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구독료 지불, 기도하고 결정?”
서인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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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24 [02:3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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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소리하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받을 돈 청구 조차도 조심스러운 나다. 그런 내가 지난 한 주간동안 감사와 울화가 매일 매일 교차했다. 그 이유는 바로 구독료 때문이었다.


지난 2년 전부터 우리 신문은 인터넷판을 중심으로 삼고, 매주 발행하던 지면신문을 월 1회 발행하는 구조로 변환했다. 이에 대해 독자들에게 알렸고 특히 지면신문을 배달받던 전국 독자들에게 인터넷판 구독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었다. 아울러 지면신문 배달요청을 해오지 않으면 신문은 배달될 것이나 구독료가 부과된다는 점도 분명히 설명했었다.


그리고 나서 1년이 넘은 지난 달 초에 구독료 청구서를 보냈더니 아우성이 난 것이다. “2년전 보냈다는 편지를 받은바 없다” “신문 받아보던 남편이 소천했는데 내가 내야 하나?” “공짜인줄 알고 보았는데 구독료 인보이스를 왜 보냈냐?” “신문 구독해 보던 담임목사가 교체되었는데도 돈을 내야 하나?”


반면에 “너무 좋은 정보에 늘 감사했다” “수고가 참 많으십니다” “이제부터는 인터넷판으로 구독하려 하니 종이 신문 배달은 중지해 주세요”


그 많은 전화와 텍스트 메시지, 이메일 등을 접하며 기자가 느낀것은 설명을 적은 편지를 보냈을 때와 ‘인보이스’라는 청구서 양식으로 보냈을때에 받아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는 점이다. 또한 기독교 신문은 공짜로 볼수 있는, 돈을 내지 않아도 늘 보내오는 종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교회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로 자리잡힌, 역사 있는 중, 대형교회 일수록 이런 의식이 강했다. 이는 ‘기독교신문=무가지’ 공식으로 자리잡게한 언론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신문제작과 발송 우편료도 역시 선교비로 충당된다는 점을 잊고보는 독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온탕과 냉탕을 오고간 지난 몇주를 되돌아 보니 그래도 감사함이 넘친다. 본지 창간 때부터 지향해온 ‘독자들이 만드는 신문’ 즉 받아보는 신문값을 내는 독자들이 있는 개미군단들이 아직도 여전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디 구독료 뿐인가? 후원금까지 더하여 보내오는 독자들도 많았다.


신속하게 뉴스를 접하고 더욱이 구독료도 없는 인터넷판으로 구독할터이니 지면신문 중지를 요청하는 정중하고 조심스런 목소리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보도가 타언론에 없는 독보적인 특집이 많다며 좋아라 하는 이들이 있었고, 우리 기사로 인해 심기일전하여 더욱 목회에 전념하려 한다는 이들이 있기에 감사했다.


얼마전 담임목사가 바뀌었는데 신문은 교회로 늘 배달되어 와서 보았다면서 구독료를 보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문의해온 교회에게 기자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기도하고 결정하세요...” 그로부터 약 1주 후 1년 구독료 $50은 신문사로 보내져 왔는데 기자는 마음이 짠했다. 구독해 보던 신문에 대한 단순 지출조차도 기도하고 결정해야 하는 그 교회현실이, 그 대상이 기독언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판 구독이 하루에 수만명이 클릭할 정도로 자리잡아 가니 앞으로는 구독료로 인한 마음저림은 거의 없어져 갈것 같아 후련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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