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성경번역 어디까지 왔나 (3)
성경번역의 역사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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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17 [00:0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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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가 곧 성경번역 역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은 기원전 277년경 알레산드리아의 유대계 학자 70여명이 공동으로 번역한 70인역‘Septuahint’(라틴어로 70을 의미). 구약성경이 정경으로 완성된 지, 100여 년이 지나서였다. 이 70인역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최초의 성경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헬라어로 쓰여진 신약 성경을 똑같이 필사해서 돌려보았다. 그나마헬라어를 아는 신자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2-3세기에 이르러서는 당시의 공용어인 라틴어의 위상이 헬라어를 능가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권위있는 성경 번역본의 필요를 깨달은 다마스커스 교황이 한 성경학자에게‘대중’(vulgar)을 위한 라틴어 성경, ‘벌케이트’(Vulgate)를 만들 것을 명했다. 그 성경학자는 수도사이자 그의 비서인 제롬(Jerome)에게 이 일을 맡기었다.

제롬은 히브리어 성경과 라틴어, 헬라어에 능통했으며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고된작업으로 중간에 시력을 잃었지만 글을 읽어줄 사람을 고용하면서까지 맡겨진 사역을 성실하게 감당했다. 그는 406년에 최초의 라틴어 성경번역인‘The Vulgate Version’을 완성했다. 이 성경은 한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의 양식을 제공하는 소중한 도구가 됐다.

그 후, 수세기에 걸쳐 게르만족들이 이동하며 유럽 대륙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면서 유럽의 판도는 변화되었고, 당연한 결과로 언어의 양상에도 큰 변화가 일게 되었다. 라틴어는 오직 교육받은 지식층 사람들만 사용하는 언어가 됐다. 따라서 벌게이트 역본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이제 더 이상 대중을 위한 성경이 될 수 없었다. 성직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당시 교회는 성경이 평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되지 못하도록 했다.

성경이 교권유지 도구로

유명한 슬라브어 성경번역 이야기는 862년에 시작된다. 모라비아(지금의 슬로바키아)의 로스티슬로프 왕자는“진정한 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콘스탄티노플 교회에 보낸다. 이에 ‘메도디우스’와‘시릴’이란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콘스탄틴’이 파송된다. 이 두 형제는 시릴 철자를 고안하여 본격적인 슬라브어 성경 번역을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 지역의 프랑크족 선교사들은 오직 라틴어와 헬라어∙히브리어로만 예배의 식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반박하며, 로마 교회의 권위까지 동원해 성경번역을 반대했다. 심한 박해에 직면하자 두 형제는 로마로 가서, “단지 세 가지 언어로 쓰여진 성경으로 다른 모든 민족과 나라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그들은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까?”라고 외치며 로마 교회의 권위자들에게 열정적으로 변론했다.

결국 교황 아드리안 2세는 슬라브어 성경번역을 공인했지만, 시릴은 병으로 쓰러져 로마에서 숨을 거두고 메도디우스 홀로 돌아온다. 끊임없는 박해와 프랑크족 주교가 내린 3년 간의 구금에도 불구하고 메도디우스는 믿음으로 성경번역을 완성해 냈다. 884년 메도디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따르던 자들은 모라비아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이들이 슬라브어 성경을 가지고 각 지역으로 흩어짐에 따라 러시아와 동유럽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다.

중세 암흑기는 말씀 부재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었고, 개혁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성경의 번역을 시도했다. 중세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이나 미개종족의 언어로 번역한 죄로 위클리프와 틴데일 같은 개혁자들을 처형했다.

14세기 경 옥스포드 학자인 존 위클리프는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대중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위클리프는 1380년에 신약을, 1382년에는 구약까지 완역했다. 이것이 바로 ‘위클리프역’(Wyclif’s Version)으로,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성경이다.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지 1000여 년만의 일이었다. 위클리프가 번역한 영어성경은 나온 지 33년만인 1415년에 불태워지고 만다. 당시 교회는 신도들이 성경 읽는 것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위클리프가 세상을 떠난지 44년 후인 1428년엔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그의 묘를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 화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옥스포드 학자인 윌리암 틴데일이 1525년 헬라어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독일에서 비밀리에 인쇄를 하고 옥수수와 밀가루 부대에 숨겨 영국으로 밀수해 들여왔다. 구약 성경을 번역하는 중 틴데일은 배신을 당하고 결국 구속되어 이단자로 판결을 받는다. “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 그는 화형을 당할 운명을 앞에 두고 이렇게기도했다. 그 해 헨리 8세는 성경의 영어 번역을 허가했다. 틴데일과 동시대 인물인 프란지스코 드 엔지나스는 1543년 스페인어 성경을 번역한 후 평생을 독일로 도피해 살았다.

부패한 제도교회가 진리의 불길을 영원히 잠재울 수는 없는 법이다. 마침내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로마교회의 핍박을 피해 프레데릭 영주의 성에 은둔하던 루터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낸 업적은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진리는 교회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확신한 루터는 1534년 독일어 성경을 출간했다.

개혁자들 성경번역 계속

주후 1500년까지 성경이 번역된 언어는 30개에 불과했다. 그 후 인쇄술의 발달이 성경 출판의 과정을 보다 순조롭게 함으로써, 300여년 동안 34개의 새로운 언어로 성경이 번역됐다. 1804년 성경 보급의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성서공회 운동은 성경번역의 획기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이 성서공회와 함께 세계선교 운동의 영향으로 1900년도까지 1세기 동안 456개의 언어로 성경번역이 이루어졌다.

1900년-1950년 50년 동안 520개의 언어로 성경번역이 시작됐다. 1942년 세상에 있는 모든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가 설립, 성경번역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위클리프는 1950년-75년 25년동안 600개 이상의 언어로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

세계선교의 역사는 사실상 성경번역의 역사였다. 모든 개척선교사들은 어김없이 현지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후 야만족(Barbarian) 선교시대를 열었던 울필라스(Ulfilas)가 고트족(Goths)말로 성경을 번역한 것을 필두로 뒤를 이은 모든 개척선교는 어김없이 성경번역을 통해 돌파구를 열었다. 개신교 최초로 인도 선교를 시작한 지겐발크(Bartholomew Ziegenbalg)가 타밀어로, 개신교 선교운동의 선구자 윌리엄 캐리가 수십 개의 부족어로, 미얀마 선교를 시작한 저드슨(Adoniram Judson)이 현지어로, 북미 인디언 선교를 시작한 엘리엇(John Elliot) 엘곤퀸 인디언 말로, 중국선교의 선구자 모리슨(Robert Morrison)이 중국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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