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 ㉒ 볼리비아 에스더 김 선교사
“문맹퇴치 후 말씀공부로 양육”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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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1 [23:4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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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동락 삶이 영락없는 볼리비아 원주민

1년에 한번 목욕하는 어린이들 씻기우며 ‘하나’

 

▲ 에스더 김 선교사(왼쪽)는 1986년 총신대신대원 졸업 후 서울 원동교회, 왕십리교회, 원남교회, 강남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 후, 1994년 G.M.S. 남미 볼리비아 선교사로 파송받아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옆은 남편인 이건화 선교사.     © 크리스찬투데이

 

120년 전 칠레와의 전쟁에서 바다를 빼앗긴 불쌍한 나라 볼리비아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파라과이 등 5개국에 둘러싸여 있는 남미의 내륙 국가이다. 해발 3700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며, 알토공항, 티티카카호수, 소금광야 우유니와 만년설, 아마존의 상류가 있는 초겨울 날씨의 고산지대와 봄가을 기후의 중간지대 그리고 여름 날씨의 저지대가 공존하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 할 수 없는 특별함을 지닌 나라다. 

 

또한 신기하게도 볼리비아인들은 백의민족과 비슷한 몽고반점이 있어 남미에서 가장 순수한 민족이라고 한다. 언어는 스페인어를 공식 사용하지만 아직도 36개의 종족언어가 사용되고, 국교는 카톨릭이나 여전히 토속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다. 정국은 현재 14년을 집권하고 있는 에보 몰랄레스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한 출마설을 던져 놓은 상태로 올해가 볼리비아의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불안한 상태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이기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견디기 쉽지 않은 지역” 이라고 말하는 에스더 김 선교사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볼리비아 라파즈 알토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다.

 

라파즈의 벧엘교회와 산쪼케 생명의빛교회를 통해 약 500여명의 아이들에게 문맹퇴치와 믿음의 성장을 돕고 있는 김 선교사는 25년이란 긴 세월이 흘렸지만 지금도 고산병으로 인해 힘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여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산소가 희박해지면 발생하는 고산병은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들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 따른다. 몸이 붓고, 눈이 돌출되거나 얼굴 모양이 변형되기도 한다. 머리가 아파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슈바이처, 리빙스턴, 스탠리 등에 반해, 선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던 김 선교사는 이사야서 61장 1절의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볼리비아로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고 말한다.

 

▲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로 가는 60km 길이의융가스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중 하나이다.     © 크리스찬투데이

 

“어려서는 크면 저절로 선교사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막연하게 선교사의 꿈을 꾸던 시절1974년 여의도엑스포 참석이 헌신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아교육과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선교지로 추천받은 곳이 볼리비아였습니다. 응답임을 확신하고 달려온 선교지는 학교와 유치원 원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리만치 아무도 지원자가 없는 오지의 허름한 학교였습니다. 처음 볼리비아에서의 1년은 한국의 10년과도 같은 시간과의 긴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선교사는 라파즈 땅에서 파송교회 하나 없이 25년간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깊이 감사한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통해 한 교회, 한 교회 세울 수 있게 하시고, 부족한데도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제자가 되도록 도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폐결핵을 앓아 만기 제대하지 못한 저를 폐활량이 좋아야만 살 수 있는 곳, 그래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왔다가 버티지 못하고 떠나간 곳을 지키며 사역 할 수 있게 하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볼리비아에 온지 2년 되던 해인 1996년에 평생의 동반자이자 동역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남편 이건화 목사는 당시 평신도선교사로 볼리비아 선교지를 방문했던 터였다. 

 

“25년의 세월을 바라보면 참 힘든 시기들이 많았습니다. 사역 초기에 한국이 IMF를 만나 독신 선교사의 턱없는 선교비로 사역을 감당해야 했던 시절, 그때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만나 선교의 동역자로 함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이곳의 이름을 라파지대라고도 하는데 ‘라파스(La Paz)’는 ‘화평’이란 뜻으로, 남편 이름 이건화 목사의 ‘건화’ 즉 ‘화평케 한다’란 의미와 같아, 지금도 대화의 소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1996년 개척한 벧엘장로교회는 2004년부터 컴패션과 협력해 어린이 350명을 주 3회 학과 수업 및 성경을 가르친다. 모든 아이들에게 점심 식사도 무료로 제공한다. 2015년에 개척한 생명의빛교회는 교인들과 함께 건축 중인 새성전에서 컴패션과 함께 공부방 사역을 진행한다. 비아차 지역 에벤에셀교회에서는 농촌사역의 일환으로 감자 농사를 지어 교인들과 함께 나누고 예배 후 함께 식사를 한다.

 

라파즈에는 기독교 수양관이 따로 없다. 카톨릭이 운영하는 수양관을 빌려 쓰는데, 라파즈에서 약 1시간 거리에 떨어진 운니 지역에 목회자 세미나 및 청소년 수련회를 위한 장소를 놓고 기도 중에 있다.

 

“카톨릭 수양관을 빌려 쓰다보니 기독교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는 걸 보았습니다. 또 볼리바아는 거의 매일 춤을 추는 정열의 나라입니다. 예배 역시 정열적이고 경쾌한 찬양을 많이 부르는데, 그냥 보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신학을 안 해도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말씀의 기근 가운데 있습니다.” 김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말씀 공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 벧엘교회 어린이들이 한해를 보내며 발표회를 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김 선교사는 엄마처럼 친구처럼 동네 아줌마처럼 그들과 똑같이 현지인이 되어 생활한다. 현지인들은 김 선교사 부부에게 “당신이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말한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많이 다녀갔지만 정작 머물면서 그들과 함께 고생하는 선교사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아이들은 목욕을 1년에 한번 밖에 할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고산지대라 산소 부족으로 나무도 없고 가스를 쓰자니 너무 비싸, 페트병에 물을 채워 지붕에 올려놓아 한낮의 태양열로 데워서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목욕 사역은 이들을 위해 물을 끓여 목욕탕과 흡사한 시설을 설치하고 제대로 된 목욕을 시켜주는 일이었습니다.”

 

목욕사역 이후 김 선교사 부부는 아이들을 씻기고 함께 목욕도 하면서 전에 없던 유대감을 느꼈다고 한다. 비로소 이들 속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들에게는 지면에 다 담을 수 없는 기적과 같은 간증들 또한 많다. 우기철 지붕 없는 교회당에서 예배드릴 때 비가 멈췄던 일, 물이 없어 빗물을 받아서 쓰려고 교회 마당에 파놓은 우물에 5살 어린이가 우물에 빠졌는데 다치지 않고 임시로 만든 두레박을 타고 올라온 일, 교회에 도둑이 들어 교회 비품과 창문 전체를 뜯어가는 사건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채워주신 일 등.

 

선교지 주민들이 스페니쉬를 몰라 글을 가르쳐 주면서 시작한 선교, 이제는 고산지대 사람들과 섞여 있으면 분간을 못할 만큼 그들과 동화가 되어버린 김 선교사.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에 저절로 자세가 추슬러진다.

 

“누군가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들이 예수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현지인들을 있는 그대로 품는 것,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 선교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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