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 ㉑ 남아공 김현태 선교사
“하나님 앞에서 후회함 없기 위해 목회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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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30 [01: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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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선교원 => 교회 => 협력 사역 => 지역의 모델 교회로 전환

 

▲ 김현태 선교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예장통합 측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18기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현재 남아공 Chungwoon mission church를 담임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자리한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이미 오래 전에 백인들에 의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하지만 전통 종교와 교묘히 믹스된 Zion 교회는 500만이 넘는 성도를 자랑하며, 로만 카톨릭을 비롯해 수많은 이단들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하는 김현태 선교사는 남아공의 입법 수도인 케이프타운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흑인촌에서 18년째 사역을 해오고 있다. 이곳은 군청에서도 인구 측정이 잘 안 될 정도로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 내륙에서 살던 흑인들이 1994년 인종차별 정책의 종식으로 주거지 제한이 없어지자 도시 주변으로 물밀 듯 밀고 내려와서 농장 주변에 마치 난민촌 같은 텐트를 치고, 타운을 이루어 형성된 곳이다. 

 

특히 웨스턴 케이프는 백인들이 우세하여 흑인 정부에서 무상 복지를 내세워 정책적으로 많은 내륙의 흑인들을 내려 보내어 백만이 넘는 흑인들이 도시 근교의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실정이다. 

 

김현태 선교사는 초창기 어린이선교원 사역을 하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주일학교와 틴에이저, 유스들을 대상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며, 선교현장에 현지 교회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커서 교회로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기독교 교육에 입각해 예배와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나 초창기 선교사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현지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보면서 선교원 건물에서 교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배 도중에 아이들의 부모가 자녀들을 자기 교회로 데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교회에서 무엇을 얻을까 싶어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별 얻을 것이 없자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해 이방인이 시작한 교회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고 접어야만 했다. 

 

“외국인 선교사가 이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교회 사역을 내려놓으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이방인 선교사가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는 것은 무리이고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던 차에 실패감이나 별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지 교회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김 선교사는 흑인촌의 고등학교를 방문해 교장을 만나고, 먼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거리에서 직업을 찾는 노동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며 복음을 전했다. 또한 주일과 수요일 저녁에는 가능성 있어 보이는 현지 교회 4-5개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그들의 교회를 방문해 함께 예배드리며, 이들의 전통과 문화를 배우고 현지 목회자들과 동역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차츰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지 교회는 선교사를 환영했고 설교할 기회도 많이 주었습니다. 수요예배나 부흥회에 초대해 강사로 세우고 결혼식, 장례식도 함께 치르면서 협력하는 교회마다 부흥하니 나름대로 현재 선교 패러다임에 부합한 선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현지 교회가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제공해 주고, 목사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목회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 주며 목회 컨설턴트가 되어 좋은 협력이 이루어졌습니다.”

 

▲ 지난 추수감사예배에서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줄기차게 10년의 세월을 열악한 흑인촌 현지인 교회와 협력하면서 누가 보더라도 바쁜 선교사,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는 선교사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던 김 선교사. 하지만 무언가 한편으로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하면서 선교를 마칠 것인가?” “과연 이것이 선교의 전부일까?” 그는 평안과 만족이 없어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게 선교를 마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결정적인 동기는 현지 교회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앞에서는 “예스! 예스!” 하지만 순종하고 열심히 말씀을 듣고 따라 오는 것 같은데 결국은 다시금 되돌아가는 옛날의 사고방식과 자신들만의 신앙 스타일이 김 선교사의 선교를 또다시 되돌아보게 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수년을 피땀 흘려가며 가르쳐 놓았는데 현지 목회자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무런 설교 준비 없이 강단에 서서 몇 시간씩 고래고래 고함을 치다 내려오기 일쑤였습니다. 흑인촌에 주일학교는 거의 전무한데 이들에게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성도들은 자기 기분에 따라 하고 싶은 것 다하며, 엿 세 동안 죄 지을 거 다 짓고 주일에 교회 한번 와서 요란한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데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서 환멸과 거대한 장벽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가 조금 부흥한다 싶으면 자기들끼리 서로의 불만족과 의견 충돌로 교회가 몇 번이고 갈라지고 하는 아픔을 수차례 겪으며 하나님의 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라고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의 교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무함을 보았습니다”

 

▲ 문화유산의 날 교회학교 아동부와 장년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이런 가운데 김 선교사는 몇 번이고 부정 또 부정을 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그의 안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래 단 한 명이라도 크리스천다운 크리스천을 만들어 보자” “단 한 교회라도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보자” 결국 이런 다짐은 그를 지금의 목회 사역으로 전환하게 했다. 

 

“지난 5년 전부터 지역에 모델 교회를 세우겠다는 취지 아래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흑인촌 목회 5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의례히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핍박이 뒤 따랐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기게 하셨고 누구 말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지만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시며 이끌어 주셨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차이니즈(중국인)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나온 이들이 그래도 교회를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남아공 흑인들에게 있어서 차이니즈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와 멸시의 대상입니다. 저 역시 그들이 보기에는 그런 한 부류 차이나에 속한 사람인데, 이제 개척 5년을 맞아 차이니즈 교회에서 나와 예배하며 말씀 듣고 눈물로 간증하며 찬양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물론 차이니즈 교회를 통해 전도받고 말씀을 배워 교회를 떠나지 않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이며, 기적중의 기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 선교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선교현장에서 이방인 선교사가 목회를 하는 것이 얼마나 선교사의 진액을 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말한 해산의 수고가 아닐까. 인간적으로 볼 때 결코 뒤처지지 않는 선교 사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그가 말한 것처럼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며, 선교의 열매는 해산의 수고의 결과이다. 그리고 교회는 마지막 시대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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