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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29) - 텐트메이커 바울을 다시보기
자비량선교가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삶으로의 초대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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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5 [08:5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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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울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선교를 하든 안하든 텐트메이커라는 단어나 용어도 쉽게 사용합니다. 바울이 텐트메이커였다는 것도 자주 듣곤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켜주신 것처럼 우리 삶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바울에 관한 이런 이야기 가운데는 우리의 오해 또는 편견도 뒤섞여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바울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 천막 만드는 이로 일한 바울이 만든 천막은 이런 식의 유목민 천막이 아니었다. 도시 부유층의 축제, 군용 막사, 스포츠 제전등에 사용하는 천막이었다.     © 크리스찬투데이

 

성경 속으로

 

사도 바울은 히브리 이름으로는 사울, 로마식 이름은 바울입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처럼 바울은 날 때부터 로마 시민(행22:25-28)이었습니다. 바울이 태어난 길리기아Cilicia 다소Tarsus는 로마의 속주였기 때문에 혈통은 유대인이나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행21:39; 22:3). 바울은 자신을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고, 베냐민 지파인 순수 히브리인 이며,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유대에 정통한 자라고 강조했습니다(롬11:1; 고후11:22; 갈1:14; 빌3:5-6). 실제로 바울은 자신이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던 가말리엘 학파라고 소개합니다(행22:3). 

 

로마 시민이며 로마의 교육을 받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교를 공부한 신분과 지식이 출중했던 바울. 사도행전은 이런 바울의 생업이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전합니다. 우리 시대의 천만 만드는 일로 바울의 생업을 판단하면 큰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바울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함께 했던 이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브리스길라는 유대사람 아굴라의 아내로 로마(이달리야)귀족 출신으로 전해집니다. 로마 시민이며 가말리엘 학파에 속한 최고의 지식층으로 살아가던 바울과 로마 귀족 출신의 브리스길라가 생업으로 삼았던 천막을 만드는 일은 당시 어떤 위치였을까요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로날드 훅Ronald F. Hock 교수는, 바울이 가졌던 귀족적인 지위와 가능성에도 주목합니다.

 

길리기아 다소등 목축이 왕성하던 지역에서는 당연히 유목민의 천막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유목민들이 염소털이나 천을 이용해 가내 수공업으로 천막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목민이 염소털로 짠 천막도 돈을 주고 사기에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시 밖 대다수의 가난한 목자들은 동굴 에서 살았습니다. 로마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등의 대도시에서 머물던 바울이 생계를 위해 가난한 유목민을 상대로 천막을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 아테네 아레오바고 언덕 뒤로 아테네 시내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은 종교와 체전이 결합된 올림픽을 비롯한 축제를 열었다.     © 김동문 선교사

 

그런데 바울 서신을 보면 천막을 치고 걷고 하는 풍경이 도시 속에 살던 일반인의 눈에도 익숙한 장면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후 5:1) 바울이 언급한 천막은 유목민을 위한 천막이 아닌 다른 용도의 천막이 있었습니다. 이 천막은 부유한 도시민에게 천막은 일반 생활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운동경기의 예로 들었던(고전9:25) 이스트미아 제전Ta Isthmia 을 비롯한 신을 위한 축제와 운동경기에서 임시 거주 공간이나 차양으로 천막이 사용되었습니다. 천막의 가장 폭넓은 용도는 염소 가죽으로 만든 군용 막사였습니다. 가죽 천막 하나를 만드는데는 70~80마리의 염소 가죽이 필요했습니다. 이 가죽들을 사용 해 700-800시간을 들여야 천막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천막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협업을 전제로 하는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천막 만드는 이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위치는 어떠했을까요? 이 질문은 바울이 생업으로 삼은 천막 만드는 일의 결과물 즉 천막을 필요로 한 이들이 누구였는가를 살펴보면 미루어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스트미아 제전을 개최하는 이는 일반인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천막 만드는 이의 거래 상대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천막은 일반 서민이 아닌 귀족 등 그 사회의 권력자, 유력자가 수요자였기 때문입니다. 군용 막사의 수요자는 물론 군 관계자들이었습니다. 역사학자 닐 폴크너Neil Faulkner는, 바울이 자기 사업장을 갖고 있으며, 군에 물품을 공급하던 공급자로 보기도 합니다. 로마 시민 바울은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자연스레 정치 경제적으로 유력했던 천막의 수요층과 교류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제 율법에 정통했던 바리새파 유대인 바울(사울)이 함께한 유대인 공동체 속의 천막만드는 이의 존재감을 떠올려봅니다. 바리새파 유대인도 다른 생업에 종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허용 가능한 직업이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을 어기는 직업은 당연히 이들의 선택 가능한 직업군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가죽으로 천막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천한 작업이었습니다. 죽은 동물 가죽을 만지는 일은 죽은 동물의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율법을 생계 등의 이유로 지속적으로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직업은, 비천한 직업일 뿐 아니라 율법을 어기는 죄인의 존재였습니다. 율법에 열심히 있는 이들의 눈에 천막만드는 이는 혐오와 천대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일을 지속적하고 있었습니다. 

 

▲ 고대 고린도에도 도시 곳곳에 거대한 신전이 자리했다. 이곳에서는 격년으로 이스미아 제전이 벌어졌다.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유대인 바울을 천막 만드는 일도 하는 사역자로 봐야 하나요? 텐트메이커의 모델로 봐야 하나요? 과연 바울을 스스로 사역비를 충당하면서 사역하는 이의 모델로 삼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요? ‘텐트메이커’에 대한 정의를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바울에게 있어서 천막 만드는 일은 성경이 말하듯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배경으로 자연스레 얻게 된 생업 이었던 것입니다. 선교 전략에 따른 의도된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부 자연스럽다. 그것은 그의 삶의 방식이었고 전도자의 삶 그 자체였다고 봐야 합니다. 

 

로마시민 지식인 바울은 노동을 경멸하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스스로 낮아져 육체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죽은 동물 가죽을 만지는 일은 율법을 어기는 비천한 직업으로 간주되어 혐오하고 천대하던 유대 율법주의의 경계도 넘어섰습니다. 그것이 그의 낮아짐이고 복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생업인 천막 만드는 일에 대한 사도행전의 가르침 아닐까요? 로마시민이며 유대 율법주의자로서의 바울에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니 그의 삶의 방식이 전도자의 삶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면 내 삶의 방식이 전도자의 삶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 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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