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 ㉔ 중남미 박수영 선교사
뇌성마미 극복 후 문화접촉 통한 선교 추진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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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4 [14:2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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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영∙박숙희 선교사 부부(박수영 선교사는 서울 전자 전산 전문대학 S/W 학과를졸업하고, 백석대 신학과와 기독신학대학교대학원 석사를 마쳤으며, 총회선교부 선교사 훈련원을 수료했다. 태국복음신학교IT 교수 및 행정선교사를 지냈으며, 태국선교교회와 글로리아음악학원을 설립     ©크리스찬투데이

중남미는 그동안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서구 선교의 영향과 가톨릭권이라는 이유로 한국 선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실 중남미 대륙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약 90%의 인구가 가톨릭 신자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복음’이 없는 약 5억 명이 넘는 카톨릭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중남미 지역은 교회가 세워진 곳은 많으나 적절한 접촉점을 찾지 못해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에 복음과 함께 중남미에 꼭 필요한 문화 접촉을 통한 선교를 통해 추수할 수 있는 집중선교 대상 지역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하는 박수영 선교사는 지난 20여 년간 러시아와 태국에서 문화선교를 감당하던 중 2018년 태국 선교를 현지인에게 이양하고, 곧 바로 중남미 선교사로 재파송 됐다. 현재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언어와 중남미 문화를 배우며 선교의 접촉점을 찾는 중이다.

 

박 선교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과 다를바 없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는 3살 때 뇌염주사 부작용으로 후천성 뇌성마비를 얻어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하는 상태로 죽기만을 소망했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을 도와주던 친구를 따라 처음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당시 손발이 되어주었던 친구가 자신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해주던 모습을 통해 그때부터 하나님을 간절히 알기 원했다고 한다.

 

박 선교사는 그때 이후로 신기하리만치 몸 상태가 점차 호전되었고,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가던 중 중학교 2학년 여름수련회에서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진학하지만 당시 장애인에게 좀처럼 열려있지 않은 교계의 모습 낙심하고, 진로를 바꾸어 컴퓨터를 공부하기 시작해 한 때는 잘나가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하나님의 부르심에 목말라하던 박 선교사에게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필리핀 단기선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28살에 러시아 선교사로 첫 발을 내딛는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행하신 일들은 버릴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소련이 붕괴되고 서구 문명이 물밀듯이 유입되던 러시아에 컴퓨터는 선교의 좋은 도구였습니다. 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컴퓨터를 전공했던 것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이미 저를 만들어가고 계셨습니다.”

 

러시아에서의 사역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갔다. 그러나 사역지에서의 외로움은 또 다른 기도제목으로 다가왔다. 당시 이십대의 혈기 왕성한 청년인 박 선교사는 장애 때문에 결혼은 커녕 이성 교제조차 자신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40일 작정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짝을 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날 박 선교사는 비자 갱신을 위해 잠시 귀국해 있던 중 ‘장애인은 내 친구’라는 극동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또 한번 기적과 같은 일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곳에서 당시 간호사였던 지금의 아내 박숙희 선교사를 소개받았습니다. 저희는 만난 당일 결혼을 약속하고, 3일후 양가 상견례와 혼인신고를 마친 후 20일 만에 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함께 러시아로 돌아왔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다시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박 선교사는 러시아에서의 첫텀 사역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목회학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고 2012년 태국 선교사로 파송된다.

 

“러시아에서 영하 40도의 환경에 적응했는데, 다시 영상 40도의 더운 나라로 옮기시는 이유를 몰라 혼란스러웠죠. ‘왜?’ 라는 질문이 뒤따랐지만 이미 제게는 순종하는 근육이 생겨 있었습니다.” 

 

▲ 태국 선교 당시 태국선교교회 성도들과 함께 드린 송구영신예배.     © 크리스찬투데이

 

그렇게 시작한 태국선교는 16년간 컴퓨터교육과 한글과 영어, 그리고 음악 교육 등을 통한 문화선교센타를 중심으로 태국산족선교교회를 개척해 건강하게 성장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뇌종양 판정과 동료 사역자간의 갈등 그리고 박 선교사의 건강의 적신호 등 휘몰아치는 난관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현지 사역자에게 모든 사역을 이양하고,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 중남미 지역을 품게 된다.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한 곳에 안주하기 보다는 처음 마음으로 사역하기를 원하신 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늘 같은 곳에서 사역하다보면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부르짖지 않고 신경쓰지 않아도 일이 진행되는데, 처음 초심으로 돌아가서 쌀이 없어 기도하면 까마귀를 통해 보내주시고, 한 영혼을 만나기 위해 간절함으로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이 직접 영혼을 만날 기회를 주시는 그러한 기적을 다시 체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박 선교사는 선교의 불모지와도 같은 중남미 지역에서도 문화선교센터를 건립하고 컴퓨터와 한글, 영어 그리고 음악 등의 교육을 통한 문화접촉선교와 센터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화하여 자연스런 교회 성장을 꿈꾸고 있다.

 

특별히 박 선교사는 중남미 사역을 앞에 두고 1,440명의 기도후원자를 모으고 있다. 이유는 1일 24시간이 1,440분으로 기도후원자 1명이 하루에 1분씩 선교지를 위해 기도한다면 하루 24시간 매일 매일 기도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기도의 힘으로 선교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선교는 기도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역이다. 장애가 있기에 누구보다 기도의 능력을 잘 아는 박 선교사. 중보기도의 힘으로 앞으로 새롭게 시작될 박 선교사의 중남미 사역이 이 곳의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며 아름답게 꽃 피우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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