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 ㉓ 탄자니아 김상도 선교사
“경영학 교수로 갔던 땅에서 이제는 복음 전한다”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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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5 [13:2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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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들에게 식량지원하고 아동들 챙쳐

어려운 가정에 염소 분양하다보니 ‘Goat Father’ 별명

 

▲ 김상도∙양절자 선교사 부부.

김선교사는 연세대대학원 구약학 석사와 경영대학원 MBA 취득, 한독약품 독일파트너 Hoechst Korea Ltd에서 20년 근속 임원으로 퇴직, 한국화이자제약 조직관리담당 부사장 역임, Career Korea Ltd 부사장 등으로 재직했다.     © 크리스찬투데이

 

동아프리카 인도양 연안에 위치한 탄자니아는 인구 약 5,900만 명에 132개의 부족으로 형성된 국가다. 1인당 GNP가 2017년 기준 800달러 수준으로 커피, 옥수수, 감자 등 농산물 재배가 주 산업이며, 높은 실업률과 의료시설 또한 열악해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 등 질병에 걸릴 위험이 매우 큰 나라다. 언어는 스왈리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약 20% 정도고, 무슬림과 무속신앙 비율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특이점은 130여개나 되는 많은 수의 종족이 공존하나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종족분쟁이 없는 나라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종교는 자유이나 음성적으로 무슬림들의 탄압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지난 2015년부터 선교활동을 하는 한국인이 있다. 탄자니아연합대학교(The United African University of Tanzania)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던 김상도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대학에서 신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오랜 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 선교사는 은퇴 후 탄자니아행 비행기를 탔을 때 그의 나이는 75세에 이른다. 국제로터리클럽 등 봉사 단체에 가입해 20년간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왔던 그였지만 탄자니아의 선택은 주변을 모두 놀라게 했다.

 

“인생을 착하게 살자”는 게 모토였다는 김 교수는 은퇴 이후 사업을 시작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인생을 의지했던 대가가 컸다”는 그는 80세를 앞둔 인생 말년의 전환 또한 컸다.

 

“은퇴 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등산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되돌아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의 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 미혼모와 독거노인들에게 주식인 옥수수가루 10Kg을 매달 전달하고 있다. ©크리스찬투데이

 

김상도 선교사는 자비량으로 음빙가 지역에서 사역한다.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살람에서 서남쪽으로 약 1,200Km 떨어진 말라위 국경 근처 호수, 이곳에서 또 60Km 정도 떨어진 곳의 해발 1,400m 지역이 음빙가 마을이다.

 

“2015년 한국교회들이 설립한 대학에서 3년간 경영학을 가르치다가 교수 생활을 접고 열악한 환경의 주민들에게 실제로 복음을 전하고자 2018년 3월에 아내와 함께 시골로 들어가 교회를 개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황토바닥에서 현지인들과 몇몇이 예배를 드리고 빵과 말씀을 나누면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심방을 위해서는 걸어서 다니고 20세 미만의 미혼모들 가정에 식량을 전달해 주면서 교인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는 아이들 포함 120여명의 교인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한다. 탄자니아 전체로 볼 때 한인은 고작 300명 정도다. 하지만 이곳 음빙가에는 김상도 선교사 부부를 제외하곤 한인이 전무하다. 파송교회가 없어서 모든 사역비를 지인들의 후원으로 충당하지만 그것으론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선교비에 어려움이 있으나 그때마다 주님이 채워 주십니다. 지금 교회가 필요한 것은 안정된 사역을 위해 파송교회가 절실히 필요한 실정입니다. 두 분의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예배당 건축헌금을 받아 외형은 거의 완성했으나 바닥, 실내 의자, 강대상, 음향기기 등의 설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염소사역으로 김 선교사는 ‘Goat Father’라는 별명이 붙었다.    © 크리스찬투데이


김 선교사는 교회개척 외에 미혼모 돌봄 사역, 염소 사역, 알비노 아동 돌보기 등 크게 3가지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무슬림 사회에다 성문화가 문란하여 많은 20세 미만의 어린 여성들이 혼자 출산해 아기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또한 나은 아이의 아빠도 다르고, 남자들은 거의가 무책임 합니다.” 

 

김 선교사는 이들의 주식인 옥수수가루 10kg 한 부대씩을 매월 미혼모 가정에 나눠주고 있다. 앞으로는 이들에게 직업교육을 시키고 아이들도 돌볼 수 있는 ‘해피 홈 센터’를 건축할 예정으로 예산 약 10만불 정도를 놓고 기도하고 있다.

 

염소 사역은 가난한 이들에게 경제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줄 지를 기도하던 중 3달된 암·수 염소 한 쌍씩을 20가정에 무료로 나누어 준 것에서 시작했다. 1년이 된 지금은 새끼를 놓아 그 새끼를 받아 또 다른 가정에 나누어 주고 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김 선교사는 ‘Goat Fathe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알비노 아동 돌보기는 김 선교사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다.     © 크리스찬투데이

 

김 선교사의 또 다른 중요한 사역 알비노 아동돌보기는 시력이 안좋은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선글라스를 기증받아 우선 20명의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이들의 야외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사역은 향후 다른 아동들에게도 확대하고 한국이나 해외거주자들과 결연을 맺어 정기적으로 도움을 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뜨뜻미지근했던 신앙을 회개하고 아프리카 오지를 택해 평생 빚진자로서 남은 인생을 복음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김 선교사는 자신을 통해 “Re born Christian”이 되었다는 청년들의 고백을 들을 때 보람을 느끼며, 이제야 진정한 행복을 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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