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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28) - 봄철 들판에서 성경을 읽다
빈들의 백합화처럼, 겨자꽃처럼 피어오르게 하소서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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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27 [13:3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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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을 맞아 곳곳은 온갖 종류의 꽃이 경쟁하듯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무대 가운데는 평소에는 황량한 빈들인데, 겨울 우기를 지나면서 푸른 풀밭으로, 각종 들꽃으로 장식하는 곳이 많습니다. 사막(광야)이 꽃동산 되는 풍경을 맛보는 것은 봄철의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들꽃같은 존재(민초)로 취급받던 평범한 백성에게, 빈들에 가득한 푸르름은 새로운 자극이기도 했습니다. 들꽃을 보며 ‘참 아름답다’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2, 3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빈들(광야)를 찾는 이들은 푸르름과 온갖 색으로 꾸민 꽃이 가득한  봄을 만끽하곤 합니다. 

 

오늘은 빈들에 피어오르는 봄 풍경에 얽힌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겨자꽃, 들에 핀 백합화를 만나보려 합니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성경 속으로

 

황폐하기만 했던 광야, 빈들에도 겨울 우기에 비가 내립니다. 집중 호우도 쏟아집니다. 푸른 풀이 허허벌판을 푸른 초장 분위기로 바꿉니다. 민들레꽃도 이름 모를 들꽃도 피어오릅니다. 흰색, 파란색, 노란색, 보랏빛, 빨간꽃 그야말로 총천연색입니다. 남방 광야, 유대산지, 사마리아산지, 갈릴리산지, 길르앗 산지, 요단골짜기 할 것 없이 곳곳에 자리한 빈들도 이렇게 변신합니다.

 

▲ 들꽃의 대표인 백합화. 백합화하면 흰색을 연상하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백합화는 붉은 빛 아네모네 꽃이다.     © 김동문 선교사

 

백합화

 

이제 백합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백합화하면 떠오르는 색감은 당연히 흰색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꽃 장식을 할 때도 예수를 상징하는 꽃으로 백합화 장식을 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백합화는 흰 꽃이 아닙니다. 한자어로도 백합(百合)으로 적습니다.

 

구약성경에도 백합화가 나오는데, 사실 성경에 백합화로 번역한 꽃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백합화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예수님이 백합화를 말씀하신 지역이 갈릴리 호수 서쪽 주변 지역이었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눅 12:27)

 

백합화는 들꽃의 대표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들꽃으로 표현한 예수님의 말씀에도 이 백합화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소화제 하면 어떤 소화제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백합화는 붉은 빛 아네모네 꽃입니다. 백합화가 왜 붉으냐고요? 한자로 백합화의 ‘백’자도 흰 백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들판의 아네모네 꽃의 아름다움과 솔로몬 왕이 입은 화려한 붉은 빛 옷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겨자꽃

 

겨자씨 같은 믿음은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고 작은 씨, 가장 작은 씨인데, 쑥쑥 자라서 50배, 100배 결실하는 존재, 새들이 둥지 틀 정도로 커지는 나무를 떠올리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겨자씨 비유에는 둥지를 트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앗, 둥지트는 장면이 안 나온다고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눅 13:19)

 

▲ 겨자꽃은 유채꽃 종류 중 하나로 봄철이면 갈리리 호수 주변이나 길르앗 산지 곳곳에서 흔히 볼수 있었다.     © 김동문 선교사

 

성경에서 새가 겨자풀 위에 깃들이는 것은 묘사합니다. 깃들이는 장면은 풀섶에, 풀 위에도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겨자꽃은 유채꽃 종류입니다. 나무로 표현하지만 나무 자체는 아닙니다. 풀입니다. 우리말에도 고추나무, 담배나무처럼 풀을 나무로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막 4:31)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과학적인 언어로 가장 작은 씨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말에도 가장 작은 것을 표현하는 많은 표현이 있습니다. ‘콩알’, ‘깨알’, ‘새발의 피’ 같은 많은 표현이 그것입니다. 또한 작다는 뜻이 크기로서 작은 것과 함께 가치 면에서 작은 것이라는 뜻도 섞여 있습니다. 소인, 소인배, 소소한 것, 사소한 일 같은 표현에 담긴 ‘작다’의 뜻도 같이 있습니다. 

 

봄철이면 갈릴리 호수 주변이나 길르앗 산지 곳곳은 봄철이면 유채꽃밭 풍경으로 가득차오릅니다. 그 사이사이에 붉은 빛 아네모네가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것, 들꽃의 대표는 아네모네꽃 즉 백합화입니다.

 

다시 생각하기

 

봄입니다. 빈들에 가득한 들꽃, 곳곳에 봄소식을 가득 머금은 꽃, 우리의 마음에도 여유가 가득 차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 들판에서 들풀, 들꽃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하신 주님, 그리고 모든 사람을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2천 년 전 로마의 식민 지배로 고생하던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시던 그 눈길을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봄철이면 가난한 삶을 살던 백성은 더욱 굶주림을 느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에도 춘궁기, 보릿고개가 찾아오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먹고 죽을 곡식도 없는데, 종자로 써야할 씨앗을 앞에 두고 배고픔과 눈물로 범벅된 채, 눈물로 그 씨를 밭에 뿌리던 농부의 손을 잡아주셨을 그 주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어제도 떠올랐고 오늘도 떠오르는 해 인데도 때때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하늘을 바라보며, 들풀에도 눈길을 한 번 더 줄 수 있는 여유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 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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