분리는 생각할 수 없는 사상이었다며 한국사회의 정교분리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정교분리에 대한 이해의 편차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 한국사회에서 정교분리가 정교유착 혹은 정교갈등의 명분으로 사용되어 왔던 혼란스런 역사의 부정적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정교분리를 교회의 정치참여 금지로 이해하는 사람들, 국가의 종교 간섭을 배제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혹은 양자 간의 월권행위 금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배 박사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정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단서조항이 삽입되어 있어 한국사회에서의 정교분리가 상대적 개념을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

 

에벤에셀교회 이충근 목사의 경우는 정교분리와 관련해 대한민국은 기독교를 따로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독교가 대한민국의 건국에 지대한 관여를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3.1운동, 학교, 병원, 복지시설, 조국 근대화 발전 등 그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가 열릴 때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4대 정책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입국론 이었습니다. 국가의 주요 의식을 기독교 의식에 따라 집행했고, 크리스마스를 국경일로 정했으며, 군대에 군종제도를 도입해 병사들에게 전도를 할 수 있는 길을 열고, 또 감옥에 형목제도를 도입해 옥중의 죄수들에게도 전도의 문을 열었습니다.”

 

“또한 정부 요직에 기독교인들을 많이 기용하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국회에 많이 진출하도록 권장했습니다. 기독교 신문사·방송사의 설립, 기독교계 학교와 신학교의 설립, 그리고 YMCA 및 YWCA의 활동을 장려 내지 지원. 게다가 선교사들을 우대하고, 6·25전쟁 기간과 그 후에 외국에서 들어오는 구호금과 구호물자를 기독교 단체 등을 통해 배분토록 하는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가는 곳마다 목사를 만나고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와 정치는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교분리 앞세워 교회 허무는 법 우후죽순처럼 제정되는 현실

 

현대로 넘어와 정교분리의 이해는 좀 더 복잡해진다. 다변화와 다양화, 다민족과 다인종, 그리고 이민 커뮤니티의 형성과 확장, 다양한 종교들의 한 국가에서의 공존. 여기에 더해 오늘날 정교분리 원칙을 이유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법들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제정되고 있다. 

 

엘정책연구원 이정훈 교수는 정교분리를 현대적 시각에서 해석할 때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함에 있어 어떤 특정 종교집단과 유착하는지, 아니면 반대로 차별을 하는지의 유무로 보아야할 것을 지적한다.

 

“정부는 특정 종교집단에 예산을 밀어준다든지 우대해서는 안 됩니다. 또 특정 종교를 차별하고 괴롭히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정교분리의 핵심입니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교회가 ‘다원주의와 타협 합시다’란 말에 침묵하고, 카이퍼적인 신학과 신앙을 하면 정치적인 것이라 안 되고, 무신론과 타협하고, 공교육에서 무신론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주입하더라도 크리스천들이 침묵하고, 크리스천 선생님이 학생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기도해줬더니 교육청이 징계를 해도 모르는 척 하는 것 등, 다른 것이 정치화가 아니고 바로 이런 것이 정치와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교수는 이어 “상황이 이러함에도 교회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합니다. 이것은 수많은 교회들이 정교분리의 뜻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들입니다. 가령 ‘A가 옳다. B가 옳다’에서 크리스천에게 확실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즉, 상대가 다원주의가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 역시 나는 예수님만이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도 계속 얘기하고, 너도 계속 얘기해! 그러니까 - 내가 저 사람 입을 막아, 또는 저 사람은 내 입을 막아 - 이런 거 하지 말고, 말해! 괜찮아! 이겁니다. 크리스천들은 우리가 선포할 수 있으면 우리가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으로 기독교의 입을 막아버리려 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게임(정교분리)이 아니기 때문에 그 법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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