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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27) - 손바닥 문신과 눈물병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소서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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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2 [06:1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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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 같은 곳에 살아도 각 사람은 저마다의 습관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같은 말,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쉽게 규정짓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하물며 시대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른 성경 속 사람들에 대해서 쉽게 단정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대로 성경 서대를 규정짓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그 시대 사람의 일상 생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 시대의 말과 감정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의 계시록 같은 곳에 나오는 '상징'은 인위적으로, 깊은 묵상이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쉽게 듣고 보는, 아주 일상적인 그림언어입니다. 그런 이유로 성경 속 상징을 성경 본문의 그때 그 자리의 일상 속에서 살펴보면,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 속으로
 
오늘은 독특한 시대 배경을 문신과 눈물병, 베 띠에 관한 것을 살펴봅니다.

▲ 요르단 남부 유목민 여성의 손바닥에 새겨진 문신. 한국의 봉숭아물이 떠오른다. 손바닥에 새긴다는 의미는 늘 기억한다는뜻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김동문 선교사

문신
: ‘내가 너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잊지 않고 기억하고 회복을 가져오겠다는 하나님의 선언과 고백, 다짐이 한 여인의 그림언어(이미지)를 통해 강조되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본문이 그것입니다.
 
강하게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5, 16)
 
고대 근동은 물론 지금도 여인은 여러 모양의 문신을 몸에 새겨놓곤 합니다. 봉숭아 물들이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신은, 지워지지 않을 뿐더러 늘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신은 몸에 새겨 넣는 장식, 영구 화장 같은 의미였습니다. 다른 사람도 지켜보게 하는 것이 그 문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늘 자랑스럽게 지켜보겠다는 것과 다른 이들 앞에서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 눈물병은 고대 이스라엘은 물론, 로마, 고대 근동에도 존재하던 풍습을 반영한다. 한 개인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눈물병은 한 개인의 지난 시간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 김동문 선교사

눈물병 : 독특한 다른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물병에 얽힌 것입니다. 눈물병? 그 재질은 토기와 유리병 등 다양하지만, 그 기능은 같았습니다. 눈물병의 주인이 자신이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을 담아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한 개인의 절절한 사연의 모든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만 이것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 로마는 물론 고대 근동에서도 눈물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아픔, 고통을, 눈물을 기억해달라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편 56:8)
 
그냥 지나쳤던 본문이 다시 다가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장면이 바로 여인이 간직한 눈물병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큰 아픔, 슬픔,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아주 극적인 장면입니다. 자신이 죽을 때 부장품으로 넣어야 할 그 눈물병의 눈물을 다 쏟는 것은 자신의 삶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누가복음 7:38)

▲ 고대 이집트 신왕국 투탄카문왕의 황금상. 왕이 두르는 치마위로 앞 가리개, 예레미야에 ‘띠’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하고 있다. 이것은 권위와 품격, 멋을 뜻하는 것이었다.     © 김동문 선교사

베 띠 : 고대 이스라엘에서 서민들은 통으로 짜여진 하의와 긴 겉옷 한 벌이면 족하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옷은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옷으로 멋을 낸다거나 유행을 따라간다는 것, 채색옷, 수놓은 옷을 입는다는 것은 여유 있는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기로”(예레미야 13:1)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잠언 31:24)
 
여기서 나오는 '베 띠'는, 허리띠가 아닙니다. 바지위에 걸쳐 입는, 멋내기용 장식옷입니다. 허리와 엉덩이를 둘러 입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패션의 완성, '포인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베 띠를 사서 허리에 띤다는 것은 스스로를 존중하게 하고, 명예를 드높이고 누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멋있게 차려입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남녀의 모습. 베 등으로 만든 띠를 허리에 두르는 것은 멋과 품격, 안녕과 평온한 삶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성경시대 사람들도 희노애락을 느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의 언어를 빌려 그런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것을 넘어서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의 언어와 감정으로 그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을 읽으면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혹시, 오늘 내가 다른 이에게 전하는 성경 말씀은 지식과 정보인가요? 다른 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언어로 전하고 있는 것인가요? 오늘 나에게,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신다면, 손바닥 문신, 눈물병, 베 띠 대신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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